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었다… 겨울이었다… 잠든 감각 깨울 '여정'

파이낸셜뉴스       2025.12.08 18:31   수정 : 2025.12.08 18:31기사원문
영화 '여행과 나날' 내일 개봉
심은경 주연 미야케쇼 감독 작품
슬럼프에 빠진 한국인 각본가와
여관 주인의 겨울밤 일탈 이야기
액자식 구성 청춘의 여름도 그려

요즘 일본 영화감독들의 세계적 약진이 두드러진 가운데, 배우 심은경이 주연한 미야케 쇼 감독의 신작 '여행과 나날'이 오는 10일 국내 개봉한다. 이 영화는 지난 8월 스위스에서 열린 제78회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표범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쇼 감독은 '조용하지만 강렬한 감성의 감독', '섬세한 관찰자'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에서도 인물의 일상에 깊숙이 밀착하는 카메라와 여백을 살린 구성, 오감을 자극하는 영상미가 돋보인다.

영화는 쓰게 요시하루의 만화 '해변의 서경'(1967)과 '혼야라동의 벤상'(1968) 두 편을 독특한 액자식 구성으로 엮어냈다.

슬럼프에 빠진 한국인 각본가 '이'(심은경)는 겨울 여행을 떠났다가 눈 덮인 산속에서 혼자 여관을 지키는 주인장 벤씨를 만난다. 영화는 이가 집필한 영화 속 영화를 통해 바닷가 마을에서 우연히 만난 두 청춘 남녀의 여름 이야기를 보여준 뒤, 설국의 여관에서 뜻밖의 시간을 보내는 '이'의 겨울 여정으로 넘어간다.

여름 이야기는 넘실대는 푸른 파도, 태풍 전야 숲 사이를 스치는 거친 바람, 두 남녀의 일상적 대화 속 묘한 긴장감을 담아내며 감각을 깨운다. 반면 겨울 이야기는 소복이 쌓이는 설경의 고요함 속에서, 두 남녀의 예상치 못한 달밤의 일탈이 웃음을 자아낸다.

쇼 감독은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CGV아이파크몰에서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통해 잠시 쉬어가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길 바란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극장이라는 공간에 애정을 표하며 "극장 속 어둠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험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두 개의 다른 이야기를 하나로 엮은 이유에 대해 쇼 감독은 "한 편의 영화에서 여름과 겨울을 모두 맛본다면 분명 흥미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특히 그는 "이번 작품에서 바람을 담고 싶었다"며 "바람이 불기 전 고요함부터 몰아치는 순간까지, 그 모든 변화를 스크린에 담고 싶었다. 극장 속 어둠이라면 눈과 귀뿐 아니라 피부로도 바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극 중 벤 씨는 이가 각본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자신은 '유머 속에 인생의 슬픔이 배어 있는 작품'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이를 놓고 영화에 대한 감독의 철학이 반영된 것인지 묻자, 쇼 감독은 어느 정도 동의하면서도 다른 답을 내놓았다.

쇼 감독은 "영화를 보고 나면 감각이 아주 조금이라도 달라지길 바란다"며 "한 편의 영화가 이념을 완전히 뒤집지는 않더라도, 미세한 변화가 생기는 그 지점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 속 이의 대사처럼 말의 틀에서 조금 자유로워지고, 고정관념에서 한 발 떨어져 보기를 바란다. 그런 과정이야말로 영화라는 여행이 건네는 진짜 여정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행과 나날'은 한국인 배우가 주연을 맡은 국제적 협업 사례다. 쇼 감독은 "협업은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며 "여행이란 집을 떠나 어딘가로 향하는 여정일 수 있지만, 삶 전체도 하나의 여행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새로운 배우를 만나고 영화를 만드는 과정 역시 하나의 여행이며, 우리의 삶 또한 그러하다는 자신의 철학을 전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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