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몰던 60대女 청산가리 중독 사망…범인은 누구?
뉴스1
2025.12.03 06:36
수정 : 2025.12.03 09:26기사원문
(창원=뉴스1) 강정태 기자 = 지난 2020년 3월 28일 오후 통영대전고속도로 서진주IC 부근에서 벤츠 승용차가 갓길 방호벽을 긁으며 달리다 대각선으로 주행해 중앙분리대를 충돌한 뒤 다시 갓길 방호벽을 들이받고 멈춰 섰다.
뒤따르던 다른 차 운전자가 차를 세운 뒤 사고 차에 다가가자 60대 여성 A 씨가 홀로 운전석에서 고개를 숙인 채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부검 결과 A 씨는 맹독성 물질인 '청산염(청산가리)' 중독에 의한 사망으로 확인됐다.
A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유년 시절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A 씨는 경제력을 얻기 위해 노력하다 40여년 전 나이 차가 많은 연상의 재력가와 결혼했다. 행복한 결혼 생활도 잠시, 결혼 6년 만에 남편이 사망하면서 미국에서 낳은 아들 B 씨(30대)를 홀로 키우며 지냈다.
남편의 사업을 이어받아 경기 용인과 경남 진주를 오가던 A 씨는 2019년 5월 진주에서 알게 된 지인으로부터 아들의 선 자리를 제안받았고, 이를 통해 B 씨는 30대 여성 C 씨와 선을 본 뒤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게 됐다.
교제 4개월 만에 상견례를 한 뒤 다음 해 5월 결혼식을 올리는 것으로 문제없이 준비되던 결혼식은 예물 문제로 A 씨와 C 씨가 갈등을 겪게 되면서 삐걱거리게 됐다.
A 씨는 명품 반지를 모방해 만든 다이아몬드 금반지를 구매해 예물함에 넣으려 했으나 C 씨가 명품 모방 제품이라는 점에서 불쾌감을 드러내자 C 씨 집안에 파혼을 통보했다.
C 씨가 사과하면서 결혼은 예정대로 진행됐지만, 앙금이 남았던 A 씨는 남편 제사 때 C 씨에게 "며느리는 절을 4번 하라"는 등 순종적인 태도를 요구했다. 결혼 전 가사와 가풍 교육을 빌미로 자신과 함께 살게 하면서 둘만 있을 때 진품 반지를 사주고 "결혼을 미루고 1년만 더 데이트해 보라"며 C 씨를 억누르려 하기도 했다.
그러다 미국 국적만 있던 B 씨가 체류 문제로 해외로 며칠 출국한 사이 C 씨와 함께 지내다 진주로 내려가기로 한 A 씨는 차를 타고 가던 중 청산가리 중독으로 숨졌다.
경찰은 A 씨의 사망 원인에서 범죄혐의점이 발견되자 살인 범행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주변인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A 씨가 출발 전 C 씨와 용인 주거지에서 함께 있었고, C 씨와 예물 문제로 갈등이 있었던 것을 파악하고 C 씨를 유력 용의자로 보고 수사했다.
실제 C 씨가 A 씨와 함께 지냈던 용인 주거지 압수수색에서 청산가리 덩어리가 발견됐고, C 씨가 A 씨와 갈등이 불거졌을 당시 C 씨 명의의 포털사이트 아이디에서 '사람 죽이는 약' '화성 살인사건 범인' '30층에서 떨어지면' '베란다 쇠 교체' '추락사' 등을 검색한 사실도 확인됐다.
또 A 씨 사망 당시 C 씨가 B 씨에게 사망 소식을 곧바로 알리지 않은 점, 사고 차량 블랙박스 SD카드가 제거된 점, A 씨 휴대전화 비밀번호가 출발 전 변경된 점, C 씨가 휴대전화를 바꾼 점 등도 확인되면서 C 씨가 살해했을 것이란 가능성에 신빙성이 더해졌다.
경찰은 A 씨 사고 당시 현장을 최초 확인했던 다른 운전자가 '차에 냄새가 역한 생수가 있어 구급대원에게 인계했다'는 진술을 근거로, C 씨가 A 씨를 차량 운행 중 청산가리를 탄 생수를 먹게 하고 마치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처럼 위장해 살해했을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실제 C 씨는 A 씨가 출발할 당시 배웅하면서 차에 생수병을 실어주는 모습이 찍히기도 했다. 다만 C 씨 가족이 A 씨 사망 당시 병원 관계자로부터 전달받은 생수병을 버리면서 생수병에 어떤 물질이 들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사건 조사 과정에서 용인 주거지에서는 A 씨가 사고 당시 들고 간 핸드백도 발견됐는데, 여기에 청산가리가 든 약병이 나왔으나 경찰은 C 씨가 A 씨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위장하기 위해 핸드백과 약병을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봤다.
결국 C 씨는 경찰과 검찰의 수사를 거쳐 지난 2023년 8월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지난 2년여 간의 치열한 법정 공방 끝에 C 씨는 지난달 13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을 맡은 창원지법 진주지원 형사1부(부장판사 김기동)는 C 씨에게 범행을 인정할 만한 직접적인 증거가 전혀 없다며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C 씨가 청산염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인지 불명확하고, A 씨 차에서 나온 생수병에 청산가리가 든 물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블랙박스 SD카드 제거와 휴대전화 비밀번호 변경이 C 씨 소행이라는 증거가 없는 점, 핵심 증거물이 될 수 있는 핸드백과 청산염을 그대로 둔 이유가 설명되지 않고 C 씨가 자살을 적극 주장하지도 않은 점 등을 무죄 근거로 밝혔다.
또 결혼 전이라 A 씨 사망으로 C 씨가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이 없는 데다 C 씨는 경제적 궁핍 상태도 아니어서 갈등이 심하면 결혼을 포기할 선택지도 있어 범행 동기도 불분명하다고 봤다. '사람 죽이는 약'이라는 검색어는 이후 갈등이 마무리됐고 다른 검색어는 이 사건 범행과 큰 관련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제3자 범행 가능성도 제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수사는 초반부터 C 씨가 범인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뤄졌지만, 직접적인 범행 증거가 없다"며 "그에 반해 수사기관은 A 씨 사망으로 이익을 받을 B 씨, A 씨와 금전 문제가 있던 남성, 용인 주거지에 자유롭게 출입한 A 씨 가족 등에 대해 면밀히 수사하지 않아 이들의 범행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최근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검찰 관계자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수없이 많은 정황 증거가 있음에도 무죄가 선고됐는데, 항소심에서는 1심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 제대로 된 판결이 내려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B 씨는 경찰의 사건 조사 과정에서 C 씨와 파혼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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