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철학은 쌍방향 소통으로 세워야
파이낸셜뉴스
2025.06.25 18:29
수정 : 2025.06.25 19:08기사원문
각 부처의 담당자들은 난감할 것이다. 그들이라고 새 정부의 핵심부와 호흡을 함께하고 보조를 맞추는 걸 싫어하겠는가. 전 정부 때 임명돼 곧 떠날 극소수 '어공'(어쩌다 공무원)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늘공'(늘 공무원)으로서 정권과 상관없이 각 부처에 머무는 직업관료다. 새 정부의 코드에 가능한 한 맞추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업무의 가장 근본적 가이드인 국정철학이 명료하게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산만한 득표용 짜깁기인 선거공약만 보면서 새 정부 권력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업무과제를 정하고 추진계획을 짜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국정철학이라는 뿌리에서 각 영역의 비전이 줄기로 나오고 각종 정책과제가 체계적으로 가지를 뻗어 정책효과라는 꽃과 열매를 맺는다. 뿌리가 잘 박히면 나머지는 자연스레 따라온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의 국정철학은 아직 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국민주권, 실용, 헌정질서 등 핵심 키워드는 나와 있으나 그것들을 정합성 있게 연결해 체계적인 큰 틀로 담론화한 국정철학까지는 가지 못했다. 업무보고를 작성한 공무원들뿐 아니라 필자를 포함한 누구에게도 새 정부의 국정철학이 잘 보이지 않는다. 국정기획위원들과 대통령 측근 인사들, 심지어 이 대통령 본인도 남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 만큼 명료한 국정철학을 머릿속에 담고 있지 않을 것이다.
특히 이번엔 정국 상황마저 국정철학의 이른 정립을 방해했다. 조기 대선을 치르느라 후보마다 준비 시간이 부족했다는 점, 비정상적 일정이라 인수위원회가 가동될 수 없었다는 점, 전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찬반이라는 선거 구도상 정책 의제가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점, 양극화의 심화로 양 선거진영이 서로 상대를 깎아내리는 데만 몰두했다는 점 등으로 인해 새 정부의 국정철학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거의 논의조차 되지 못했고 주목받을 수도 없었다.
이제 이 대통령 취임 후 겨우 3주 지났다. 부처별 업무보고에서 국정철학을 만족스럽게 반영시키지 못한 건 당연하다. 이 시점의 업무보고는 완성된 국정철학을 완전하게 담은 과제와 계획을 최종 결과물로 내놓는 품평회가 아니다. 새 정부의 핵심 설계사들이 각 부처의 상황을 파악하고 상호 의견을 주고받으며 한편으로 국정철학을 정교하게 가꾸어가고 다른 한편으로 그에 맞는 구체적 과제를 찾아가는 과정상의 중간 발표회 정도일 수밖에 없다.
이 쌍방향 소통의 자리에서 한쪽은 의욕이 넘쳐 화내며 질책하고, 다른 쪽은 변명에 급급하다 억울해하는 모습을 보여선 곤란하다. 정치권력과 행정실무는 동반자답게 상호 협력·보완해야 한다. 그래야 시대를 정확히 분석해 적절한 시대정신을 짚고 그에 필요한 가치와 덕목으로 국정철학을 세워 적합한 정책과제를 처방하며 변화와 지속성의 조화를 기할 수 있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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