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구치·노리코' 30년 부부 연구, 노벨상으로 '결실'

파이낸셜뉴스       2025.10.07 10:26   수정 : 2025.10.07 10:38기사원문
자연 속에서 자란 문학 소년, 면역학에 '매료' 독립적인 기초연구 외길, 노벨상 수상으로 이어져 피부과 의사인 아내, 동료 연구자로 연구 인생 동행



【파이낸셜뉴스 도쿄=서혜진 특파원】“무언가를 이루려면 시간이 걸린다. 진정으로 평생 바칠 만한 것을 찾으려면 깊이 생각하고 인내해야 한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발표된 일본 오사카대 명예교수 사카구치 시몬(74). 그의 수상 소식에 일본 언론은 한평생 연구에 매진한 그의 삶과 함께 걸어온 아내 노리코(71) 씨의 얘기를 7일 집중 조명했다.

문학소년이던 한 소년이 면역학에 매료되어 세계적 발견에 이르기까지 여정은 부부의 30년 동행과 인내의 기록이었다.

■자연에서 자란 문학소년, 면역학에 눈뜨다

7일자 산케이신문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사카구치 교수는 일본 시가현의 옛 비와촌(현 나가하마시)에서 자랐다. 비와호와 이부키산이 자전거로 닿을 만큼 가까운 자연이 풍요로운 환경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어린이용 문학전집을 즐겨 읽었다”고 회상했다.

아버지가 교장으로 근무하던 지역 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부친의 영향으로 철학에 관심을 두게 됐고 정신과 의사 빅토르 프랑클의 '밤과 안개'를 읽으며 정신의학에 흥미를 느꼈다. 의사가 많은 외가의 영향도 더해져 그는 교토대 의학부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처음 만난 학문이 바로 면역학이었다. 면역이 ‘자신을 지키는 동시에 스스로를 공격하기도 한다’는 역설적 특성에 사카구치는 강한 매력을 느꼈다. “모순적이지만 매혹적이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직접 실험을 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네 곳의 연구소를 옮겨 다니며 연구를 이어갔다. 거장 밑에서 일하기보다는 독립 연구자로서 한 주제를 파고드는 길을 택했다.

현재도 그는 오사카대 면역학 프런티어 연구센터(IFReC)에 연구실을 두고 있으며, 제자들의 학위 논문 심사에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1980년대 조절성 T세포(regulatory T cell)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당시, 학계에서는 ‘면역을 억제하는 세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가 정설이었다. 그의 연구는 10년 동안이나 주목받지 못했다. 그 시절의 경험이 그를 단단하게 만든 셈이다.

■아내 노리코 씨와 함께한 30년 연구 인생

사카구치 교수의 수상을 누구보다 기다린 사람은 오랜 세월을 함께한 아내이자 동료 연구자, 사카구치 노리코 씨다.

두 사람의 인연은 우연에서 시작됐다. 1977년 아이치현 암센터 연구소에서 면역학 연구를 시작한 사카구치 교수가 여름방학에 연구실 견학회를 열었을 때, 당시 나고야시립대 의대생이던 노리코 씨가 우연히 연구소를 방문했다.

그녀의 첫인상은 “성실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복장이나 머리 모양도 단정하고,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연구에 몰두할 때 반짝이던 그의 눈빛은 여느 의사들과는 달랐다. “이렇게 열정적인 사람이 있나 싶었다. 여러모로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노리코 씨는 회상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거리는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결혼 후인 1990년 사카구치 교수가 새로운 연구의 장을 찾아 미국으로 향할 때 노리코 씨도 함께했다.

미국에서는 남편의 조수로 실험을 배우며 연구에 몰두했고,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즐거움에 빠졌다. 사카구치 교수가 이번 노벨상 수상의 근거가 된 조절성 T세포 연구를 진행할 때에도 그녀는 다수의 논문에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당시 학계는 ‘면역을 억제하는 세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겼던 시기였다. 소수의 연구자만이 같은 길을 걷는, 말 그대로 ‘역풍의 시대’였다.

사카구치 교수는 “사실상 아내와 둘이서 연구를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험동물 관리부터 세포 분석까지 모든 면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노리코 씨 역시 “우리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 그 신념을 단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다”고 회고했다.

■함께 이룬 결실, 멈추지 않는 도전

귀국 후에도 두 사람은 연구의 길을 멈추지 않았다. 2003년,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영국 과학지 네이처(Nature) 에 게재된 논문에 노리코 씨가 제1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일류 연구자의 반열에 올랐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직 멀었다”며 겸손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현재 노리코 씨는 사카구치 교수가 창립한 벤처기업에서 조절성 T세포를 이용한 세포 치료 실용화를 목표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사카구치 연구실은 현재 약 30명 규모의 대형 팀으로 성장했다. 밝고 따뜻한 성격의 노리코 씨는 ‘랩 마마(Lab Mama)’로 불리며, 젊은 연구자들의 신뢰와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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