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자 결정에 있어 무엇이 중요한가?
파이낸셜뉴스
2025.10.13 09:00
수정 : 2025.10.13 13:54기사원문
- 무엇이 어려운가?
- 파탄 여부가 쟁점인 사건
- 최고 난이도 사건
-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고 아이에게 상처를
- 법정 안에서는 몰랐던 현실
- 변론에 한계를 느낄 때
- 아이의 복리를 위해서
[파이낸셜뉴스] 필자는 2012년 2월부터 2014년 2월까지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가사단독 재판부, 가사비송단독 재판부, 가사신청단독 재판부, 가사합의 재판부, 가사비송합의 재판부 및 가사신청합의 재판부에서 재판장 및 배석판사로 근무하면서,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뒤인 2022년 2월부터 2024년 2월까지 가사합의 재판부, 가사신청합의 재판부, 가사비송합의 재판부, 가사항고 재판부 및 가사항소 재판부 재판장으로 근무하면서 다양한 이혼 사건을 처리한 바 있으며 현재도 법무법인 바른에서 변호사로 근무하며 많은 이혼 소송을 수임하여 사건을 진행하고 있다.
무엇이 어려운가?
가정법원 판사로 오래 근무하다 보면 결론 내리기 정말 어려운 사건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가정법원에서 처리하는 사건 중 재산분할 사건이 복잡하고 어렵지 않냐고 묻는다.
파탄 여부가 쟁점인 사건
재산분할보다 어려운 문제는 부부 일방은 이혼을 원하는데, 다른 일방이 이혼을 원하지 않는 경우이다. 부부관계가 완전하게 파탄되어 회복 가능성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경우라면 판단에 어려움이 없으나 파탄 여부나 관계 회복가능 여부에 관하여 경계선에 있는 사건들은 판단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필자는 이혼 사건을 합의부 재판장으로 그리고 단독재판장으로 처리한 경험이 있는데, 그나마 3명의 판사로 구성된 합의부에서 재판할 때는 파탄 여부에 관하여 결론내리기 어려워도 3명의 법관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수가 있어서 부담이 덜했다. 그러나 단독판사로 근무할 때는 혼자 결론을 내리기 어려워 며칠 밤을 고민하며 힘들어했던 적이 많았다. 물론 동료 판사들에게 사안의 개요를 설명해 주고 ‘이런 경우에 어떻게 보느냐?’고 물어 보기도 했지만 어려운 사건의 경우 물어봤던 판사들마다 돌아오는 의견이 달라서 결정에 애를 먹은 적이 많았다. 사실 모든 판사들이 비슷한 의견을 내는 그런 사건들은 애초에 나에게 깊은 고민을 던져주지 않았을 것이다. 어려운 사건은 동료 판사 누구에게 말해도 의견이 갈렸고, 나 자신도 하루는 ‘파탄되었으니 이혼하는게 답이야’ 이렇게 생각했다가 다음 날에는 ‘아니야, 아직 회복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라고 생각이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최고 난이도 사건
그런데 이러한 사건보다 더욱 판단하기 까다로운 사건이 바로 양육권에 관하여 치열한 다툼이 있는 사건이다. 양육권에 관하여 다툼이 있는 사건은 일반적으로 서로 양육권을 가지겠다고 부부 양쪽이 다투는 사건이지만 드물게는 서로 아이를 양육하지 않겠다는 사건들도 있다. 이런 경우 법원은 결국 직권으로 보다 양육에 적합한 일방을 양육자로 지정하긴 하는데 이혼 이후 그 아이들이 제대로 양육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웠다. 양육권에 대하여 다툼 있는 대부분의 사건들은 이혼 당사자 양쪽이 모두 아이의 양육을 원하면서 재판부에 자신이 양육자로 적합하다는 것을 피력하기 위해 엄청난 자료를 제출한다. 기본이 수백 페이지이고 수천 페이지를 넘는 양육계획서를 프리젠테이션 자료로 제출하는 당사자도 보았다. 양육자를 정할 때는, 미성년인 자녀의 성별과 연령, 그에 대한 부모의 애정과 양육 의사의 유무는 물론, 양육에 필요한 경제적 능력의 유무, 부와 모가 제공하려는 양육 방식의 내용과 합리성⋅적합성 및 상호 간의 조화 가능성, 부 또는 모와 미성년인 자녀 사이의 친밀도, 미성년인 자녀의 의사 등의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미성년인 자녀의 성장과 복지에 가장 도움이 되고 적합한 방향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고 아이에게 상처를
그런데 아이가 어린 경우 아이와의 친밀도 및 애착 정도를 증대시키기 위해서 소송 중간에 아이를 탈취하는 당사자도 있었다. 의사표현이 가능한 초등학생 이상이 사건본인인 경우 양육자를 지정함에 있어 그 아이의 의사가 중요한데 부부 양쪽이 아이를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아이 앞에서 상대방 대한 욕을 하거나 상대방의 치부를 서슴없이 말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소송 중인 부부는 결국 이혼으로 남남이 되겠지만 그 아이에게는 세상에 하나뿐인 친부 또는 친모이므로 이런 경우 아이만 중간에서 엄청난 상처를 받게 된다.
법정 안에서는 몰랐던 현실
오랜 시간 이혼 재판을 담당했던 판사로서는 느끼지 못했지만 변호사로 나와 수많은 이혼 사건을 접하며 만난 양육권 다툼의 현장에서 나는 한 가지 뚜렷한 현실과 마주했다. 가사조사보고서의 가사조사관 의견 내지 상담조치보고서의 상담위원 의견의 영향력이 양육자 결정에 있어 지나칠 만큼 크다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한 피해와 억울함을 호소하는 당사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 이혼 소송의 두 당사자 모두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아이의 미래를 위해 최선의 환경을 제공하겠다고 주장했다. 치솟는 감정싸움 속에서 재산분할과 위자료에 대해서는 비교적 쉽게 협의점을 찾았으나, 양육권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섰다. 담당 재판부는 가사조사관에게 양육환경 조사를 명했고, 조사관은 양 당사자와 아이를 몇 차례 짧게 만나던 중 아이가 무심코 “할아버지가 무섭다”고 내던진 한마디를 매우 의미 있는 정황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그대로 보고서에 기재했다. 결국 여러 증거와 자료보다 이 한 문장이 양육권 결정의 핵심 판단 요소로 작용하며 양육권은 모에게 넘어갔다.
한 번은 혼인 기간 내내 독박육아를 감내한 당사자가 있었다. 하지만 이혼 소송 중 남편이 돌연 양육권을 주장하면서 “풍족한 경제력과 더 넓은 집”을 내세웠고, 가사 조사 때마다 그럴듯한 모범답안을 준비하여 조사에 임했다. 우리 측 당사자는 여러 자료를 내면서 아이와의 깊은 유대관계를 강조했지만 가사조사관은 결국 경제적 능력에 더 가중치를 둔 의견을 낸 듯했고, 판결도 그렇게 나왔다. 해당 판결 이후 그 아이는 급격한 양육환경의 변화와 불안 장애로 많은 고생을 했다고 들었다.
변론에 한계를 느낄 때
가사조사보고서의 가사조사관 의견 내지 상담조치보고서의 상담위원 의견이 양육자 결정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치는 이유 중 하나는 이혼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가 수많은 사건을 처리하면서 개별 사건의 양육 환경을 직접 세세히 들여다볼 여유가 없어서이다. 특히 법정에서는 한 사건 당 길어야 10분 정도 변론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 시간 동안 법관이 당사자와 깊이 있게 많은 얘기를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법관이 직접 사건본인을 면담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반면 가사조사관이나 상담위원은 법관보다는 당사자들과 더 많은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눌 수 있고, 사건본인도 직접 면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제한된 정보와 짧은 면담만을 통하여 개별 가정의 복잡한 사정을 100% 정확하게 진단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특히 최근에는 조사관 한 명이 맡고 있는 조사 건수가 늘어남에 따라 개별 사건에 대한 심층 면담이나 충분한 현장 조사 역시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당사자는 가사조사보고서의 가사조사관 의견 내지 상담조치보고서의 상담위원 의견을 열람할 수 없고 법관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대체로 판결문에는 양육자 지정 청구에 관하여 “원고와 피고의 양육의사와 양육태도, 양육환경, 경제력, 사건본인들의 나이, 사건본인들과의 친밀도 및 유대관계 등으로 고려하여 00를 양육자로 지정한다”는 등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이유만이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양육권에 관한 치열한 다툼이 있는 사건에서 재판부가 어떠한 이유로 해당 당사자를 양육자로 결정한 것인지, 어떠한 요소가 양육자 결정의 핵심 판단 기준으로 작용했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특히 가사조사보고서의 가사조사관 의견 내지 상담조치보고서의 상담위원 의견이 양육자 결정에 있어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게 되면서 비공개 대상인 조사관 의견란에는 점점 더 많은 내용이 들어가게 되고, 당사자들이 열람할 수 있는 사실 조사 부분에는 당사자들 사이에 다툼이 없는 내용이나 각 당사자의 진술만 기재하여 놓는 경우가 많다.
나아가 양육권에 관한 다툼이 매우 치열한 항소심 사건을 수임하여 진행하다 보면 사건 기록에 드러난 자료나 상황만으로는 의뢰인이 양육자로 지정되어야 할 것 같은데 알 수 없는 이유로 상대방이 양육자로 지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런 경우 대부분 가사조사보고서의 가사조사관 의견 내지 상담조치보고서의 상담위원 의견에 의뢰인이 양육자로서 부적합하다는 의견이나 평가 또는 그렇게 볼만한 단서가 기재되어 있었을 텐데 그 내용이 무엇인지 전혀 알 길이 없어 어떻게 재판부의 시선과 심증을 바꿔야 할지 전략을 짜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어떤 항소심 재판부는 가사조사보고서의 가사조사관 의견 내지 상담조치보고서의 상담위원 의견란에 의뢰인이 양육자로 지정될 수 없는 치명적인 결점이 조사관 의견 또는 상담위원 의견으로 기재되어 있다고 알려주면서도 그 내용을 밝히긴 어렵다고 법정에서 말한 적도 있다. 이러한 경우 대리인으로서는 1심 재판부의 양육자 결정을 뒤집기 위해 어느 부분을 보완하고 소명해야 할지 막막해질 수밖에 없다.
아이의 복리를 위해서
가사조사 제도는 분명 법관의 판단을 돕기 위해 도입된 것이고 사실 실질적·긍적적인 효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조사관 의견란의 비공개로 인해 양육자 지정에 있어 전혀 예상치 못한 판결을 받고도 그 이유를 전혀 알 수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 역시 적지 않다. 필자가 법관으로 근무하는 동안에는 미처 그 심각성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는데 변호사로 여러 사건을 진행하다 보니 조사관 의견 또는 상담위원 의견의 비공개와 양육자 결정 이유의 형식적·추상적 기재가 결합되면서 심각한 사법 불신이 생기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양육자 결정에 있어 "아이의 복리"는 법관이 열린 마음을 가지고 다양한 관점에서 치열한 고민을 통해 살펴보아야 할 가장 중요한 판단 요소이다. 따라서 가사조사관의 의견이나 상담위원의 의견이 판결의 중심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 가사조사관의 의견이나 상담위원의 의견이 공개될 경우 여러 제도적 장치로 독립성이 보장된 법관과 달리 조사관이나 상담위원이 불필요한 논란에 휘말리거나 악감정을 가진 당사자들로부터 부당한 공격을 받게 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된다. 따라서 사건 기록상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양육자 지정에 있어서 핵심적인 판단 요소가 된 가사조사관 의견이나 상담위원의 의견이 있다면 법관이 법관의 언어로 적절하게 변론 과정에 현출하여 그로 인하여 불이익을 받을 당사자로 하여금 반론할 수 있게 기회를 주어야 비로소 그 당사자는 재판부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양육자를 결정함에 있어 그 결정 이유를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추상적으로 기재하는 현재의 실무는 간략하게라도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이유를 설시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태형 변호사는 가사∙상속 분야 전문가이다. 2007년 법관 임용후 2024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17년간의 법관생활을 끝내고 법무법인 바른에 합류했다. 김태형 변호사는 법관시절 2012년부터 총 8년간 가사∙상속 및 소년심판 업무를 담당했다. 특히 법관 퇴직 전 5년(2019~2024)간 수원가정법원에서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 수많은 가사∙상속 관련 케이스를 처리하면서 이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했다. 베스트셀러인 "부장판사가 알려주는 상속, 이혼, 소년심판 그리고 법원"(박영사, 2023)의 저자이기도 하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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