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꿈꾸는 동남아… 청년들은 살기 어려워 출산 포기

파이낸셜뉴스       2025.09.07 18:43   수정 : 2025.09.07 18:43기사원문
경제규모 커지며 자산불평등 심화
청년체감 삶과 국가발전 간 ‘괴리’
명문家 권력독점 등에 불만 커져
"국책은행 다녀도 내집마련 30년"
베트남·태국 출산율 하락 결과로



【파이낸셜뉴스 하노이(베트남)=김준석 특파원】 동남아시아가 '글로벌 경제를 이끄는 핵심 성장 엔진'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이들 지역 청년 세대가 체감하는 삶의 질은 되레 후퇴했다고 인식하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들 지역은 지난 십수년간 역동적인 개발시기를 거치면서 경제 규모가 커지고 삶의 질은 나아지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정치가 이에 걸맞게 성숙되지 못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특히 청년층들은 자국 정치 불신과 경제 양극화 등에 따른 불평등에 대해 불만이 크게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동남아 청년들 "소득 분배 불공정"

동남아의 대표적인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연구기관인 ISEAS-유숩 이샤크 연구소는 2024년 8월부터 10월까지 6개국(베트남·인도네시아·태국·말레이시아·필리핀·싱가포르) 대학생 3081명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의 '불평등 여부'에 대한 설문 결과를 바탕으로 '동남아 청년 불평등 리포트'를 지난 7월 발간했다.

우선 소득 분배에 대한 설문에서 "불공정하다"고 답한 비율은 인도네시아 67.3%, 필리핀 62.8%, 태국 60.3%에 달했다. 반면 베트남과 싱가포르는 답변자의 70% 이상이 "공정하다"고 평가해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식차를 보였다.

객관적 불평등 지표인 지니계수도 체감지수와 괴리가 컸다. 지니계수는 값이 '0'(완전평등)에 가까울수록 평등하고, '1'(완전불평등)에 근접할수록 빈부격차와 소득 불평등이 크다는 것을 나타낸다.

필리핀은 2024년 지니계수 0.42로 조사 대상국 중 가장 높았으며 체감지수 역시 두 번째로 높았다. 반면, 태국은 지니계수가 0.35로 조사 대상 국가 중 낮은 편에 속했지만, 반대로 청년층 60%는 "불공정한 상태"라고 답해 괴리가 컸다.

연구진은 이에 대해 "청년들이 단순히 통계가 아닌 생활 현실, 정치 신뢰, 경제 전망을 통해 불평등을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태국에서는 장기간 지속된 정치 혼란과 도시-농촌 격차가 체감 불평등을 키운 것으로 분석했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청년들은 불평등에 대한 이유로 '정치 불신'과 '경제 비관'을 꼽았다. 인도네시아는 현재 청년 실업률이 심각한데다 부패와 비효율적 행정도 불만을 높이는 이유로 지목됐다. 필리핀은 정치 명문가문 중심의 권력 집중, 부정부패가 불평등 인식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됐다. 태국은 장기간의 쿠데타와 정쟁이 사회 불만의 뿌리로 꼽혔다.

반대로 싱가포르와 베트남 청년들은 경제 성장과 정치 안정이 불평등 인식을 완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베트남 청년의 76%가 소득 분배가 "공정하다"고 답해 조사 대상국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공산당 주도의 개혁·개방 정책과 외국인 투자 확대를 통해 매년 150만명 이상이 글로벌 중산층으로 편입된 점이 체감 불평등을 낮췄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출산율 떨어지고 실업률 높아지고

글로벌 성장 엔진으로 꼽히는 동남아 지역은 각 국마다 선진국 진입 목표를 수립하고 국가 과제 달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베트남은 독립 100주년인 2045년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와 태국은 최근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기구(OECD) 가입을 국가적 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인해 실업률 상승과 고물가까지 덮치면서 청년들의 삶의 질은 계속 나빠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청년들의 삶의 질 저하는 출산율 저하 현상으로 나타났다. 베트남 정부는 지난 6월 1988년부터 유지해온 '두 자녀 권고 정책'을 전면 폐지했다. 베트남은 지난해 합계 출산율 1.91명을 기록하며 자연 인구 재생산 수준(2.1명)을 밑돌았다. 특히, 경제 중심지인 호찌민시의 경우 1.3명대까지 떨어졌다. 유엔인구기금(UNFPA)은 베트남이 20년 내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베트남 국책 은행에 다니는 30대 여성 응옥씨는 "나름 안정적인 직장인 은행에 다니는데도 하노이에서 '내집 마련'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주변에서는 결혼을 재촉하지만 아이를 낳았을 때의 교육비 부담 등을 생각하면 막막하다"고 말해 최근 출산율 저하의 이유를 전했다. 현재 하노이의 평균 아파트 매매 가격은 ㎡당 2000여달러(약 290만원)에 달한다. 베트남 근로자의 평균 월급이 약 380달러(52만원)인 점을 고려해볼 때, 전용면적 70㎡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려면 꼬박 30년 이상을 모아야 하는 실정이다.

태국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태국의 합계 출산율은 1.0명으로 떨어져 한국, 싱가포르와 같은 초저출산 국가로 분류된다. 현지 언론들은 현재 추세대로면 2년마다 약 100만명이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청년 실업률이 뇌관이다. 인도네시아의 실업률은 4~5% 수준을 유지 중이지만, 청년 실업률은 10% 후반대를 기록 중이다.


자카르타에 거주 중인 교민 A씨는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취업을 못하는 현지인이 너무 많다"면서 "최근 국회의원들이 몰래 주택 수당을 비롯한 특혜성 수당을 받아온 사실에 가장 분노한 계층이 바로 20대 청년들"이라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지난해 9월부터 인도네시아 하원의원 580명이 월 5000만 루피아(약 430만원)의 주택 수당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 최근 뒤늦게 알려졌다. 해당 금액은 수도 자카르타 월 최저임금의 약 10배, 빈곤 지역 기준으로는 20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rejune1112@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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