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증시 띄우는 AI 열풍...'닷컴 버블'과 뭐가 다르나?
파이낸셜뉴스
2025.12.10 15:20
수정 : 2025.12.10 15:20기사원문
올해 美 증시, 각종 악재에도 16% 이상 상승 AI 빅테크가 증시 견인...과도한 투자에 버블 우려 AI 산업, 2000년 닷컴 버블과 달라...실제로 돈 벌어 대기업 주도로 안정적, 탄탄한 AI 수요와 정부 지원도 차이점
[파이낸셜뉴스] 올해 미국 증시가 무역 전쟁 등 각종 악재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AI) 기업들의 선전 덕분에 16% 상승하면서, AI 시장에 거품이 끼었다는 불안이 미국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AI 업계가 2000년대 '닷컴 버블'과는 달리 실제로 돈을 벌고 있다며 아직 걱정하기에는 이르다고 지적했다.
AI 덕에 살아난 美 증시...거품 우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9일(현지시간) 보도에서 최근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미국 증시와 AI 기업들의 주가가 거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증시 회복의 원동력은 엔비디아나 알파벳, 메타플랫폼 등 AI 관련 IT대기업(빅테크)의 약진이었다. 미국 경제매체 CNBC가 측정한 7대 빅테크(매그니피센트7·M7) 주가 지수는 올해 들어 24.9% 상승했다. 과거 미국 오바마 정부에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냈던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학 경제학 교수는 지난 9월 소셜미디어를 통해 현재 AI 관련 투자가 미국 경제를 좌우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올해 상반기 미국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폭의 92%가 데이터센터를 포함한 정보처리설비, 소프트웨어, 연구개발 등 AI 관련 투자에서 나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AI 관련 분야가 미국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에 불과하지만, 해당 분야에서 투자가 없었다면 지난 상반기 미국 GDP 성장률이 연간 기준 0.1%에 그쳤다고 역설했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지표를 바탕으로 AI 시장이 2000년 닷컴 버블과 비슷하다는 공포가 커지고 있다. 각종 인터넷 관련 기업의 난립으로 덩치를 키웠던 미국 증시는 2000년 3월에 닷컴 버블이 붕괴되면서 시가 총액이 5조달러 이상 증발하는 재난을 겪었다.
AI 업계, 닷컴 기업과 달리 매출 확실
NYT는 현재 AI 열풍이 닷컴 버블과 다른 이유로 주가수익비율(PER)를 들었다. PER는 기업의 주가를 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PER 값이 높을수록 해당 기업의 주가가 순이익 대비 고평가되었다는 의미다. NYT는 S&P500 기업들의 지난 10년 동안 PER 값이 평균 22배 수준이지만 올해는 27배 수준으로 닷컴 버블 붕괴 직전인 1999년(29배)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닷컴 버블 당시 대표적인 수혜주였던 시스코의 PER 값은 2000년 3월에 200배 이상이었다. AI 반도체의 선두주자로 S&P500지수 내 최대 기업인 엔비디아의 PER 값 역시 지난 2023년에 200배를 넘겼다.
그러나 엔비디아의 PER는 이후 엔비디아가 전 세계를 상대로 막대한 양의 AI 구동 반도체를 판매하면서 점차 내려갔다. 이달 엔비디아의 PER 값은 지난 1년 치 순이익 기준으로 45배 수준이다. NYT는 엔비디아의 PER를 향후 1년 치 예상 순이익으로 계산하면 25배까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NYT는 닷컴 버블 당시 수많은 인터넷 기업들이 엄청난 주가에 반해 실제 매출이 보잘 것 없는 수준이라 PER 값을 낮추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시스코의 주당 순이익은 1996년 0.15달러에서 2000년 0.36달러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엔비디아의 순이익은 2023년 회계연도 기준 44억달러에서 2025년 회계연도(1월 종료) 729억달러(약 107조원)로 약 16배 증가했다. 영국 바클레이스 은행의 알렉스 알트만 증권 전략가는 엔비디아의 성과에 대해 "허황된 환상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우수한 역량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캐나다 투자은행 RBC캐피털마켓츠의 제임스 마세리오 국제 주식 대표는 "2025년의 값비싼 (AI 관련) 주식들이 올라선 얼음 두께가 2000년 초에 비하면 좀 더 두꺼운 것 같다"고 평가했다.
대기업이 투자 주도, AI 수요 탄탄
NYT는 9일 별도의 기사에서 AI 산업이 △대기업이 주도하는 투자 △탄탄한 AI 수요 △ 규제 당국의 지원이라는 면에서 닷컴 버블 당시 인터넷 기업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매체는 닷컴 버블 당시 소수 인력의 창업초기기업(스타트업)들이 과도한 투자를 받아 위험한 경영을 했지만, AI 산업의 경우 이미 기반이 있는 안정적인 대기업이 투자를 이끈다고 진단했다. 아마존은 AI 데이터센터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 붓고 있으나 치약 판매가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알파벳 산하 구글도 AI 투자와 별개로 광고 판매가 줄지 않고 있다.
NYT는 닷컴 버블 당시 기업 가치로 상위 3대 기업이었던 시스코와 마이크로소프트(MS), 인텔의 기업가치가 최고점에서 각각 5000억달러 수준이었으나 지금 엔비디아의 기업 가치만 4조5000억달러 이상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NYT는 비상장기업인 오픈AI를 비롯해 아마존, 메타플랫폼 등 여러 AI 기업들의 기업 가치를 모두 합하면 2000년 미국 주식 시장 전체 가치(약 17조달러)를 뛰어넘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AI 업계가 과거 닷컴 버블의 인터넷 기업들과 비할 수 없을 만큼 안정적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NYT는 세계 각국에서 AI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서두르고 있으며, 도입 속도 역시 닷컴 버블 당시 인터넷 기술에 비해 매우 빠르다고 분석했다. 1990년대 인터넷 브라우저는 열악한 인터넷 통신망 때문에 대중의 외면을 받았으나, 현대 소비자들은 강력한 인터넷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손쉽게 AI를 구동할 수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AI 도입 속도가 초기 인터넷 보급 속도의 15~60배에 달한다는 평가도 있다.
각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도 호재다. 앞서 미국 정부는 1990년대 당시 MS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정도로 인터넷 기술 보급에 비협조적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2기 정부를 시작하면서 AI 산업을 국가적으로 지원했다. 그는 지난 8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AI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산업 전체에 단일 규정을 적용, 각종 승인 절차를 간소하게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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