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의 가을은 전 세계 관광객들로 붐볐다.
점심을 위해 근처에 추천받은 중식당을 가려고 했지만 문을 닫았다. 대안으로 '쉑쉑버거'를 갔다. 햄버거 4개, 콜라 2개, 감자튀김 한개, 어니언링 한개를 샀다. 76달러를 지불했다. 3시간 남짓 머무는 동안 206달러를 썼다. 돌아오는 길에 머리카락도 잘랐다. 아이 2명, 성인 1명 해서 120달러를 냈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녔는데 모두 합치면 원화로 50만원 조금 넘게 쓴 거 같다.
미국 내에서도 비싸기로 유명한 뉴욕의 생활비를 체감하고 있다. 높은 원·달러 환율까지 합해지면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진다. 뉴욕 사람들도 물가가 높다고 불평한다. 과거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수년간 인플레이션을 걱정한 이유를 몸으로 느꼈다.
문제는 관세로 물가가 또다시 들썩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해 1월 취임 후 관세를 지속적으로 올렸다. 아직까지 물가는 큰 폭으로 오르지 않았다. 기업들이 수익을 포기하며 가격 인상을 자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눈치도 보고 있다. 섣부르게 가격을 고객에게 전가했다가 정부에 안 좋은 인식을 줄 수 있다. 이미 월마트 등은 가격 인상을 추진했다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경고를 받은 적이 있다. 얼마 전 뉴욕을 방문한 호세 무뇨스 대표이사는 미국 관세로 소비자가격을 올릴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관세는 비용과 관련이 있지 제품 가격과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피해갔다. 그러나 물가는 이미 조금씩 상승하고 있다. 8월 미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2.9% 상승하며 최근 7개월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인플레이션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럼에도 연준은 고용시장 악화 때문에 최근 금리를 0.25%p 낮췄다. 올해 남은 10월, 12월에도 각각 0.25%p씩 내릴 것을 시사했다. 문제는 내년이다. 내년에는 한 번 정도 금리 인하를 예고했지만 시장에서는 세 번을 요구하고 있다. 연준이 걱정하는 것은 인플레이션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이번 금리 인하를 '위험관리' 차원이라고 선을 그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정책 기조를 근본적으로 전환한 것이 아니라 경제 리스크를 줄이려는 예방적 조치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결국 핵심은 인플레이션과 경기둔화 사이에서 연준이 어디까지 균형을 잡을 수 있느냐다. 정책당국은 '위험관리'라는 이름으로 조심스레 금리 완화를 시도하지만, 시장과 소비자들의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불확실성을 기회와 리스크 두 가지로 동시에 인식해야 한다. 달러 강세, 국채금리 변동, 관세에 따른 기업 실적 압박 등은 단기적으로 시장을 흔들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연준의 대응 방식, 인플레이션 궤적, 미중 무역갈등이 모두 맞물리며 투자환경을 결정할 것이다. 내년은 올해보다 더 어려운 투자의 해가 될 것이다.
pride@fnnews.com 이병철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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