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화학산업=나쁘다' 낙인… 화평법 다시 손봐야"
파이낸셜뉴스
2025.08.20 18:16
수정 : 2025.08.20 18:16기사원문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
'안전과 산업 육성' EU 제도 모방
취지 제대로 반영 못한 채 법제화
행정 절차만 늘어 기업 성장 발목
감시·처벌에 얽매인 법 수정해야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사진)는 20일 국내 화학산업을 둘러싼 부정적 인식과 과도한 규제에 우려를 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 교수는 대한화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과학·환경·에너지 분야에서 3200편 이상의 논문과 칼럼을 발표한 화학계 원로다.
특히 화평법은 유럽연합(EU)의 '리치(REACH)' 제도를 모방했지만 환경 보호, 국민안전, 산업 진흥이라는 본래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EU는 리치를 통해 △환경 및 국민 안전 확보 △상거래 활성화 △산업 육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반면 한국은 '등록과 평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로 인해 불필요한 행정절차가 늘고 기업 입장에선 시간과 비용 낭비로 이어진다. 그는 "유해성 정보를 대부분 유럽에서 비싼 값에 사오고 환경부가 이를 전면 감독하는 구조는 석유화학 산업 전반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됐다"며 "화학 기술은 금지의 대상이 아니라 보다 안전하게 관리·운영될 수 있도록 발전시켜야 할 분야"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 교수는 국민이 안전과 환경에 대해 우려하는 점에 깊이 공감하며, 해당 법의 전면 폐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봤다. 그 대신 감시와 처벌 중심의 틀에서 벗어나 산업과 기술을 함께 육성할 수 있도록 법을 전면적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잘못된 산업 인식의 사례로 지속가능항공유(SAF) 정책도 언급했다. 유럽은 유채 기반 바이오디젤 산업과 연계해 SAF를 대규모 윤작 방식으로 생산하고 있다. 전체 농지의 3분의 1을 유채밭으로 활용할 만큼 인프라가 구축돼 SAF가 석유 기반 항공유와 유사한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제주도와 부안 등에 유채밭을 조성했지만 항공유로 전환할 수 있는 수준의 생산량조차 확보하지 못한 실정이다. 그는 "유럽의 바이오디젤 시장 규모나 운영체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정책을 설계한 결과 경쟁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가 됐다"고 꼬집었다.
이덕환 명예교수는 화학산업을 '칼'에 비유했다. 그는 "칼은 제대로 쓰면 인류를 살리지만 잘못 쓰면 해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칼을 금고에 넣는다고 능사는 아니다"라며 "정치와 행정이 화학산업을 '나쁜 산업'으로 낙인 찍는다면 산업 경쟁력 회복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석유화학산업은 단순히 규모만 큰 산업이 아니다. 반도체·자동차·조선 등 주요 제조업에 에너지와 소재를 공급하는 핵심 후방산업으로 국민 생활과 국가경제의 기반이 된다.
끝으로 그는 "화학산업을 감시와 처벌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안전하고 효율적인 운영전략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정부에 당부했다.
moving@fnnews.com 이동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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