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물가 속에서 본 연준의 고민
파이낸셜뉴스
2025.09.23 19:20
수정 : 2025.09.23 19:19기사원문
아이들이 게임을 좋아해서 맨해튼에 있는 닌텐도 상점도 가고 점심도 즐길 계획이었다.
맨해튼의 가을은 전 세계 관광객들로 붐볐다. 도시는 관광객을 환영하는 듯 곳곳에서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다. 우리는 일단 닌텐도 상점에 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최신 게임팩 하나와 열쇠고리를 샀다. 총 90달러였다. 이후 타임스스퀘어 인근의 M&M 가게에 들렀다. 아기자기한 기념품들이 구매 충동을 유발했다. 그러나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가격들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저렴한 열쇠고리와 자석이 10달러였다. 남자 성인 주먹으로 두 주먹 정도의 M&M 초콜릿을 사고 기념품 자석을 사고 나왔다. 가격은 37달러였다.
미국 내에서도 비싸기로 유명한 뉴욕의 생활비를 체감하고 있다. 높은 원·달러 환율까지 합해지면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진다. 뉴욕 사람들도 물가가 높다고 불평한다. 과거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수년간 인플레이션을 걱정한 이유를 몸으로 느꼈다.
문제는 관세로 물가가 또다시 들썩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해 1월 취임 후 관세를 지속적으로 올렸다. 아직까지 물가는 큰 폭으로 오르지 않았다. 기업들이 수익을 포기하며 가격 인상을 자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눈치도 보고 있다. 섣부르게 가격을 고객에게 전가했다가 정부에 안 좋은 인식을 줄 수 있다. 이미 월마트 등은 가격 인상을 추진했다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경고를 받은 적이 있다. 얼마 전 뉴욕을 방문한 호세 무뇨스 대표이사는 미국 관세로 소비자가격을 올릴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관세는 비용과 관련이 있지 제품 가격과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피해갔다. 그러나 물가는 이미 조금씩 상승하고 있다. 8월 미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2.9% 상승하며 최근 7개월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인플레이션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럼에도 연준은 고용시장 악화 때문에 최근 금리를 0.25%p 낮췄다. 올해 남은 10월, 12월에도 각각 0.25%p씩 내릴 것을 시사했다. 문제는 내년이다. 내년에는 한 번 정도 금리 인하를 예고했지만 시장에서는 세 번을 요구하고 있다. 연준이 걱정하는 것은 인플레이션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이번 금리 인하를 '위험관리' 차원이라고 선을 그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정책 기조를 근본적으로 전환한 것이 아니라 경제 리스크를 줄이려는 예방적 조치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결국 핵심은 인플레이션과 경기둔화 사이에서 연준이 어디까지 균형을 잡을 수 있느냐다. 정책당국은 '위험관리'라는 이름으로 조심스레 금리 완화를 시도하지만, 시장과 소비자들의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불확실성을 기회와 리스크 두 가지로 동시에 인식해야 한다. 달러 강세, 국채금리 변동, 관세에 따른 기업 실적 압박 등은 단기적으로 시장을 흔들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연준의 대응 방식, 인플레이션 궤적, 미중 무역갈등이 모두 맞물리며 투자환경을 결정할 것이다. 내년은 올해보다 더 어려운 투자의 해가 될 것이다.
pride@fnnews.com 이병철 뉴욕특파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