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 아이만 이렇게 들썩들썩할까" 가바 부족이 원인?
파이낸셜뉴스
2025.09.20 07:00
수정 : 2025.09.20 07: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가바는 뇌에서 억제성 신경전달물질로 작용하지만 초기에는 오히려 흥분성 물질로 출발한다. 미성숙한 신경세포에는 염소 음이온의 농도가 매우 높고 염소 이온의 수송체가 부족하다. 이로 인해 시냅스 주변의 환경이 거꾸로 형성되어 가바가 전달될 때 과분극(세포막 안의 전위가 원래보다 떨어지는 현상)이 아닌 탈분극(세포막 안의 전위가 원래보다 상승하는 현상)을 일으킨다.
또한 미성숙 신경세포에는 주요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가 거의 없다. 태아와 신생아의 뇌회로가 발달하려면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이 시냅스를 빠르게 활성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한데 글루타메이트가 없기 때문에 가바가 이 역할을 대신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뇌과학자들은 너무 강력한 흥분성 물질인 글루타메이트는 뇌에 부담이 되기 때문에 초기에는 가바에게 그 역할을 맡긴 것으로 추측한다. 이렇게 흥분성 신경전달물질로 뒤바뀐 가바는 황무지 같은 뇌에 시냅스를 활발하게 구축하면서 신경전구세포(신경계의 여러 가지 세포를 생산할 수 있는 전구세포)의 증식, 이동, 분화를 촉진한다. 뇌신경과학자들이 ‘거대 과분극 포텐셜(전위)’이라고 부르는 초기 뇌 발달 현상을 가바가 주도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바가 흥분성에서 억제성으로 바뀌고 나면 그와 짝을 이루는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바로 글루타메이트이다.
글루타메이트는 몸 안에서 자연 생성되는 아미노산이자 척추동물의 신경계에서 가장 풍부한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이다. 가바 합성 과정에 필요한 전구체이지만 가바와 완전히 반대 작용을 한다.
신경회로가 올바르게 작동하려면 흥분과 억제 사이의 균형이 매우 중요하다. 만약 성장기에 이 균형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으면 여러 발달질환과 뇌질환이 나타날 수 있다. 이 균형의 가장 중요한 결정 인자가 바로 가바와 글루타메이트의 균형이다.
가바가 부족하면 불안, 수면장애, 뇌전증, 무도증, ADHD, 자폐 스펙트럼 장애 등이 나타나고 너무 넘치면 무기력, 우울, 호흡곤란 등이 나타난다. 글루타메이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조현병, 치매와 같은 여러 행동장애가 나타난다.
가바와 글루타메이트의 균형은 안정적인 뇌파, 기분조절, 행동, 사고력, 정서, 감정처리 등에 두루 관여하므로 이 균형을 획득하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아동기와 청소년기는 이 균형이 만들어지는 결정적 시기다. 이 시기 아이들은 여러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뇌회로를 만들어간다. 불필요한 연결은 끊어버리고 필요한 연결은 강화한다. 그래야 뇌가 최소한의 에너지로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회로의 연결과 차단은 시각정보를 분석하는 후두엽(대뇌피질의 가장 뒤쪽 영역)에서 시작하여 점점 앞쪽으로 진행된다. 모든 감각이 모이고 언어, 감정, 논리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대뇌피질의 가장 앞쪽 영역)이 가장 늦게 발달한다.
아동과 청소년이 판단이 미숙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은 뇌가 여전히 회로를 확장하며 발달 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기 긍정적인 경험을 많이 하고 논리적 사고를 기르고 감정을 다스리는 훈련을 해야 안정적으로 행동하는 성인으로 자라게 된다. 이것을 가바와 글루타메이트의 균형, 혹은 흥분 뉴런과 억제 뉴런 균형을 획득하는 과정이라 표현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흥분 뉴런과 억제 뉴런의 균형을 만드는 데에는 가바의 양이 큰 영향을 끼친다. 뇌전증을 앓는 아동의 뇌척수액 가바 농도는 정상 아동의 농도보다 훨씬 낮다.
신경생리학에서는 이미 뇌전증을 가바 억제 시스템의 부재로 인한 비정상적인 신경흥분 증상으로 받아들인다. 불안, 우울증, 조현병 등의 정신질환은 억제성 신경신호 전달이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도 쌓이고 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가 성장기에 흥분-억제 균형이 잘 발달하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필요하다면 가바 농도를 측정해보아야 한다. 가바 농도 측정은 몇몇 바이오 전문기업들이 개발한 테스트 키트를 이용해야 하고 비용도 높다.
특별히 결핍이 의심되는 이상 증상이 없다면 테스트를 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만약 아이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흥분을 잘 하고 화를 참지 못한다면 가바 부족으로 인한 증상이 아닌지 한 번쯤 의심해보고 검사를 받아야 한다.
잘 흥분하는 자녀를 위해 부모가 해야 할 일 10가지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려면 아동기와 청소년기의 경험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부모는 아이에게 삶의 환경이자 가장 밀접한 경험의 대상이다. 그만큼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양육하느냐가 아이의 뇌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아이의 흥분-억제 균형이 잘 발달하게 하려면 부모로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다음의 열 가지 방법을 명심하자.
1. 아이가 놀이, 운동, 취미 등으로 즐거운 시간을 갖도록 격려한다.
2. 의젓하고 어른스러운 행동, 선하고 예의 바른 행동을 하면 칭찬하고 보상한다.
3. 위험한 행동을 하려는 욕구를 새로운 경험을 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준다.
4.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특히 분노, 불안 등을 스스로 다스리는 방법을 찾도록 유도한다. 운동, 노래, 악기연주, 음악감상, 영화감상, 책 읽기, 글 쓰기 등 아이가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가도록 돕는다.
5. 문제 해결 과정을 대화로 알려준다. 어떤 선택을 했을 때 그에 따라오는 과정과 결과에 대해 논리적으로 알려준다.
6. 꼭 지켜야 하는 생활 규칙, 행동 규범 등을 정해준다. 규칙적인 습관과 규범이 뇌의 행동 패턴을 만들게 된다.
7.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나눈다.
8. 서로의 기억과 감정을 나누는 시간을 자주 갖는다. 감정을 말로 잘 표현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9.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타인의 삶을 존중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길러준다.
10. 하루 8시간 이상 충분히 잠을 자게 한다. 수면 패턴은 흥분-억제 균형을 만드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한 아이는 충동성, 스트레스, 불안, 우울, 과격한 행동을 할 확률이 훨씬 높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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