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위탁아동의 '돌아갈 집' 환상

파이낸셜뉴스       2025.08.17 18:32   수정 : 2025.08.17 22:33기사원문

가정위탁 제도의 궁극적인 목표는 '원가정 복귀'다. 아이가 잠시 머물다 원래의 가정으로 돌아가, 가족의 사랑 속에서 온전히 성장하는 것. 이보다 더 이상적인 그림은 없다. 그러나 만약 돌아갈 집이 아이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곳이라면, 혹은 애초에 돌아갈 집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이상적인 목표는 아이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현실은 냉혹하다.

학대, 방임, 빈곤 등의 이유로 위탁된 아이 중 극소수만이 원가정으로 돌아간다. 설령 돌아가더라도 제대로 된 양육과 돌봄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우리 법과 제도는 '언젠가 돌아갈 것'이라는 희미한 가능성을 위해 아이의 '현재'를 담보 잡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비극이 시작된다. '원가정 복귀'를 최우선으로 하기에, 아이를 실질적으로 키우는 위탁부모에게는 어떠한 법적 권한도 주어지지 않는다. 친부모의 친권이 아이를 보호하기보다 오히려 아이의 삶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아이는 자신을 사랑으로 돌보는 위탁부모 곁에 있으면서도, 법적으로는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임시 거주자'의 지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 법적 공백은 아이의 삶을 송두리째 흔든다. 아파도 제때 수술받지 못하고, 장학금을 받을 기회가 와도 자신의 통장 하나 만들 수 없다. 이 모든 불편과 제약의 순간마다 아이는 가슴에 돌이킬 수 없는 질문을 새긴다.

'나는 왜 안 되지?' '나는 이 집의 진짜 가족이 아닌가?' 결국 '원가정 복귀'라는 이상은 아이에게 안정적인 소속감을 주는 대신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깊은 불안감과 정체성의 혼란을 안긴다. 아이는 위탁가정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온전한 애착을 형성하기 어렵고, 그렇게 위태로운 유년기를 보낸 아이들은 만 18세가 되어 아무런 준비 없이 세상으로 내몰린다. 이들이 겪는 자립의 어려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의 현재를 희생시킨 우리 제도의 예고된 실패다. 이제 우리는 고통스러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손에 잡히지 않는 이상을 위해 아이들의 현재를 계속 희생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국민권익위원회는 이제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믿는다. 원가정 복귀가 가능한 경우에는 최선을 다해 지원하되, 그것이 불가능하거나 아동의 복리를 해치는 상황이라면 과감히 아이의 '현재의 안정'과 '미래의 행복'을 선택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정위탁 특별후견인' 제도와 같은 현실적인 법적 장치를 시급히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친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무거운 절차 없이도 위탁부모가 의료, 금융, 교육 등 아이의 일상에 필수적인 사안에 대해 '제한적 법적 대리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아이에게 '너는 이곳에서 안전하게 보호받는 소중한 가족 구성원'이라는 법적·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최소한의 울타리다.

이러한 법적 토대 위에 국민권익위는 'IT 기반의 민관 협력 거버넌스 체계 구축'을 제안한다. 모바일 기반의 '가정위탁 동행 플랫폼'을 통해 아이의 상황을 투명하게 공유하고, 법률·의료 전문가와 민간 파트너들이 함께 참여하는 '아동 성장 파트너십위원회'를 통해 각 아이에게 가장 최선의 길이 '원가정 복귀'인지, 아니면 '안정적인 장기 위탁'인지를 신중하게 결정하고 맞춤형 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

한 아이의 세상은 어른들이 만든 제도 위에서 자란다.
더 이상 '돌아갈 집'이라는 닿을 수 없는 환상으로 아이들의 소중한 현재를 앗아가서는 안 된다. 아이가 지금 발 딛고 선 그곳이 가장 안전하고 행복한 집이 될 수 있도록 국가가 현실적인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한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모든 아이가 오늘의 행복 속에서 내일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제도의 방향을 바로잡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

박종민 국민권익위 고충처리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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