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공짜로 모십니다” 해외 골프여행에 숨겨진 ‘셋업 지옥’
파이낸셜뉴스
2025.08.07 11:00
수정 : 2025.08.07 11: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해외 골프여행을 제안받은 사업가가 태국 현지에서 미성년자 성매매에 연루되는 ‘셋업’에 걸려 수억 원을 뜯긴 사건이 뒤늦게 밝혀졌다. 피해자가 범죄자처럼 몰리는 정교한 연극과 공갈 협박의 끝에는 해외에서 범행을 기획하고 국내로 돈을 빼돌린 조직이 있었다.
경기남부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공갈 및 위치정보법 위반 등의 혐의로 조직 총책 A씨(60대) 등 4명을 구속하고, 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7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 조직은 2022년 12월, 태국으로 골프 여행을 떠난 사업가 B씨를 상대로 함정을 꾸몄다. 미성년자 성매매를 하도록 유도한 뒤, 수사기관에 적발된 것처럼 연극을 벌여 사건을 무마해주겠다며 2억4000여만원을 갈취했다.
범행은 사전에 치밀하게 설계됐다. A씨는 범행 한 달여 전부터 B씨에게 접근해, 골프 모임에서 친분을 쌓으며 “형님”이라 부르는 등 관계를 좁혔다. 그는 B씨 차량에 위치추적기까지 몰래 부착해 우연을 가장한 접촉을 이어가며 심리적 거리를 좁혔다.
그러던 중 A씨는 “최근 홀인원을 해서 공짜 해외 골프 티켓이 생겼다”며 비행기 티켓을 건넸고, B씨는 이를 믿고 동행했다. 하지만 현지 일정 중 A씨는 미성년자 성매매를 알선했고, 관리책 등과 짜고 실제 수사기관에 체포되는 것처럼 연출했다.
겁에 질린 B씨는 “수사를 무마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말에 속아 2억 원이 넘는 돈을 송금한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B씨가 2023년 9월, 캄보디아에서 유사한 수법의 범죄 일당이 붙잡혔다는 뉴스를 접하고 주변에 털어놓으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첩보를 입수한 경찰은 수사를 벌여 A씨 일당을 검거했고, 이들은 지난해 11월 검찰에 송치됐다. A씨와 공범들은 현재 1심에서 징역 5~3년을 선고받고 항소 중이다.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A씨 조직이 셋업 사기 외에도 해외 카지노에서 도박 사기를 벌여 또 다른 재력가들을 속여 수억 원을 갈취한 사실도 확인했다.
2023년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A씨 등은 캄보디아에서 사업가 C씨 등 5명을 속여 9억5000만원 상당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골프연습장에서 알게 된 이들에게 해외 골프여행을 제안해 캄보디아로 데려간 뒤, 카지노 관계자까지 동원해 고의로 도박 빚을 지게 하는 수법이었다.
실제로 C씨는 70만 달러(약 9억원)의 빚을 떠안은 뒤, “도박 빚 때문에 일행이 억류됐다”는 말에 속아 6억8000만원을 송금했다. 다른 피해자들도 억대의 금액을 잃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 역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지난 6월 검찰에 송치됐다.
경찰은 A씨 일당의 수법을 “셋업 범죄의 전형”이라고 판단했다. 범행 의사가 없는 피해자를 범죄자로 몰아넣고, 수사를 무마해 주겠다며 돈을 뜯어낸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들은 성매매나 도박 혐의로 처벌받을 것을 우려해 신고도 하지 못한 채 고통받았다”며 “형사처벌을 빌미로 금품을 요구하는 것은 명백한 범죄이므로, 절대 응하지 말고 즉시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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