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화장실부터 점자 안내까지... 호주가 반한 '교통약자 배려'

파이낸셜뉴스       2025.12.01 11:00   수정 : 2025.12.01 11:00기사원문
호주 시드니 현대로템 NIF 2층 전동차 타보니
장애인 화장실부터 승강기까지 교통약자 배려
피드백 반영 회의 215회, 설계변경 2871건
이용배 사장 "글로벌 톱 철도회사 도약 최선"

[파이낸셜뉴스] "현대로템의 NIF 신형 전동차는 휠체어 장애인뿐 아니라 시각·청각 등 사실상 모든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휠체어가 통로를 편하게 이동할 수 있고, 응급콜 버튼도 있어 도움이 많이 된다. 호주 인구의 20%가 일정 수준의 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이 전동차는 이들의 이동을 도와 구직의 기회를 주고 있다.

특히 현대로템은 저희 조언들을 오픈 마인드로 귀담아 들어줬고, 실측 스케일의 프로토타입(목업)을 마련하는 등 의견을 들어줘서 매우 고마웠다."


시드니(호주)=김동호 기자】 시드니의 서울역으로 불리는 센트럴역에서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만난 척추장애인 그레그 킬레인씨는 현대로템의 NIF 신형 전동차의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 10점 만점에 10점을 주며 이같이 말했다. 척추 관련 장애인 시니어 정책 추진 오피서로 일하는 그는, 장애인 단체들과 소통하며 만든 현대로템 전동차를 시민 100%를 포용하는 전동차로 평가했다. 현대로템은 2016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교통부와 610량 규모의 시드니 NIF 2층 전동차 공급계약을 맺고, 지난해 12월 첫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215회 회의, 2871건 설계 수정... '피드백' 적극 반영
실제 이날 현대로템 NIF 2층 전동차를 탑승하자 가장 먼저 장애인 화장실을 마주할 수 있었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충분한 넓이에, 휠체어 높이에 맞춘 세면대도 마련돼 세심함이 돋보였다.

바로 옆에는 1층과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마련돼 취향대로 좌석을 선택할 수 있었다. 1층 좌석은 바닥에 딱 붙어 달리는 느낌의 안정감을 선사했고, 2층은 넓은 창문을 통해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시드니의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창가로 보이는 나무와 호수, 전통 가옥들이 승객들을 맞이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좌석도 호주인의 체격에 맞춰 177㎝ 성인 남성이 앉았을 때 무릎 앞에 주먹이 3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다음 칸으로 넘어가는 통로에는 자전거를 비치할 수 있는 공간과 휠체어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좌석이 마련돼 있었다. 휠체어 장애인이 탑승할 수 있는 휠체어 승강 설비와, 교통약자용 좌석, 점자 문자 안내시설까지 갖추며 서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장애인들을 위한 최적의 교통 환경을 경험했다.

배달용 전기자전거를 끌고 전동차에 탑승한 비슈알 두나씨는 "뉴캐슬에 거주하는데, 시드니에서 음식 배달을 하기 위해 거의 매일 이 전동차를 타고 2시간을 이동한다"라며 "전동차를 오르고 내릴 때 공간이 넓고 장애물이 많이 없어서 자전거를 싣고 내리기 편하고, 내부 공간이 넓어서 장시간 이동하는 데도 편리하다"고 말했다.

이는 '현지 피드백'을 설계에 반영하겠다는 현대로템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현대로템은 교통 약자 배려를 위해 13개월 동안 이해관계자 협의와 설계를 진행하고, 215회의 회의를 거쳐 2871건의 건의사항 수렴과 설계 수정을 진행했다.

호주 에핑역에서 전동차에 탑승한 이용배 현대로템 사장은 "전동차를 운영하시는 분들과 기관사들, 그리고 직접 이용하는 이용객 등 여러 계층의 의견들을 반영해 설계를 하다 보니 7년에 걸쳐 완성했다"라며 "호주 NIF 전동차 사업을 기반으로 모로코에서 2조2000억원 규모의 440량 전동차 수주에 성공하면서 글로벌 시장 진출 기반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대한민국 K-철도의 클래스를 보여주는 훌륭한 전동차를 만든 만큼, 글로벌 톱 철도회사를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종이로 만든 열차'... 디테일 빛났다
시드니에서 만난 현대로템 직원들은 "NIF는 종이로 만든 열차"라고 입을 모았다. 호주 현지에서 철도 차량의 설계 승인을 받으려면 다른 프로젝트와 비교해 몇 배나 더 많은 문서들이 오가야 할 정도의 '디테일의 싸움'이었다는 후문이다. 설계 과정에서 장애인 단체뿐 아니라 노인 협회, 기관사 노동조합, 자전거 단체 등과 지속 소통을 이어갔다.

요구사항이 많아 오랜 시간이 소요되자, 현대로템은 'RCN(레일 커넥트)'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현대로템은 차량제작과 하자보증을, MEA(일본 미쯔비시)는 주전장품과 방송기기를, UGL은 유지보수를 담당했다.

클레어 포가티 RCN 최고경영자(CEO)는 "호주는 전동차 제조 기술 역량이 충분하지 않아 제조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라며 "NIF는 세계 여러 나라 대형 기업들이 가진 전문성을 활용한 흥미로운 프로젝트"라고 소개했다.


그는 호주의 엄격한 법이 NIF 프로젝트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고 회상했다. 새로운 디자인이나 제품이 도입될 때는 장애인 접근성을 위한 현지 규정 외에도, 디자인 전 과장에서 지역사회와 직접 소통하고 의견을 반영해야 하는 '이해관계자 협의 프로세스'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지역 환경과 사업 지연 등 어려 도전이 있었지만, 3개사가 매우 전문적이고 수준 높은 협력을 통해 문제 해결을 이뤄냈다"라며 "서로의 강점을 모아 하나의 성과를 만들어 낸 협업 과정이 호주에서 가장 현대적인 전동차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hoya0222@fnnews.com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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