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아이다' 이회수 연출 “삶과 죽음의 강을 건너는 사랑의 서사”
파이낸셜뉴스
2025.11.11 08:57
수정 : 2025.11.11 08:57기사원문
13-16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1871년 이집트 카이로 왕립오페라하우스에서 초연된 ‘아이다’는 강대국과 약소국의 전쟁 속에서 적국의 장군을 사랑하게 된 에티오피아 공주 아이다, 그녀를 사랑하지만 전쟁의 승리를 꿈꾸는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 질투와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공주 암네리스의 비극적 운명을 그린다.
연출은 지난해 대전예술의전당 ‘운명의 힘’으로 호평을 받은 이회수가 맡았다.
“나일강과 삼도천, 동서양의 삶과 죽음의 철학이 만나는 강”
이회수 연출은 이번 ‘아이다’의 해석 키워드를 ‘삶과 죽음의 경계’로 제시했다. 그는 11일 파이낸셜뉴스에 “원작의 서사를 충실히 따르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상징하는 나일강과 삼도천의 은유를 중심으로 재해석했다”며 “고대 이집트인들이 나일강의 동쪽을 삶, 서쪽을 죽음의 세계로 여겼던 것처럼, 동양의 삼도천도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삼도천은 단순한 죽음의 길목이 아니라 윤회의 시작점으로, 죽음을 통과해야 비로소 새로운 삶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고대 이집트의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며 “이 공연의 핵심은 ‘강을 건너는 사랑의 이야기’이며, 죽음을 파멸이 아닌 초월의 여정으로 제시하는 데 있다”고 덧붙였다.
무대는 이 같은 상징 구조를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동쪽의 궁정과 광장은 찬란한 조명과 화려한 색채로 ‘삶의 에너지’를 표현하고, 서쪽의 신전과 무덤은 절제된 빛과 음영으로 ‘죽음과 영원의 세계’를 드러낸다. 이 연출은 “아이다와 라다메스의 사랑은 동쪽에서 시작해 서쪽에서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붉은 강에서 빛으로 이어지는 여정”
이번 공연의 백미는 단연 2막의 개선행진 장면이다. 이집트 군이 에티오피아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뒤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오는 순간, 성대한 행렬과 장대한 음악이 어우러져 화려한 개선 행진 장면이 펼쳐진다. 이 연출은 이 장면을 제하고, 가장 공들인 장면을 묻자 "신전, 나일강변, 무덤 장면"을 꼽았다.
“신전 장면은 사제들의 의례적 질서를 직선과 도형 구조로 시각화해 봉헌된 세계의 권위를 드러냈고, 나일강 장면은 물을 중심으로 연출했습니다. 암네리스에게 강은 순결과 정화의 상징이지만, 아이다와 아모나스로의 2중창 속에서는 전쟁으로 죽어간 민중의 피가 흘러 붉은 강으로 변합니다.”
이 연출은 “마지막 무덤 장면에서 두 연인은 지하에서 죽음을 맞지만, 그 공간은 어둠이 아니라 ‘빛으로 물든 강의 저편’으로 이어진다”며 “이들의 사랑은 이승을 넘어 영원으로 확장된다. 그들의 마지막 순간은 공연 중 가장 밝고 따뜻한 빛으로 표현된다”고 말했다.
이번 ‘아이다’에서 무용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서사의 축을 이루는 상징적 장치다. “무용은 ‘강의 흐름’과 ‘영혼의 이동’을 시각화하는 매개체입니다. 서곡에서 무용수들은 강을 건너 이야기를 여는 인도자로 등장하며, 마지막에는 두 연인의 영혼을 영원의 세계로 이끄는 의식적 통로가 됩니다. 하나의 문을 닫고 또 다른 문을 여는 역할을 하죠.”
“배우들이 빚어낸 비극의 아름다움”
이번 ‘아이다’에는 세계 주요 오페라 무대에서 활약 중인 정상급 성악가들이 대거 참여해 무대의 완성도를 높인다.
아이다 역에는 한국인 성악가로는 최초로 이탈리아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주역으로 선 무대에 오른 뒤, 국내외에서 100회 이상 ‘아이다’ 타이틀롤을 맡으며 최고의 리릭 스핀토 소프라노로 자리매김한 임세경, 그리고 스페인 빌바오와 이탈리아 파르마 콩쿠르에서 1위를 수상하고 유럽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조선형이 열연한다.
라다메스 역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동양인 최초로 로미오 역을 맡아 뉴욕타임스의 극찬을 받은 테너 신상근, 스위스 제네바와 프랑스 마르세유 오페라 콩쿠르 우승 이후 유럽과 아시아를 넘나들며 활약 중인 테너 국윤종이 함께한다.
암네리스 역에는 한국인 메조소프라노로는 처음 빈 국립오페라 극장에 데뷔한 후 스페인 비냐스 콩쿠르와 동아음악콩쿠르 입상, 대한민국오페라대상 여자주역상을 수상한 양송미, 그리고 다수의 국제 콩쿠르 입상을 바탕으로 유럽과 미국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는 김세린이 출연한다.
아모나스로 역에는 스페인 빌바오·비야스 콩쿠르를 석권하며 유럽 주요 극장에서 두각을 나타낸 바리톤 유동직, 독일 뮌헨 ARD 국제 콩쿠르 1위와 청중상을 동시에 거머쥐며 국내외를 종횡무진하고 있는 양준모가 무대에 오른다.
이 밖에도 람피스 역에는 베이스 최웅조와 심기환, 이집트 왕 역에는 베이스 이준석, 무녀장 역에는 메조소프라노 민주희와 소프라노 김동연, 전령 역에는 테너 김은국이 출연해 한층 입체적이고 드라마틱한 ‘아이다’를 완성할 예정이다.
임세경, 신상근, 양송미가 오는 13일 개막 무대를 연다. 이회수 연출은 "임세경(아이다)은 사랑과 조국 사이에서 흔들리는 영혼을 품위와 강인함으로 표현”하고, 신상근(라다메스)은 찬란함과 고독이 공존하는 인간의 내면을 노련하게 그려낸다"고 말했다. 이어 "양송미(암네리스)는 사랑과 질투, 후회와 구원의 감정을 넘나들며 작품의 비극적 정점을 완성했다”고 평가했다.
'아이다'는 거대한 무대미학 속에서도 결국 인간의 사랑, 신념, 구원을 이야기한다. 이 연출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정을 통해 관객이 스스로의 내면과 마주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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