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지난 배터리 교체 권고 무시하고 계속 쓴 국정자원

파이낸셜뉴스       2025.09.30 18:17   수정 : 2025.09.30 18:16기사원문
국가 신경망 안전한가 ③ 국가 셧다운 부른 안전 불감증 5가지
배터리·서버 이중화 작업에 늑장
배터리 교체 작업때 규정 미준수
예산 부족으로 땜질식 처방 그쳐
공공 클라우드 인프라 투자 소홀

전국 행정망 마비사태를 불러온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면서 총체적 '안전불감증'이 원인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미 지난해부터 위험을 경고하는 권고를 무시한 정황이 밝혀지고 있고, 화재의 원인인 배터리 분리 과정에 대해서도 부실 의혹이 제기돼서다.

30일 관계기관들에 따르면 지난해 6월 LG CNS가 국정자원에 내구연한 10년이 지난 배터리 시스템 교체를 권고했지만 국정자원은 1~2년 더 사용 가능하다고 판단해 권고를 무시했다.

국정자원은 배터리 내구연한이 1년가량 지난 제품을 썼고, 배터리와 서버 간격을 최소 90㎝ 이상 두도록 한 국제기구 규정을 무시하고 간격을 60㎝에 불과할 정도로 이격 관리를 허술하게 했고 차단벽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민간 사례에도 정부는 늑장

지난 2022년 SK C&C 데이터센터 사고 이후 민간기업들은 '배터리 화재 예방 매뉴얼'을 만들어 최근 완공된 데이터센터에는 이 안전지침을 준수하고 있으나 국정자원은 노후화된 데이터센터들의 안전 리모델링 공사를 차일피일 미뤄오다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당시 정부는 카카오에 데이터센터 삼중화를 요구했고, 국회는 '카카오 먹통 방지법'까지 제정했지만 정부는 정작 서버 이중화를 하지 않았다.

더구나 국정자원실이 입찰을 통해 선정한 업체들이 대부분 영세업체들로 이들 직원이 당시 현장에서 배터리 교체 작업을 하다 화재가 발생했다. 전원이 연결된 상태에서 전선을 분리하면 전압이 급상승해 불이 날 수 있는데 작업규정도 지키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국정자원은 올해 예산으로 지난해 대비 7.2%(375억원) 증액된 5570억원을 책정했다. 센터 완공으로 사업이 축소되는 대구·공주센터 예산을 제외하면 14.2%(679억원) 늘어난 규모다. 디지털 행정서비스 장애 예방을 위한 예산으로 1186억원을 반영했다. 장애 발생 위험도가 높은 노후장비를 교체하는 데 지난해보다 30% 늘어난 1096억원을 편성했다. 교체 대상에는 서버·스토리지·네트워크 장비가 포함됐다. 배터리는 제외됐다.

핵심인 재난복구 시스템 예산은 시범사업 수준으로 20억원 정도 배정했지만 1등급 시스템 장비 교체에 우선 투입하면서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백업 시스템도 시스템별로 하루 단위, 한달 단위 등으로 차등 적용할 수밖에 없어 2년 전 사태에도 불구하고 땜질식 처방으로 버텨 온 것이 총체적 문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민간 클라우드로 전환을 추진하면서 공공 클라우드 인프라 투자를 소홀히 했다. 디지털 정부의 핵심 인프라를 민간에만 의존하는 건 위험하다"며 공공 클라우드 인프라의 독립성과 안정성 확보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민간 클라우드 활용 등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만 있었던 것이 화를 키웠다는 분석이다.

■전면적 재설계 필요성 대두

국가전산망 재설계를 위해 실질적인 이중화 구축이 필요하지만 단순 백업이 아닌, 동시 가동 가능한 '액티브-액티브(Active-Active)' 체계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액티브-액티브는 IT 인프라의 고가용성을 위한 구성 방식 중 하나로 두개 이상의 시스템이 동시에 운영되며 서로 백업 역할을 수행하는 구조다.

특히 서버뿐 아니라 냉각, 화재방지, 전력공급 등 부대설비까지 이중화해야 할 시급성이 제기된다. 아울러 재해복구센터의 조속한 완공 및 운영도 서둘러 추진해야 할 사안으로 꼽힌다. 공주센터 등 백업센터는 단순 예비시설이 아닌 즉시 전환 가능한 실전 인프라로 구축해 화재 등 비상상황에서도 정상 가동이 가능하도록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산 편성의 책임 있는 집행도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배제하면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동안 예산 편성을 두고 행안부와 기재부 간 책임 떠넘기기로 국가안보의 중요성보다는 예산을 놓고 힘겨루기 양상이 펼쳐진 것도 이번 사태를 키운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다. 디지털 정부의 핵심 인프라를 국가안보 수준으로 관리해야 하는 차원에서 예산의 대폭적인 증액과 전문인력 확보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ktitk@fnnews.com 김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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