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안전판 요구한 李대통령… 전문가들 "분산 투자·한시적 스와프가 현실적"

파이낸셜뉴스       2025.09.22 18:07   수정 : 2025.09.22 18:26기사원문
"통화스와프 없이 감당할 수 없다"
3500억弗 투자 압박에 강경대응
외환보유액 한계·시장 불안 반영

"대한민국은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심각한 위기를 직면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이 요구하는 3500억달러 대미 투자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재확인했다. '탄핵감' 발언에 이어 또다시 강경한 메시지를 내놓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비기축통화국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분산 투자·한시적 스와프가 현실적 대안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22일 공개된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협상 지연 배경에 대해 "통화스와프가 없는 상황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모두 현금 송금한다면 한국 경제가 감당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는 앞서 "그런 방식이면 대통령이 탄핵당했을 것"이라는 발언과 맥을 같이한다. 미국 측 요구액 3500억달러는 8월 말 기준 한국 외환보유액(4163억달러)의 80%를 넘어선다. 이를 단기간에 현금으로 집행하면 원·달러 환율 급등과 외환보유액 급감이 불가피하다. 외국인 투자자 신뢰를 흔들고 원화 가치 급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이 '1997년 위기 재발'을 거론한 것도 이 같은 현실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은 단기외채 비중이 절반을 넘어섰고, 외국 금융기관이 차환을 거부하면서 외환시장이 붕괴했다. 한국은행은 환율방어를 위해 달러를 대거 매도했으나 외환보유액은 두 달 만에 330억달러에서 39억달러로 추락했다. 현재 외환보유액은 4000억달러를 넘지만, 특정 시점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는 것 자체가 시장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구조적 위험은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제한 없는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체결할 가능성을 낮게 봤다. 통화스와프는 양국 중앙은행이 일정 환율로 통화를 교환했다가 만기에 되돌리는 구조다. 통상 상설·무제한 스와프는 유럽, 일본, 영국, 캐나다, 스위스 등 기축통화국에만 허용되고 있어 한국이 그 범주에 포함되기는 어렵다. 한국은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팬데믹 당시 각각 300억·600억달러 한도로 한시적 스와프를 맺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미국 금융시장 보호가 목적이었다.

정부는 3500억달러 대미 투자펀드 실행 과정에서 발생할 외환시장 충격을 우려해 미국 측에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요청하고 세부 조율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이 무제한 통화스와프 요구를 거부할 경우 스와프 범위를 조정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한미 간 통화스와프는 기재부 국제라인과도 의논이 됐고,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 측에 의사를 전달한 걸로 알고 있다"며 "미국 측에서 열심히 보고 있지 않을까"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투자 기간을 10~15년으로 늘리고, 연간 300억달러 수준의 스와프 한도를 설정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조언한다. 현금 외에 보증이나 대출을 병행해 충격을 분산시키는 것도 방법으로 꼽힌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3500억달러를 일시불로 내라는 요구는 한국 외환보유액 규모상 불가능하다"며 "연간 300억달러 수준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고, 이 한도 내에서 장기적으로 투자를 분산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제시했다.

spring@fnnews.com 이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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