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은 있지만 책임은 없다
파이낸셜뉴스
2025.08.03 19:07
수정 : 2025.08.03 19:07기사원문
의과대학 학생들의 집단유급을 막기 위해 결국 정부가 이들에게 특례를 허용키로 했다. 교육부가 내놓은 가이드라인을 보니까 내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꽤 까다로운 교수의 전공수업에서 상당히 '심각한 점수'를 받았다.
교수에게 읍소해 적당한 구제책을 마련하는 게 가능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재수강하라"는 한마디가 전부였다. 그 한 과목 때문에 졸업이 늦어질 수도 있었지만 원칙이 그런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의대생과 내가 처한 상황은 다르다. 나는 단지 게을렀을 뿐이고, 의대생들은 정부 정책에 반대하며 집단행동을 벌인 것이다. 그러나 낙제점을 받고도 진급할 수 있다는 '특례'의 파격성은 여전히 당황스럽다. 마치 빨간불에 길을 건넌 사람에게 "안전을 위해 특별히 파란불에 건넌 걸로 인정한다"는 처분을 내린 것과 같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재수강은 흔히 볼 수 있는 경우였다. 대개 두 부류였다. 하나는 나처럼 게으른 학생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말 그 과목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이었다.
어떤 이유든 결과는 똑같았다. 재수강으로 안 되면 한 학기를 더 다니는 방법뿐이다. 누구도 "이 과목이 어려우니 그냥 통과된 걸로 해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의대생들은 개인적 실패가 아니라 정책에 대한 신념 때문에 수업을 거부했다. 정부의 의대 증원정책을 반대하며 집단휴학에 나선 것이니 이것을 단순한 학사 문제로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정치적 행동의 결과를 학사 특례로 해결하려는 발상은 적절할까.
나는 의대생들의 신념을 존중한다. 정부 정책에 반대할 권리도 인정한다. 그러나 모든 행동에는 결과가 따른다. 수업을 거부했으면 그에 상응하는 학사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것은 냉정한 현실이지 권리 침해가 아니다.
정부는 의료인력 수급 차질로 인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럴듯한 명분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간호대 학생들이 집단휴학을 하면 그들에게도 특례를 줄 것인가. 법대생들이 사법고시 부활을 요구하며 수업을 거부하면 그들도 유급 없이 진급시킬 것인가.
"미래의 의사로서 국민 건강을 생각해 행동하고 있다." 의대생들의 말이다. 그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의사가 되고 싶다면 먼저 학생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 수업 출석과 시험과 과제 제출을 거부한 학생에게 의사로서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이 앞에서 공정함이라는 가치가 흔들리고 있다. 어떤 학생은 한 과목 때문에 졸업이 늦어지고, 어떤 학생은 수업을 모조리 거부했어도 특례로 진급한다. 이것이 교육의 본질인가.
낙제점을 받고도 그냥 넘어가는 학교는 학생에게 책임지는 사회를 가르칠 수 없다. 그들이 앞으로 나가서 살아야 할 진짜 인생은 그렇지 않다. 실패하면 다시 시작해야 하고, 잘못하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다.
의대생들에 대한 특례의 부적절성에 대한 지적에 정부는 '학생들의 상처를 보듬어야 할 때'라고 대답했다. 진정한 보듬기는 잘못된 행동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옳은 길로 이끄는 것이다. 그들이 진짜 어른이 돼 환자 앞에 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참된 보듬기일 것이다.
결국 이 모든 소동의 끝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떼를 쓰면 된다는 교훈인가, 아니면 권력 앞에서는 원칙도 구부러진다는 씁쓸한 현실인가. 의대생들의 상처는 보듬어주면서 정작 환자들의 고통은 외면하는 이 기형적 구조에서 과연 누가 진짜 상처받은 사람일까.
ahnma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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