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망주 미국직행은 도전일까, 환상일까

파이낸셜뉴스       2025.08.17 18:32   수정 : 2025.08.17 18:32기사원문

20세기 말, 박찬호의 성공은 한국 아마추어 야구에 '메이저리그 직행' 열풍을 불러왔다. 특급 유망주들이 너도나도 미국으로 향했다. 하지만 직행 러시는 실패 사례가 늘어나며 곧 벽에 부딪혔다.

그리고 류현진, 김하성처럼 국내에서 검증된 뒤 포스팅을 통해 미국에 진출한 사례가 새로운 성공 공식을 만들었다. KBO 무대에서 빛을 본 선수들은 더 이상 직행만이 유일한 길이 아님을 증명했다.

그러나 최근 다시 직행 바람이 거세다. 지난 2023년 심준석, 2024년 장현석·이찬솔이 미국행을 택했다. 세 선수 모두 '제2의 박찬호'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심준석은 고작 3년 만에, 이찬솔도 1년 만에 방출됐다. 장현석은 조금 나았지만 그 역시 육성·부상자 명단을 전전하고 있다. 이들의 사례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직행이 최선인가?"

직행은 분명 장점이 있다. 계약금 규모만 놓고 보면 미국 구단이 더 후하다. 올해 광주일고 김성준은 텍사스와 120만달러에 계약했고, 최대어 박준현은 160만달러+α를 제안받았다. 하지만 북일고 박준현은 국내 잔류를 택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냉철한 자기 판단이었다. 마이너리그 현실은 녹록지 않다. 처우가 개선됐다 해도 어디까지나 '예전보다 나아진 것'일 뿐이다. 메이저리그에 오르지 못하면 남는 건 초라한 생활비와 고된 일상이다. 한국처럼 애지중지 관리받기도 어렵다. 대부분은 경쟁 속 소모품이 된다. 언어·문화 장벽, 외로운 숙소생활까지 버텨내려면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수다.

반면 KBO에서의 성과를 발판으로 미국행에 성공한 선수들은 반대의 길을 걸었다. 이정후는 6년 1억1300만달러라는 초대형 계약을 따냈고, 김혜성도 곧바로 메이저리그 무대에 올랐다. 올해는 송성문(키움)이 120억원 장기 FA 계약을 마친 뒤 포스팅을 선언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국내에서 이미 실력과 상품성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성공 위에서의 도전은 모험이 아니라 투자였고, 실패해도 돌아올 무대가 있다. 무분별한 직행은 곧 한국야구의 인재 유출이자 리그의 손실이다. 심준석과 장현석은 단지 개인의 실패가 아니다. 그들은 한국야구가 잃어버린 소중한 자산이었다.

도전은 응당 존중받아야 하고 응원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도전이 얼마나 위험하고 고단한 길인지, 스스로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꿈을 꾸는 건 자유지만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선 철저한 준비가 전제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메리칸 드림은 달콤한 환상에 그칠 뿐이다.

jsi@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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