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지만 ATM은 아닙니다

파이낸셜뉴스       2025.08.17 18:30   수정 : 2025.08.17 18:30기사원문

'이자장사'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은행권에 '포용금융' '생산적 금융'이라는 이름을 단 각종 청구서가 날아들고 있다. 배드뱅크 재원 분담, 소상공인 지원, 교육세 인상에 10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참여까지 구실도 여럿이다. 마치 '이전에 맡겨 놓은 돈을 내놓으라'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금융당국은 배드뱅크를 통해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 무담보채권'을 일괄 매입·소각할 예정이다. 정부가 추산하는 해당 부실채권은 약 16조4000억원 규모, 대상자는 약 113만4000명이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총 8000억원가량이다. 정부가 재정에서 절반(4000억원)을 내고, 은행을 포함한 금융권이 나머지를 조달해야 한다.

업권별로 얼마씩 분담할 것인지를 두고 눈치게임이 한창이지만 업권마다 사정이 달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충격 등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저축은행업계는 '금융권'으로 묶여 재원 분담을 요구받는 것 자체가 불만이다. 대부업계는 채권 매입가가 적어도 25%를 넘는데, 이를 5%에 일괄 매각하라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어느 금융권 협회도 선뜻 분담비율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은행권이 90%(3600억원)를 책임질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교육세 인상은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옴)에 가깝다. 교육재정 혜택과 전혀 무관한 금융권에, 그것도 누진세로 부과하려는 것이어서 큰 반발을 사고 있다. 현행 교육세법에 따르면 이자, 배당금, 수수료, 보증료 등 금융·보험업자의 '수익금액'에 0.5%의 교육세를 부과한다. 개정안은 수익금액 1조원 초과분에 0.5%의 두 배인 1%를 적용한다.

5대 은행은 지난해 실적을 바탕으로 올해 교육세로 약 5000억원을 냈다. 개정안대로 낼 경우 (5대 은행의 자체 분석 결과) 해당 금액은 1조원에 육박한다. 은행의 이자, 수수료 등이 해마다 늘어나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에는 1조원을 넘을 것이 확실시된다. 상위 5개 손해보험사와 6개 생명보험사의 추가 부담액도 (단순 계산으로) 많게는 35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생산적 금융도 은행들에는 강한 압력으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생산적 금융은 은행의 자금이 손쉬운 주택담보대출 등에서 벗어나 생산적인 분야로 흐르도록 기업대출을 확대하고 투자에도 참여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 등 신성장 전략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가 추진 중인 '100조원 국민성장펀드'에 돈을 태우라는 얘기다.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금융권이 5년간 20조~30조원을 떠맡아야 할 형편이다. 시중은행에는 연간 조단위의 할당이 떨어질 게 뻔하다.

밸류업 프로그램에 따라 주주환원을 늘려야 하는 입장에서는 난감하다. 은행의 위험가중자산(RWA)이 늘고, 주주환원의 기준이 되는 보통주자본비율(CET1)은 낮아질 수밖에 없어서다. 금융권에 따르면 4대 금융지주의 위험가중자산은 올해 상반기 기준 1207조원가량이다. 최근 5년 사이 23%가 늘었다.

당장 은행권이 처한 상황도 녹록지 않다. 올해 상반기 역대급 실적을 써내긴 했지만 경기침체가 길어지면서 은행의 연체율은 높아지고 있고, 가계대출 규제가 더 강해지면서 수익을 내기는 어려워졌다. 올해 하반기 4대 금융지주의 순이익이 상반기 대비 25%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자장사'나 '은행 종노릇'과 같은 자극적인 단어로 '죄인' 취급을 하다가 정작 돈이 필요하면 은행을 압박하고, 은행에 손을 벌리는 관행부터 없애야 한다.
은행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권은 정부나 정치권이 옥죄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엄연히 키워야 하는 '산업'이다. 말로만 금융산업, 금융시장 육성을 외칠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하게 철폐함으로써 금융회사의 숨통을 터주고, 금융산업을 대전환의 길로 이끌어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 경제도, 기업도 강해진다.

blue73@fnnews.com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