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나날', 한겨울에 보는 푸른 여름과 설경... 치유의 시간
파이낸셜뉴스
2025.12.08 10:35
수정 : 2025.12.08 10:35기사원문
미야케 쇼 신작, 배우 심은경 주연
쇼 감독은 ‘조용하지만 강렬한 감성의 감독’, ‘섬세한 관찰자’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에서도 인물의 일상에 깊숙이 밀착하는 카메라와 여백을 살린 구성, 오감을 자극하는 영상미가 돋보인다.
영화는 쓰게 요시하루의 만화 '해변의 서경'(1967)과 ‘혼야라동의 벤상'(1968) 두 편을 독특한 액자식 구성으로 엮어냈다.
슬럼프에 빠진 한국인 각본가 ‘이’(심은경)는 겨울 여행을 떠났다가 눈 덮인 산속에서 혼자 여관을 지키는 주인장 벤씨를 만난다. 영화는 이가 집필한 영화 속 영화를 통해 바닷가 마을에서 우연히 만난 두 청춘 남녀의 여름 이야기를 보여준 뒤, 설국의 여관에서 뜻밖의 시간을 보내는 ‘이’의 겨울 여정으로 넘어간다.
여름 이야기는 넘실대는 푸른 파도, 태풍 전야 숲 사이를 스치는 거친 바람, 두 남녀의 일상적 대화 속 묘한 긴장감을 담아내며 감각을 깨운다. 반면 겨울 이야기는 소복이 쌓이는 설경의 고요함 속에서, 두 남녀의 예상치 못한 달밤의 일탈이 웃음을 자아낸다.
쇼 감독은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CGV아이파크몰에서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통해 잠시 쉬어가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길 바란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극장이라는 공간에 애정을 표하며 "극장 속 어둠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험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두 개의 다른 이야기를 하나로 엮은 이유에 대해 쇼 감독은 “한 편의 영화에서 여름과 겨울을 모두 맛본다면 분명 흥미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특히 그는 "이번 작품에서 바람을 담고 싶었다”며 “바람이 불기 전 고요함부터 몰아치는 순간까지, 그 모든 변화를 스크린에 담고 싶었다. 극장 속 어둠이라면 눈과 귀뿐 아니라 피부로도 바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극 중 벤 씨는 이가 각본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자신은 ‘유머 속에 인생의 슬픔이 배어 있는 작품’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이를 놓고 영화에 대한 감독의 철학이 반영된 것인지 묻자, 쇼 감독은 어느 정도 동의하면서도 다른 답을 내놓았다.
쇼 감독은 “영화를 보고 나면 감각이 아주 조금이라도 달라지길 바란다”며 “한 편의 영화가 이념을 완전히 뒤집지는 않더라도, 미세한 변화가 생기는 그 지점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 속 이의 대사처럼 말의 틀에서 조금 자유로워지고, 고정관념에서 한 발 떨어져 보기를 바란다. 그런 과정이야말로 영화라는 여행이 건네는 진짜 여정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행과 나날’은 한국인 배우가 주연을 맡은 국제적 협업 사례다. 쇼 감독은 “협업은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며 “여행이란 집을 떠나 어딘가로 향하는 여정일 수 있지만, 삶 전체도 하나의 여행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새로운 배우를 만나고 영화를 만드는 과정 역시 하나의 여행이며, 우리의 삶 또한 그러하다는 자신의 철학을 전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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