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실용주의

파이낸셜뉴스       2025.08.13 18:50   수정 : 2025.08.13 18:50기사원문
정부, 분배 속 성장 강조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는
실질 실용주의 확립해야



성장을 강조하는 이재명 정부의 모습은 낯설다. 본색을 숨긴 페인트 모션일지언정 일단 보기에는 좋다. 많은 보수주의자들의 우려를 의식한 퍼포먼스에 그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다만 성장과 분배의 상충되는 가치를 어떻게 조화롭게 운영할지, 앞날이 미덥지는 않다.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주의는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겠다는 의미라고 믿는다.

프랑스혁명에서 잉태되고 카를 마르크스에 의해 창시된 사회주의와 전통적 자본주의의 충돌은 쉽게 절충되기 어려운 난제다. 강자와 약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부자와 빈자의 통합은 궁극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 집단의 이익을 실현하고자 끊임없이 권력을 탐하는 정치는 이념을 자양분으로 삼아 갈등을 부추긴다.

성장과 분배라는 가치의 대결은 갈수록 격화되어 분열상이 극심해진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결에서 확인된 것은 공히 폐단과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 절대선이 될 수 없다. 우파 정부도 평등과 분배를 무시할 수 없고, 좌파 정부도 자유와 성장을 도외시할 수 없다. 경계선을 넘나드는 균형적 정책이 바로 실용주의다.

참혹한 전쟁에서 기적처럼 10대 경제대국을 창출한 대한민국의 80년은 기실 성장의 역사다. 분배를 뒤로 미룬 채 국가의 명운을 고도성장에 걸고 직진한 결과 현재의 광영(光榮)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노동의 희생이 성장의 밑거름이 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평등의 가치, 노동자의 권리를 되돌아보고 강조한 것도 벌써 수십년이다.

문제는 희생의 반작용이 너무 강해 평등과 노동의 정상화를 넘어 자유와 성장을 해칠 정도로 되레 역불균형 상태에 이른 것이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역설적으로 노동의 득세는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문재인 정부에 이은 현 정부의 친노조적 정책이 걱정스러운 것은 그런 까닭에서다. 분배와 성장을 동시에 지향하고 좌우를 넘나들겠다는 실용주의는 자칫 모순의 늪에서 허우적댈 수 있다. 그만큼 절묘한 운영이 필요하다.

코뮤니즘을 겪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더 성장에 매달리는 것은 골고루 나누는 것이 발전을 저해한다는 경험칙에서다. 한국의 고도성장기를 닮은 중국의 성장 올인은 무서울 정도다. 올해 중국 경제의 최우선 목표도 물론 성장이다. 올해 경제 기조는 '안정 속 성장'(穩中求進·온중구진)' '성장으로 안정 촉진(以進促穩·이진촉온)'이다. 성장은 당분간 중국 경제정책의 최고 가치에서 제외되지 않을 것이다.

원조 사회주의 국가들도 포기한 길을 추종했다가 몰락한 국가가 아르헨티나다. 아르헨티나의 80년은 대중 영합적 정책, 산업 국유화, 복지 확대와 노동자 우대로 요약할 수 있는 '페론주의'로 대변된다. 사회주의보다 더 사회주의적이었던 아르헨티나의 결과는 국가 쇠락이었고, 노동자 유토피아도 온데간데없다. 작은 정부부터 시작한 하비에르 밀레이 현 대통령의 개혁이 성과를 내고 있는 과정은 우리도 깊이 들여다볼 만하다.

실용주의는 비단 경제에 한정되지 않은 세계적 조류가 됐다. 신냉전은 좌우 대결이라기보다는 국익 우선의 패권 다툼으로 바라봐야 한다. 이념은 단지 국가 간 결속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 도구의 의미도 무뎌지고 있다. 방향성을 잃은 것 같은 혼돈의 현대 외교도 실용주의로 표현한다. 안보와 경제가 혼재되어 어느 하나만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미국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에는 적대국, 우방국의 구분이 없다. 혈맹 한국도 우대하는 법이 없고 더 비싼 '청구서'를 내민다.

베트남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바다를 포함한 국경분쟁을 벌이면서도 합동 군사훈련을 펼친다.
한국과도 총칼을 겨눴던 베트남은 한국의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경제 파트너가 됐다. 베트남식 '대나무 실용외교'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경제든 외교든 상대와 상황에 따라 유연하면서도 강인한 전략을 구사하는 실질적 실용주의를 새 정부는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tonio66@fnnews.com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