전력망發 부동산 투기를 예방하려면

파이낸셜뉴스       2025.06.24 18:29   수정 : 2025.06.24 21:04기사원문

부동산 투기를 유발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는 교통이다. 지하철이나 도로가 뚫려 교통이 좋아지면 인근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게 된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택지도 GTX가 생겨 도심 접근성이 좋아지면 가격이 급등한다.

이런 곳에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들은 도로나 지하철 건설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고도 가만히 앉아서 부동산 가치 상승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이러다 보니 정부의 교통인프라 계획에 대해 치열한 정보전과 로비전이 벌어진다. 교통망 건설계획 정보를 미리 입수하여 근처에 땅을 사든지, 아니면 이미 소유한 땅 근처로 교통망이 건설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면 손쉽게 큰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각종 비리가 발생할 여지도 그만큼 커진다.

그런데 만약에 사람이나 사물이 적은 비용으로 원하는 곳에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직장이나 편의시설이 아무리 멀리 있더라도 순간적으로 이동할 수 있다면 굳이 교통이 좋은 곳에 거주할 필요가 없게 되고, 부동산 투기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반대로 이동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수록 교통과 부동산 투기의 연관이 커진다. 현재 우리나라 전력망 상태는 이런 상황과 아주 유사하다.

이제까지 우리나라 전력망은 언제 어느 곳이든지 필요한 전력을 충분히 보낼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었다. 물론 전기는 전력망만 있으면 순간적으로 이동한다. 좁은 국토에 밀집된 인구 덕분에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전력망을 건설·운영할 수 있었고, 대부분의 발전소들이 부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발전한 전기를 수요자에게 전달하는 데 제약이 거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국 어느 곳에 집이나 공장을 건설하든, 또는 발전소를 건설하든 전력망에 연결하여 전기를 사고파는 데는 불이익이 없었다. 전력망 비용은 전기 소비자들이 내는 전력망 사용료로 충당되는데, 전체 전기요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작을 뿐 아니라 산골이든 섬이든 위치에 관계없이 동일한 요금이 부과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전기의 이동이 거의 공짜이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데이터센터, AI 등으로 전기수요는 급증하는데 그나마 건설과 운영이 가장 편리한 가스나 석탄발전은 오히려 줄여야 한다. 그 대신 입지나 발전량 조절이 훨씬 까다로운 원전과 재생에너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이들을 수용하려면 전력망을 대대적으로 확장하고 강화해야 한다. 그런데 전력망 건설에 대한 주민 반대가 극심하고 비용은 치솟기 때문에 과거처럼 전력망을 여유 있게 운용하기는 불가능하다. 송배전 비용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전력망 부족으로 일부에서는 전기가 모자라고 일부에서는 전기가 남아돌아 발전기를 세워야 하는 상황이 수시로 발생할 것이다. 이미 강원 지역의 일부 석탄발전소는 송전망 부족으로 거의 개점휴업 상태이고,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이 송배전망에 접속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제 대규모 전기시설을 지으려면 전력계통영향평가를 통과해야 하고, 지역별로 차등화된 전기도소매 요금제 도입은 시간문제이다. 이처럼 송배전이 어렵게 되면 교통이 아니라 전력망이 부동산 투기를 유발할 수 있다. 전력망 접근이 보장되어 유리한 조건으로 전기를 사고팔 수 있는 사업장을 확보한 기업이나 발전소들은 그만큼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당연히 이런 권리를 싸게 확보해서 비싸게 되팔려는 투기심리도 발동할 것이다.

그러나 전력망으로 인한 투기는 정책적으로 선제적 대응이 가능하다.
전력망은 도로와 달리 그 이용자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통제할 수 있다. 전력망 수요유발 정도에 상응하는 전력망 사용료를 차등적으로 부과하여 수익자부담 원칙을 확립함으로써 전력망 무임승차 여지를 줄여야 한다. 전력망 건설의 혜택은 일부에게 집중되고 비용은 전 국민이 분담하는 관행은 전력망 부족 시대와는 맞지 않는다.

김영산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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