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를 지켜낸 마지막 혈투…튀르키예 탄생의 뿌리가 되다
파이낸셜뉴스
2025.12.02 18:54
수정 : 2025.12.02 21:16기사원문
(7·끝) 제국의 황혼, 갈리폴리의 총성
20세기 초 연합군과 싸우던 57연대
능선과 골짜기로 된 천혜의 지형에서
내륙 향하는 길목 막으며 승리 거둬
지금은 쇠퇴한 제국으로 기억되지만
그곳을 사수한 이들의 묵묵한 각오
새로 들어선 국가의 정체성으로 남아
다르다넬스해협으로 향하는 도로는 이른 아침부터 바람이 깊게 내려앉아 있다. 해협은 멀리서 보면 단순한 물길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물빛과 바람이 서로를 깎아내듯 부딪치며 묘한 긴장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고대부터 불어온 이 바람은 여러 제국의 흥망을 목도하며, 이윽고 20세기 초에는 오스만제국이 마지막으로 버틴 전장의 공기를 실어나르는 매개가 되었다.
가장 먼저 닿은 곳은 '안작 코브'(Anzac Cove)라고도 불리는 아리버누해안이다. 지도를 통해 수없이 보았던 이름이 실제 풍경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전쟁사 속 지명이 서서히 현실의 질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해변은 생각보다 좁았고, 수면은 의외로 평온했다. 잔잔한 파도가 모래를 천천히 훑고 지나갔지만, 해변 바로 뒤편에서는 갑자기 경사가 치솟아 올라 있다. 그리고 상륙군이 몸을 숨길 만한 평탄한 공간은 거의 없었고, 능선 위의 방어선은 자연스럽게 해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연합군 병사들은 이 좁은 해안에 쏟아지는 포화와 사격을 온몸으로 견디며 급경사를 기어올라야 했다. 지금은 파도와 바람만이 낮은 소리를 낼 뿐이지만, 이 지형을 마주하면 왜 상륙 첫날부터 엄청난 희생이 발생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해안을 벗어나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로네 파인(Lone Pine) 묘역에 이른다. 오늘의 로네 파인은 정갈한 잔디와 가지를 고요히 드리운 소나무, 정연하게 배치된 묘비들로 이루어진 작은 공원처럼 보인다. 그러나 안내판을 조금만 읽어보면, 이 일대가 한때 가장 치열한 참호전의 현장이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지면 아래에는 당시의 참호와 지하갱도가 격자처럼 남아 있고, 일부는 복원되어 안내판을 통해 관람객에게 공개되고 있다. 그리고 좁은 참호 안으로 몸을 기울여 내려다보면, 병사들이 서로의 어깨에 몸을 붙인 채 숨을 고르며 다음 공격을 기다리던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더 높은 고도로 올라가면 출혈능선(Chunuk Bair)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갈리폴리 전역의 전략적 중추였다. 그러고 능선 정상에 서자 비로소 왜 이 지점이 전장의 운명을 가르는 축이었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눈앞으로 다르다넬스해협이 길게 펼쳐지고 반도의 윤곽과 해안선, 먼 마르마라해의 수평선까지 한 시야에 들어온다. 이 능선이 장악되면 해협으로 진입하는 모든 함대와 후방 보급선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반대로 이곳을 잃으면 방어선 전체가 연쇄적으로 붕괴될 수밖에 없다.
젊은 장교 무스타파 케말이 이 고지를 사수하기 위해 57연대를 투입하며 "나는 그대들에게 공격을 명하지 않는다. 죽음을 명한다"고 말했다고 전해지는 장면은, 이곳의 지형을 직접 밟아보기 전과 후의 의미가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그러고 다시 57연대 기념비 앞에 서면 풍경은 다시 한 번 조용해진다. 그러나 기념비 자체는 과장되거나 장엄하지는 않다. 낮은 구릉, 멀리 보이는 해협, 주변을 둘러싼 소나무 숲이 함께 만들어내는 공간의 분위기는 묵직한 울림을 줄 뿐이다.
제국 말기의 오스만에 갈리폴리 방어전은 단순한 전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미 제도와 제국의 정치는 혁신을 상실하고 끝이 모를 피로에 접어들고 있었지만, 적어도 이 해협과 수도로 향하는 길목만큼은 끝까지 지켜냈다는 의지가 남아 있다. 훗날 튀르키예공화국은 이 기억을 새로운 국가 정체성의 근원으로 끌어올렸고, 57연대의 희생은 '제국의 마지막 방어이자 공화국의 첫 서사'로 재구성되었다. 그리고 능선을 타고 불어오는 거친 바람은, 그런 의미에서 한 제국의 황혼을 지나 새로운 국가의 새벽을 예고하던 공기처럼 느껴진다.
반도의 주요 전적지를 둘러본 뒤, 이스탄불로 돌아오는 길은 이상하리만큼 짧게 느껴졌다. 다르다넬스를 끼고 달리던 차창 밖 바다는 여전히 잔잔했지만, 그 위로 겹쳐지는 시간의 층위는 전혀 다른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하루 전만 해도 단순한 지명이었던 갈리폴리는, 이제 제국 해체와 근대국가 형성의 긴 과정을 응축한 전환의 공간으로 다가왔다. 현장에서 본 자연과 지형의 감각을 머릿속에 새긴 채, 이번에는 그 기억이 어떻게 국가의 공식 서사로 조직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하르비예 군사박물관으로 향한다.
이스탄불 신시가지 쪽에 위치한 하르비예 군사박물관은 과거 오스만 군사학교의 건물을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넓은 전시홀과 높은 천장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벽면에는 오스만 시기에서 공화국 초기까지 이어지는 군사사 구조가 연대기 형식으로 정리되어 있다.
검과 활, 초창기 화승총, 근대식 소총과 기관총, 포병 장비와 군복, 의장 깃발과 군악대 악기가 차례로 전시되어 있는데 무기 하나하나가 전쟁기술의 발전사일 뿐 아니라 제국의 정치·사회 구조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는 점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갈리폴리 전역을 다룬 전시실에 들어서자 전날 갈리폴리 반도에서 보았던 지형이 다시 지도와 사진, 모형의 형태로 눈앞에 펼쳐졌다. 갈리폴리의 좁은 모래사장과 급경사 언덕, 로네 파인의 참호 구조, 출혈능선의 단면도가 입체 모형과 전술지도 위에 정교하게 재현되어 있다. 현장에서 언덕을 오르며 막연히 느꼈던 '불리한 상륙지형'과 '지키기 유리한 고지'라는 인상은, 이곳에서 보다 구체적인 숫자와 화력 배치, 병력 운영의 논리로 재구성된다. 전시된 당시 사진 속 병사들의 표정은 피로와 긴장이 겹쳐 있는 얼굴이었고 짧은 일기와 편지에는 전투의 공포와 함께, 이 낯선 반도에서 자기 임무를 다해야 한다는 묵묵한 각오가 담겨 있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오스만 포병대와 지휘체계에 대한 기록이다. 우리는 종종 오스만을 '쇠퇴한 제국'으로만 기억하지만, 갈리폴리 전역에서 확인되는 것은 오히려 제한된 자원 속에서도 지형과 화력을 정교하게 어떻게든 연동시키려 했던 근대적 군사조직의 모습이었다.
박물관 밖으로 나오자 하르비예 거리 위로 늦은 오후의 빛이 기울고 있었다. 한 손에는 안내책자를, 다른 손에는 갈리폴리 지도와 관람노트를 쥔 채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전날 반도에서 맞았던 거친 해풍과, 오늘 이스탄불 시내에서 느껴지는 온화한 바람이 묘하게 겹쳐졌다. 갈리폴리의 황혼이 제국의 마지막 힘을 짜내던 시간대였다면, 하르비예의 저녁빛은 그 황혼의 기억이 공화국의 정체성으로 가공된 이후의 시간을 비추고 있었다.
이번 여정은 결국 한 제국의 끝과 한 국가의 시작을 같은 공간에서 읽어보는 과정이었다. 갈리폴리 반도의 능선과 해안선, 이스탄불 하르비예의 전시실과 기록물은 서로 다른 풍경이지만, 둘을 관통하는 것은 제국의 황혼을 기억하는 방식, 그리고 그 기억을 미래의 정치공동체로 연결하는 서사의 구조였다. 다르다넬스해협에서 불어오던 바람은 오늘도 이스탄불의 거리를 스치고 있었고 제국과 공화국, 전쟁과 일상의 시간은 그 바람을 타고 조용히 뒤섞이고 있다.
양우진 한국외대 국제관계학 박사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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