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선수의 여성 경기 출전, 무작정 막아야 할까?
파이낸셜뉴스
2025.11.01 08:00
수정 : 2025.11.01 13: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수영대회 여자부 개인전 전 종목을 압도적으로 석권한 미국의 성전환 수영선수 아나 칼다스(47)가 성별 확인 검사를 거부했다. 이로 인해 칼다스는 2030년까지 국제 대회 출전이 정지됐고 4년 간의 성적도 모두 박탈됐다. 칼다스는 "염색체 검사는 신체적 부담이 크고 사생활을 침해한다"며 거부 이유를 밝혔다.
이에 스포츠계 트랜스젠더 선수의 여성 경기 출전 문제가 다시 한 번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남성과 여성만 존재하던 스포츠계, 트랜스젠더 선수의 등장
1977년 미국 테니스계는 한 선수의 등장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성전환 수술을 받고 여성으로서 US오픈에 출전한 르네 리차즈가 그 주인공이었다. 그는 여성 선수로 대회에 출전한 최초의 트랜스젠더였다. 당시에는 성전환 선수의 출전 자격을 다룬 명확한 규정이 없어, 그의 출전은 단순한 스포츠 이슈를 넘어 사회 전반의 논쟁을 불러왔다.
2004년 IOC는 스톡홀름 합의를 통해 트랜스젠더 선수의 출전 조건을 구체화했다. 성전환 수술을 마치고, 법적으로 성별을 인정받았으며, 최소 2년 이상 호르몬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규정은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비판과 함께 인권 침해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결국 2015년 IOC는 기준을 완화해 성전환 수술 요건을 없애고,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경우 최소 1년간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10nmol/L 이하임을 입증하면 출전이 가능하도록 했다. 참여의 문턱을 낮춘 조치였지만, 그만큼 새로운 논란의 불씨도 함께 피어올랐다.
세상을 흔든 트랜스젠더 선수들
2021년 도쿄올림픽 역도 경기에서는 뉴질랜드의 로렐 허버드가 최초로 올림픽 개인 종목에 출전한 공개 트랜스젠더 선수가 됐다. 당시 43세였던 그는 세 번의 인상 시도에서 모두 실패하며, 트랜스젠더 선수의 운동능력 우위를 보여주지 못했다.
논쟁은 미국 대학 수영선수 리아 토마스의 등장으로 본격적으로 불붙었다. 2022년 3월, 펜실베이니아대 소속인 그는 여자부 500야드 자유형에서 우승하며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역사상 처음으로 전국 챔피언십을 차지했는데, 토마스가 성전환 수술을 받지 않았음에도 여성으로 인정을 받아 출전했다는 사실이 논란의 불씨가 됐다. 또 남성 팀에서 활동하던 시절 500m 자유형 65위였던 토마스가 여성부로 옮긴 뒤 1위에 오른 것은 "우승하려고 여성이 된 것 아니냐"는 비난마저 불러일으켰다.
다만 이 과정에서 트랜스젠더가 아닌데 트랜스젠더라고 오해받은 선수들도 있다. 남성과 여성의 발달 특성이 혼재된 '성발달 차이(DSD)'를 가진 간성 선수들이다.
남아공의 육상선수 캐스터 세메냐, 2024 파리올림픽 여성 복싱 금메달리스트 알제리 복서 이마네 칼리프와 대만의 린위팅선수는 모두 여성으로 자라온 선수지만 추후 XY 염색체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간성(intersex) 선수들이다. 하지만 이마네 칼리프 선수는 상대 선수에게 "남자와는 경기할 수 없다"는 말을 들으며 거부를 당했다.
국내에는 2023년 사이클 선수 나화린 선수가 있다. 나 선수는 국내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트랜스젠더 선수로 강원 도민체전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를 따내며 주목받았다. 나 선수는 자신이 출전한 목적에 대해 “트랜스젠더가 여성보다 신체적 우위에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별도의 카테고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알리기 위해 경기에 나섰다고 밝혀 더 화제가 됐다.
트랜스젠더를 위한 '오픈부' 신설을 둘러싼 찬반
이처럼 공정성과 인권의 갈등이 깊어지자 일부 종목에서는 제3의 해법으로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오픈 부문을 신설하기 시작했다. 국제수영연맹은 2023년 베를린 수영월드컵에서 트랜스젠더 선수를 위한 별도 부문을 마련했지만, 참가 신청은 단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아 경기가 취소됐다. 표면적으로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실제로는 선수들이 “자신의 정체성이 또 다른 분리와 낙인으로 이어질까 두려워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나 선수는 파이낸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여자들과 경쟁해서 이기고 싶은 게 아니라, 여성으로 경기하고 싶은 것"이라며 "다른 트랜스젠더 선수들의 마음도 아마 같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트랜스젠더들이 따로 경기할 수 있어야 하는 이유로 "어차피 어떤 조건을 걸더라도 트랜스젠더 선수가 우승하면 안 좋은 얘기가 나올 것"이라며 "트랜스젠더 선수는 여성 경기에서 명예롭게 우승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이유를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박성주 국민대학교 스포츠윤리학과 교수는 "나 선수가 주장하는 선수의 명예라는 가치를 위해 다른 가치가 희생되어도 괜찮은 건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DSD·트랜스젠더 선수를 남성·여성 스포츠가 아닌 제3의 영역에서 경쟁하게 하는 방식에는 근본적으로 회의적"이라며 “별도의 ‘트랜스젠더 범주’로 분리하는 것은 겉으로는 참여 기회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들이 자신의 젠더 정체성에 부합하는 경기 범주에서 경쟁할 권리를 박탈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그들에게 수치스럽고 굴욕적인 선택만을 강요하고, 사회에서 이미 겪고 있는 소외를 스포츠 영역에서 다시 재생산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디깅 digging'이라는 말, 들어보셨지요? [땅을 파다 dig]에서 나온 말로, 요즘은 깊이 파고들어 본질에 다가가려는 행위를 일컫는다고 합니다. [주말의 디깅]은 한가지 이슈를 깊게 파서 주말 아침,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sms@fnnews.com 성민서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