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처럼 묶어 지게차에… 이주노동자 130만 시대, 끊이지 않는 차별·폭력
파이낸셜뉴스
2025.08.17 18:18
수정 : 2025.08.17 18:18기사원문
민노총, 이주노동자 실태 보고
취업비자 대부분 사업장 변경 제한
사업주에게 종속… 강제노동 족쇄
"드러나지 않는 괴롬힘 훨씬 많아"
고용부 "고용허가제 개편 추진"
"건강이 나빠져 사장님에게 업무 강도가 낮은 다른 사업장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그때부터 괴롭힘이 시작됐습니다. 3개월 동안 일을 주지 않았고, 저에게 욕하고 신발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최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이주노동자 강제노동 실태 보고대회'에서 네팔 출신 비샬씨는 "나뿐만 아니라 괴롭힘당하며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가 많이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국내 이주노동자가 빠르게 늘며 산업 현장의 필수 인력으로 자리 잡았지만, 이들에 대한 차별과 괴롭힘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는 현행 제도가 이주노동자를 취약한 지위에 몰아넣어 부당한 처우를 감내하게 만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산업 전반에서 이주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지만, 이들을 향한 괴롭힘과 폭력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전남 나주에 있는 한 벽돌공장에선 스리랑카 국적 이주노동자가 벽돌 더미에 묶인 채 지게차에 의해 들어 올려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 2월 영암 돼지농장에선 네팔 국적 이주노동자가 사업주의 폭행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동계는 국내 이주노동 제도의 문제점으로 △사업장 변경 제한 △브로커에 의한 착취 △임금체불 △피해자 지원 미비 등을 꼽는다. 하지만 이 가운데서도 가장 심각한 점은 사업장 변경 제한 정책이 꼽힌다. 현행 외국인고용법은 외국인 근로자는 입국 후 3년간 최대 3회, 이후 1년 10개월의 연장 기간에는 2회까지 사업장 변경을 허용한다. 그러나 변경 사유는 근로계약 종료나 근로조건 위반·부당한 처우 등 고용주에게 유책 사유가 있는 예외적인 경우로 한정된다. 이마저도 노동자가 직접 입증해야 해 사실상 '강제노동'에 가까운 구조라는 비판이다.
정영섭 이주노동자 평등연대 집행위원은 "거의 모든 취업비자에서 이주노동자는 사업장 변경이 제한된다"며 "이는 사업주에게 이주노동자를 종속시켜 취약한 상태로 만들고 차별과 폭력, 부당한 처우를 감내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탓에 이주노동자들은 지난 2007년 외국인 근로자의 사업장 변경 횟수를 3차례로 제한한 외국인고용법 25조 등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으나, 당시 헌법재판소는 "중소기업 인력수급을 위한 조치로 입법 재량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2020년에도 사업장 이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현행 고용허가제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헌재 판단은 바뀌지 않았다.
다만 최근 나주 벽돌공장 사건으로 이주노동자 괴롭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정부도 제도 개선 필요성을 인식했다. 고용노동부는 "외국인 노동자가 일터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위험한 근무환경에 놓인 경우 사업장 이동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노·사 및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고용허가제를 개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welcome@fnnews.com 장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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