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오즈의 마법사인가
파이낸셜뉴스
2025.08.14 19:00
수정 : 2025.08.14 19:00기사원문
무더운 여름날, 나에게 가장 시원한 피서지는 도서관이다. 어린 시절 즐겨 읽었던 동화책 '오즈의 마법사'를 다시 펼쳤다. 그런데 낡은 페이지 사이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얼굴이 '위대한 오즈'와 겹쳐 보였다.
현재 미국 경제의 대내외 불균형은 지속가능할 수 없을 만큼 확대되고 있다. 2000년 국내총생산(GDP)의 54.9%였던 연방정부 부채는 2024년에 124.1%로 치솟았고, 대외순부채도 같은 기간 15.0%에서 90.9%로 급증했다. 이런 구조적 불균형의 핵심 원인은 과도한 정부 지출과 가계의 과소비에 있다.
하지만 이 길은 마법이 아닌 대가를 수반한다. 관세는 결국 가계와 기업에 부담으로 돌아온다. 예일대 예산연구소는 8월 7일부터 발효되는 관세조치로 미국의 실효 관세율이 2.5%에서 18.4%로 급등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연구소는 이러한 관세가 단기적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1.8%p 끌어올리고, 가구당 실질소득을 평균 2400달러 감소시킬 것으로 추산했다. 관세로 수입 원자재·부품 가격이 오르고, 이는 기업의 생산비용을 증가시킬 것이다. 소비 위축으로 기업이 비용 증가를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고 이익이 감소할 것이다.
트럼프의 정책은 국제 신뢰도에도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2025년 1~4월 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요 10개 고소득국에서 미국에 대한 긍정 평가 비율은 지난해 51%에서 35%로 하락했다. 트럼프 개인에 대한 신뢰도는 바이든 당시 53%에서 24%로 급락했다. 심지어 세계 25개국 응답자 가운데 41%는 '중국이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라고 답해 미국(39%)을 앞섰다. 조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트럼프는 Fed의 고금리 기조도 비판한다. 그는 제롬 파월 Fed 의장을 "미국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 인물"로 칭하며, 조속한 금리 인하를 주장한다. '오즈의 마법사'가 출간된 시기인 1900년대 초 미국에서도 통화량 확대를 위한 '은본위제' 논쟁이 뜨거웠다. 더 많은 돈을 풀자는 주장이었다.
Fed 통화정책 목표는 '물가안정'과 '최대 고용'이다. 올해 상반기 미국의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상승률은 전년 대비 2.5%로 목표치(2%)를 초과했다. 하반기에는 관세의 시차 효과가 물가에 더해질 수 있다. 반면 고용은 둔화하고 있다. 5~7월 고용은 월평균 3만5000명 증가로, 2년 평균(19만2000명)을 크게 밑돌았다. 트럼프의 압력과 더불어 Fed가 고용을 우선시해 금리를 인하하면 다시 통화공급이 늘고 물가상승 압력이 강화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미국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질 수 있다. 연준의 신뢰도 하락은 곧 달러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커튼 뒤 오즈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그 굉음과 불꽃은 사라지고 허상만이 남는다.
도로시는 어떻게 집으로 돌아갔을까? 마법사가 아닌 자신의 은구두 덕분이었다. 미국 경제의 균형을 회복하는 길 역시 관세나 금리가 아닌 미국 정부와 가계의 책임 있는 선택에 달려 있다. 내년에는 미국인들이 커튼 뒤의 오즈, 즉 트럼프의 진짜 얼굴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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