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보다 국채
파이낸셜뉴스
2025.08.18 19:11
수정 : 2025.08.18 19:11기사원문
이 외에 '소득 있는 곳에 과세가 있다'는 조세의 기본원칙을 근간으로 세율을 높이는 증세도 있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경제주체들의 반발 등으로 조세저항이 만만치 않다. 소비와 투자심리 위축 등 부작용도 적지 않다. 재원을 늘리는 또 다른 루트는 화폐 발행이다. 통화량이 늘수록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는 게 아킬레스건이지만, 이에 따른 물가상승분은 간접적으로 세금을 거둬들이는 효과를 낸다. 이른바 '인플레이션 조세'로 높아진 물가만큼 지출이 늘어나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세율을 높여 더 거둬서 쓸 건지, 돈을 찍어 미리 쓸지가 차이다.
세제개편발 증세 논란이 식지 않고 있다. 전 정부에서 낮춘 세율과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 등을 환원시켜 세금을 더 걷는 개편안이다. 기업은 안팎으로 늘어난 세금에 실적모멘텀 둔화를 우려하고, 투자자들은 거래비용 증가 등으로 오천피 동력 약화를 우려한다. 재계는 물론 씨티그룹, CLSA 등 유수의 해외 IB들도 잿빛 전망을 쏟아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 한껏 고조됐던 코리아밸류업 기대감은 두달도 채 안 돼 증세쇼크로 불확실성에 갇혔다. 정책은 타이밍인데, 시기적으로 납득이 쉽게 되지 않는 게 사실이다. 미국 관세폭탄으로 기업들의 글로벌 가격경쟁력이 저하되는 절체절명의 시점에 법인세까지 올리면 기업을 사지로 내모는 격이다. 외국인 투자 유치에도 걸림돌이다. 주요 선진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증권거래세율 상향과 대주주를 보유액 기준으로 가르마를 타는 것도 짚어볼 지점이다. 수익과 무관하게 주식을 팔면 내야 하는 증권거래세율을 현행 0.15%에서 0.20%로 0.05%p 올린다고 한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시장 맹주인 미국을 비롯해 일본, 독일 등에는 증권거래세가 없다.
일률적인 과세도 짚어봐야 한다. A주식에서 얻은 차익보다 B주식의 손실이 더 커도 결과적으로 A주식의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손실은 투자자가 감내하고, 차익은 국가가 세금으로 떼가는 구조다. 투자자들의 볼멘소리가 나올 법하다. 증세를 하면 당장 세금은 더 걷히겠지만, 거래대금 감소와 증시 이탈 등으로 시가총액이 쪼그라들어 안정적인 세수 확보를 장담할 수 없다. 실제 지난달 16조원까지 치솟았던 일일 거래대금이 이달 들어 10조원대로 주저앉았다. 이제라도 대주주 기준을 현실적으로 재정립하는 등 증시 전반의 정책 신뢰성을 끌어올려야 오천피 시대가 가능하다. 증세에 따른 기업과 시장의 장기적 후유증을 감안하면 적정 선에서 국채나 화폐를 더 찍어내는 차악을 택하는 게 나을 수 있다.
winwin@fnnews.com 오승범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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