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비→재범→중독…20대 덮친 ‘고의 교통사고’ 함정

파이낸셜뉴스       2025.08.14 14:01   수정 : 2025.08.14 14:00기사원문
손석원 서초경찰서 교통조사팀장 고의사고 보험사기 주범 등 3명 송치 자제력 떨어지는 20대, 습관처럼 범행 혐의 부인했지만 영상 분석해 입증 "법규위반했다 사고나도 블랙박스 백업해둬야"



[파이낸셜뉴스] <편집자주> 전국에서 접수되는 하루 평균 112 신고는 약 5만건. 14만 경찰관들은 이 수많은 신고에 대응하며 치안을 유지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범죄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긴장의 끈을 놓을 틈은 없다. '넘버112'는 치안의 최전선에서 매일 사건을 맞닥뜨리는 경찰관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한다.



"손쉽게 돈을 벌고자 하는 청년들이 보험사기에 발을 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번 빠지면 유혹을 이기기도 어려워요."

손석원 서울 서초경찰서 교통조사팀장(경감)은 고의 교통사고 보험사기를 '마약'에 비유했다. 당장 현금이 필요한 2030이 발을 들이기 가장 쉬운 범죄 중 하나라는 게 손 팀장의 얘기다. 과거보다 접근성이 낮아졌고 중독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도 마약과의 공통점으로 꼽힌다.

서초서가 지난 6월 검찰에 넘긴 사건 피의자들도 모두 20대 남성이었다. 주범 A씨(구속)와 공범 등 3명은 2023년 초부터 지난 2월까지 2년여간 고의 교통사고를 27번 낸 뒤 총 1억4000만원의 보험금을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유흥비와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손 팀장은 "20대는 하고 싶은 게 많고 자제력이 떨어진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청년들은 더 심한 경향이 있다"며 "한 번 시작하면 범죄가 습관이 돼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피의자들은 배달일을 하다가 씀씀이가 커지자 쉽게 돈을 벌기 위해 고의사고를 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교통사고가 나서 보험금을 청구하면 보험사는 1~2주 만에 계좌로 보내준다. 이를 통해 별다른 어려움 없이 현금이 바로 들어오는 경험이 쌓이게 된다. 범행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재범률도 높아진다. 주범 A씨는 이미 같은 혐의로 한 차례 재판을 받고 또다시 범행을 저질렀다. 평소 알고 지내던 친구 2명을 동승자로 태워 합의금을 높이는 등 오히려 범행 규모를 키웠다.

이들은 교통법규 위반 차량을 주요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교차로에서 좌회전하거나 진로를 변경하면서 차선을 지키지 않는 차량을 피하지 않고 충돌하는 방식이다. 일반 교통사고로 둔갑한 보험사기에서는 법규 위반 차주가 가해자가 된다. 사건 처리가 간단하고 많은 합의금을 받기도 용이하다. 경미한 사고가 대부분이어서 개별 사건만으로 보험사기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범행이 반복되면 결국 덜미를 잡힌다. 경찰은 보험사와 금융감독원이 모니터링해 수사를 의뢰한 고의 교통사고 의심 사건을 주로 들여다본다.

이번 사건은 혐의를 입증하는 데 시간이 비교적 오래 걸렸다. 피의자들이 일부 사건만 고의 사고라고 인정하고 대부분 과실이었다며 부인했기 때문이다.

담당 수사관인 김오현 경위는 같은 영상을 50번 이상 보면서 분석에 공을 들였다. 상대 차량과 마주치면 속도를 줄이거나 경적을 울리는 일반 운전자들과 달리 속도를 일정하게 조절하거나 타이밍을 맞추는 등 고의사고를 자주 냈을 때 습득하는 습관 등을 포착해야 한다. 한국신용정보원이 운영하는 보험신용정보통합조회시스템(ICIS)에 등록된 블랙박스 영상이 혐의를 입증하는 주요 단서가 된다. 김 경위는 "영상을 계속 보다보면 안보이던 게 보이기 시작한다. 수십개 사고에서 공통점을 찾아내는 과정이 퍼즐을 맞추는 것과 유사해 다른 어떤 교통사고 사건보다 손이 많이 간다"고 했다. 서울경찰청은 수사 공로를 인정해 이 사건을 최근 우수 사례로 선정했다.


보험사기로 의심되더라도 입증이 안되는 사건도 있어 운전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 손 팀장은 "고의사고가 의심되더라도 영상이 없으면 입증할 수가 없다. 교통사고 가해자가 소극적인 경우 영상을 제출하지 않기도 하는데, 사고가 나면 영상을 반드시 백업해두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unsaid@fnnews.com 강명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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