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없어 못했다는 백업 가동, 이중화 당장 구축을

파이낸셜뉴스       2025.09.29 18:10   수정 : 2025.09.29 18:10기사원문
정부 전산망 마비 <中>
서버 바로 옆에 기한 지난 배터리
무사안일 행정으로 예고된 셧다운

불씨 하나에 무너진 국가 전산시스템은 무사안일 행정과 보안 불감증이 빚어낸 참사가 아닐 수 없다. 지난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대전 본원 전산실 화재로 사고 나흘째인 29일에도 국민들은 극심한 불편을 겪었다. 모바일신분증, 정부24, 주민등록시스템 등 일부가 복구되긴 했으나 여전히 대부분의 시스템은 정상화되지 못했다.

공무원들은 업무에 필요한 결재서류는 물론 출장과 근무기록 일체를 손으로 직접 써야 했다. 디지털 강국임을 자처한 대한민국의 어처구니없는 민낯에 참담함을 감출 수 없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마비된 정부 행정정보시스템 647개 중 62개가 복구됐다. 하지만 전체 서비스가 정상화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 있다고 한다. 정부는 3년 전 카카오톡 먹통 사태 당시 "재해에도 3시간 이내 복구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전산시스템만이 아니라 정부에 대한 신뢰도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참사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확고히 세우는 것이 정부의 마땅한 할 일이다. 화재 발생 시부터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좁은 전산실 내에 무정전전원장치(UPS) 배터리와 서버를 함께 두는 것 자체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배터리 화재가 사회문제로 이슈가 됐던 2017년 이후 서버와 배터리를 분리하는 움직임은 이미 확산되고 있었다. 국가 핵심 데이터를 보관한 곳이 이렇게 방치되고 있는 줄 누가 알았겠는가.

배터리 이전 작업과 권장 사용기한에 대한 논란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화재는 배터리 이전 작업 중 발생했는데 전원 차단과 복구 과정에서 과전류가 유입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배터리 이전 결정은 화재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추진됐다. 결국 불을 피하려고 작업을 하다가 제대로 불을 낸 꼴인데, 작업이 어떻게 이렇게 허술하게 진행됐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불이 난 배터리가 권장 사용기한(10년)이 지나 교체 권고를 받았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불탄 배터리는 서버에서 불과 60㎝ 간격을 두고 설치됐었다. 여기에 권장 사용기한까지 넘긴 상태였으니 이런 무사안일 행정에 기가 막힐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데이터 이중화 시스템이 예산 부족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대목도 뼈아프다. 예기치 않은 재난 상황을 가정해 다른 곳에 백업이 가능한 재난복구 시스템(DR)을 두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정부는 충남 공주에 재해복구 전용 데이터센터를 표방하며 대전·광주·대구를 잇는 국정자원 제4센터를 추진해왔다.

하지만 2008년 첫 공사를 시작한 이후 18년째 문도 열지 못하고 있다. 당초 2012년 센터 완공이 목표였지만 여러 이유로 연기됐다가 2023년에야 공사가 끝났다고 한다. 하지만 재난복구 시스템이 예산 문제로 늦어지면서 개청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지금의 재난을 맞은 것이다. 허망하기 짝이 없다.
인공지능(AI) 시대 데이터는 국가 운영의 기본 자료다. 기본조차 지키지 못하는 정부는 의미가 없다. 재난 복구 데이터 시스템 구축부터 즉각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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