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여, 내면의 갑옷을 더 단단히 세워라

파이낸셜뉴스       2025.11.10 18:50   수정 : 2025.11.10 18:49기사원문

제복에는 강력한 힘이 있다. 성직자의 법의, 군인의 제복을 입으면, 자연스럽게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게 된다. 제복이 단순히 몸을 가리는 천이 아니라 하나의 역할과 책임감을 보여주는 정신의 갑옷과도 같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제복 효과(Uniform Effect)'라 부른다.

예술가에게도 제복이 존재한다. 천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품격, 절제, 양심으로 짠 보이지 않는 옷이다. 이 제복은 각종 유혹과 압력 속에서 예술의 가치를 지키고 흔들리지 않게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최근 제복을 벗어던지는 예술가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들은 예술 후원이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사적인 행사에 참여하면서 자칭 예술을 사랑한다는 후원자들의 돈과 권력의 그림자 아래로 들어간다. 일부 후원자들은 예술가의 성장이나 예술계의 발전을 도모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고 자신의 경제적, 정치적 입지를 단단히 하기 위해서 예술가를 동원한다. 후원이라는 이름 아래 굴욕적인 용돈을 건네는 경우도 있다.

물론 물질의 도움 없이 예술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란 어렵다. 그러나 돈의 성격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돈이 나오는 방향으로만 좇는다면 예술가의 영혼은 서서히 피폐해지기 마련이다. 무대에서 누구보다 빛이 나야 할 사람들이 돈이 내는 빛에 눈이 먼다는 현실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여기서 더 큰 문제는 이런 유혹 앞에 흔들리는 예술가들을 다잡아줄 어른의 부재다. 진정한 스승의 역할을 해야 하는 이들이 오히려 "괜찮다, 다 그렇게 한다"라며 욕망을 부추기기도 한다. 말 그대로 참된 스승이 부재한 요즘이다.

예술가는 자신의 보이지 않는 제복을 잘 관리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아 더 지키기 어렵기에, 내면을 단단히 세우지 않으면 쉽게 흔들린다. 그래야 관객들 앞에서 "예술의 품위를 지키는 사람"이라고 자신감 있게 노래할 수 있다. 진정으로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노래는, 먼저 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의 내면이 깨끗해야 가능하다.

예술가는 노래로 감동을 주는 사람이기 전에 그에 걸맞은 삶을 사는 사람, 그에 맞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예술가가 되는 길이라고 믿는다. 무대의 조명은 언제나 진실을 비춘다. 그 빛 아래에 예술가들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어떤 제복을 입고 있는가? 그 제복에 맞춰 행동하고 있는가?"

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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