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투자도 '외자운용 원칙' 고수… "수익성보다 유동성"

파이낸셜뉴스       2025.11.10 18:33   수정 : 2025.11.10 18:32기사원문
주재현 한국은행 외자운용원장
외환보유액 감소 등 자금 조달 우려에
"기재부 위탁 수익·외화표시 채권 고려"

"외환 보유 원칙 측면에서 한국은행의 가장 큰 멘데이트(mandate·의무)는 유동성과 안전성이다. 수익성은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가운데 보조적으로 달성하는 것이다."

주재현 한국은행 외자운용원장(사진)은 10일 "시기와 구체적인 디테일을 알 수는 없지만 대미투자가 본격화될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기재부·KIC 외화수익도 고려해야

외환당국의 어깨가 어느 때보다 무거워졌다. 최근 정부는 3500억달러 규모 대미투자 가운데 2000억달러를 현금투자로 합의하면서 외환보유액에 대한 우려가 커진 상태다. 연간 투자 상한을 '정부가 감당 가능하다'고 언급한 200억달러로 제한했지만 주요국의 외환보유액이 점차 증가하는 가운데 대미투자는 중장기적으로 국내 외환보유액의 하방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 외화자산 운용수익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회가 한국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행의 지난해 유가증권 이자·예치금 이자·유가증권 매매 손익 등을 합친 외화자산 운용수익은 12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한국투자공사(KIC) 등 외부기관에 위탁한 외화자산 운용수익을 포함한 수치로, 지난해 예산편성 기준 환율(1380원)로 환산하면 약 92억7000만달러다.

주 원장은 "한은의 외화 수입뿐만 아니라 기획재정부가 가진 외화자산에 대한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고 짚었다. 정부가 한미협상 과정에서 고려한 대미 현금투자 재원 조달방식은 크게 네 가지다. 한은 외자운용원의 외화자산 운용수익을 포함해 △한은이 한국투자공사(KIC)에 위탁한 외화자산 운용수익 △기재부가 KIC에 위탁한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 운용수익 △외화표시 채권 발행 등이다.

통상 외환당국은 시장 개입 등의 역할로 인해 안전성·유동성에 집중하고, KIC 등 국부펀드는 수익성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수익률이 다르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외환시장에 큰 부담을 주지 않고 조달가능한 금액은 150억~200억달러"라고 언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 원장은 내년에도 외환보유액 운용목적에 집중할 방침이다. 그는 "외자운용원은 한은의 외환보유액을 운용하는 조직으로 본래 안전성, 유동성, 수익성 등 세 가지 목표 중 안전성과 유동성의 가중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며 "대미투자 관점에서도 내년에 자금을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해서는 수익성보다 안전성에 배점을 두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미투자 자금은 한은의 외화자산 운용수익뿐만 아니라 정부가 보유한 외화자산 수익을 통해서도 조달될 계획"이라며 "정부와 한은이 구체적인 자금조달 계획 및 방안을 논의중이고, 향후 입법과정에서 정부가 관련 내용에 대해 설명을 드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관세 영향 본격화로 물가 반등 유의

주 원장은 내년 글로벌 금융시장의 최대 리스크 요인으로 인플레이션을 꼽았다.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차별화와 재정건전성 이슈 등 다양한 리스크 요인이 상존하고 있으나 미국 관세와 연관된 인플레이션이 단기 충격을 넘어 금융시장 전반에 연쇄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주 원장은 "관세 효과로 인플레이션이 올라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아직 그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 않다"며 "만약 인플레이션이 생기고 각국 중앙은행들이 이에 대응하기 위해 시그널을 준다면 주가, 경기에 불안감으로 작용할 수 있어 불확실성이 가장 크다"고 진단했다.

지난 4월 관세 불확실성 확대 이후 불거진 '탈달러화'에 대해서는 각국 중앙은행들의 통화다변화가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달러화가 여전히 결제통화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자산시장의 투자매력도 △각국 중앙은행의 외환시장개입 주요 매개통화 등으로 달러화의 지위가 유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주 원장은 "우리나라의 경우도 원화-달러화 시장 만이 실질적으로 존재할 뿐, 원화-엔화 또는 원화-유로화 등의 시장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짚었다.

최근 고평가 논란에 일고 있는 인공지능(AI) 섹터에 대해서는 낙관론과 비관론이 공존하는 만큼 신중한 태도를 견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 원장은 "닷컴버블 등 과거와 달리, 펀더멘털이 탄탄한 빅테크 중심으로 투자 사이클이 전개되고 있어 충격 발생시 회복력이 높다"면서도 "밸류에이션 측면에서 주가에 성장 기대가 강하게 선반영돼 잠재 리스크에 대한 경계감도 상존한다"고 설명했다.

eastcold@fnnews.com 김동찬 기자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