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은 반도체와 맞먹는 수출산업, 그 산업을 죽이면 안된다"
파이낸셜뉴스
2025.12.10 18:32
수정 : 2025.12.10 18:32기사원문
정범진 前 한국원자력학회장정부 에너지정책 방향 인터뷰
원전은 안보·경제성·환경을 다 만족… 위험하지 않아
재생에너지 선택은 위기 오기 전에 위기를 택하는 것
원전, 탄소저감 효과 인정… RE100 꼭 할 필요 없어
숲을 파괴하면서 태양광 깔겠다고? 광기에 불과하다
신재생에너지 확충에 방점을 찍으면서 정부가 원전 건설을 놓고 여론 조사를 하기로 했다. 앞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대폭 올린 데 이어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수립에 들어갔다.
전기를 많이 쓰는 기업들의 어려움이 커질 수 있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ㅡ정부의 원전 정책 방향이 모호한데.
▶정치인들이 에너지 정책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탈원전 이유가 재생에너지 장사를 시켜주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본다. 재생에너지는 어렵지 않다. 이재명 정부는 탈원전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한미 관세협정에 있어서 핵잠수함을 논한 것, 튀르키예와 원자력과 관련된 협력을 논한 것 등을 봤을 때 실용적으로는 원자력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ㅡ원전은 위험한가.
▶에너지 정책은 세가지를 만족해야 한다. 안보, 경제(성), 환경인데 이 원칙들이 서로 상충한다. 싸고 친환경적인 게 드물기 때문이다. 트릴레마(세 딜레마)인데, 원자력이 다 만족시킨다. 핵연료 3년 치를 비축하니까 싸고 폐기물 양도 적다. 위험은 트릴레마가 아니다. 위험하면 아예 못하는 거고. 정부에서 심사해서 안전한데도 위험하다고 우기는 건 잘못이다. 원자력안전위원장은 안전하다고 했는데, 다른 장관은 아니라고 하는 것도 그렇다. 전문적인 정부 부처에 유보하는(맡기는) 것이 맞다. 트릴레마가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를 판단하는 인덱스다. 그걸로 나라별로 순위도 세운다. 그 안에 위험은 없다. 위험이라는 잣대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건 굉장히 잘못된 거다.
■ 정치인들이 에너지정책을 이용
ㅡ안보와 경제성에서 원전의 장점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원자력은 탁월하다. 에너지를 수입하는 나라에서는 비축 기간이 중요하다. 석유는 108일 치, 가스는 48일 치, 석탄은 보름 치를 비축한다. 핵연료는 1년 치를 비축한다. 전기 1kwh 생산원가를 보면 원전은 52원, 석탄은 158원, 가스는 237원, 재생에너지는 272원이다. 재생에너지가 원전의 5배다. 재생에너지는 전력망도 더 많이 깔아야 하는 등 유지비용이 원자력보다 한 10배쯤 된다. 짜장면이 8000원인데 맛도 똑같은 친환경 짜장면이 4만원이라면 먹겠나. 환경 면에서 태양광도 폐기물이 많다. 원자력 폐기물은 적을 수밖에 없는 게 g당 3t에 해당되는 에너지를 낸다. 폐기물 양이 100만분의 1이다. 방사선이 있어도 양이 극히 적다. 이산화탄소도 전혀 안 나오니 친환경적이다. 재생에너지를 택한다는 거는 위기가 오기 전에 위기를 택하는 것과 같다.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요금이 올라간다. 어느 정도까지 우리 경제가 허용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ㅡNDC를 높게 잡고 탈석탄동맹에 가입했는데.
▶석탄의 중요한 기능을 간과하고 있다. 주파수 제어라는 기능이다. 정부의 전기관리 기준에 따르면 60㎐에서 플러스 마이너스 0.1㎐까지 허용한다. 벗어나면 전기 품질이 나빠져 첨단산업을 할 수 없다. 그 기능을 석탄이 하고 있다. 원전도 할 수 있다. 풍력이나 태양광은 못한다. 속도를 조절할 터빈이 없기 때문이다. 터빈이 있는 것을 유연성 전원이라고도 한다. 유연성 전원이 있어야 재생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 석탄이 퇴출되면 유연성 전원 비중이 줄어 전력망이 불안정해진다.
ㅡLNG는 탄소가 적게 나오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천연가스는 메탄이다. 메탄의 온실가스 효과는 이산화탄소의 30배가 넘는다. 메탄은 채굴할 때도 새고, 옮길 때도 새고, 액화·기화시킬 때도 샌다. 온실가스 문제를 따지면 석탄과 가스는 차이가 별로 없다. 그런데도 주로 석탄이 공격 대상이 된다. 탈석탄연맹은 과학적으로는 오해에 기반한 연맹이다.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경제적 희생이 필요한데 우리가 굳이 1등 국가를 할 필요가 있을까.
ㅡ재생에너지 100%(RE100)에 대한 견해는.
▶공장에서 제품 생산에 들어가는 전기 100%를 재생에너지로 하자는 것으로, 영국 비정부기구(NGO)가 주장한 개념이다. RE100이 무역장벽으로 작용한다는 게 문재인 정부 때 주장이었다. 최근에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기업들이 원자력이나 SMR을 지원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원래 RE100을 하겠다는 기업들이었다. 원자력의 이산화탄소 저감 효과가 인정되고 있다. 우리가 굳이 비싼 RE100을 할 필요가 없다. RE100 산단도 그렇다. RE100을 주장했었던 더 클라이밋그룹(글로벌 RE100 캠페인을 주관하는 단체)도 원자력을 인정한다.
ㅡ원전 사고가 난 일본의 원전 정책은.
▶이미 2~3년 전부터 전력수급 계획에서 원자력을 20% 이상 활용하겠다고 선언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을 다시 심사해 통과한 것은 가동하면서 신규 원전을 짓겠다고 한다. 태양광은 좀 시들해졌고, 원자력을 계속 늘리고 있다. 전력 문제에서 일본과 우리나라는 사정이 똑같다. 전력에서는 섬이라는 점이다. 유럽의 경우 전력망을 연결해서 옆 나라에서 빌릴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우리와 일본은 원전을 유지하고, 예비율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
ㅡ12차 전기본이 수립 중인데.
▶8~11차 전기본이 다 전력수요가 과소 예측됐다. 이대로 가면 언젠가 정전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예비율도 너무 낮게 잡았다. 전기가 끊어지는 피해가 과잉발전 시설에 의한 낭비보다 더 크다. 남아도는 게 낫다. 전기본을 수립한다면 전력요금이 얼마나 되는지 알려줘야 한다. 재생에너지 부지도 없이 목표만 잡지 말아야 한다. 장소도 없고 사업 주체도 없다. 수급 계획이 계획대로 안 되면 곤란해진다.
■ 재생에너지 생산원가, 원전의 5배
ㅡ기업들이 최근 탄소저감, 전기료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전력수급 계획을 짤 때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전력요금이다. 요금이 비싸지면 산업을 영위할 수가 없다. 이재명 정부 공약 간에 상충되는 게 있다. 인공지능(AI)을 육성을 한다는데 AI는 원재료가 전기다. 재생에너지로는 안 된다. AI 데이터센터 하나에 원자력발전소 5기분만큼의 전기가 들어간다. 삼성 제2 반도체 공장이 10GW 원전 10기분을 필요로 한다. 삼성이 아마 전기요금을 약 10조원쯤 더 내야 할 거다. 이윤을 남길 수 없다. 국내에서는 제조업을 못한다. 기업이 어떻게 좋은 제품을 만들지 고민해야 하는데 전기를 어떻게 공급받을지 고민하고 있다. 이상한 상황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을 윤석열 정부 때 75%를 올렸는데 그러고도 한전은 적자다. 재생에너지를 더 깔고 석탄이나 원자력을 줄이면 더 커질 것이다. 깨끗하고 안전한 것을 위해 경제를 너무 많이 희생시킨다.
ㅡ미국 기업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 아마존 등이 원자력과 SMR에 투자하겠다고 한다. 하이퍼 스케일러(대규모 데이터센터)들이 막 나오고 있다. 미국은 전기가 어마어마하게 부족한 상황인 것이다. 기업들이 자구책을 찾는다. 우리도 조만간 한전이 전기를 공급하지 못해 기업이 직접 발전을 하거나 아니면 민간 발전사가 나올지 모른다.
ㅡ외국의 원전 동향은.
▶독일도 정책이 바뀌었다. 스위스,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등이 다시 원자력을 한다. 폴란드는 안 하다가 하겠다고 하고, 체코도 늘리겠다고 한다. 이제 유럽은 전반적으로 원자력이 대세이고, 재생에너지가 퇴조하고 있다. 대만은 TSMC가 주력기업인데 전기가 부족하면 가정 전기를 끊고 기업에 보낸다. 우리는 거꾸로다. 요금을 산업용을 더 올리지 않았나. 일종의 포퓰리즘이라고 생각한다. 진보, 보수를 떠나서 지금 상황은 포퓰리즘에 절어 있는 에너지 정책이라고 본다.
ㅡ원전 수명연장을 미국은 어떻게 하나.
▶수명연장이 아니고 계속운전이다. (설계수명) 40년이 수명이 아니고 영업기간이다. 못 쓰게 된 발전소를 되살리는 게 아니고 잘되고 있는 원전의 영업기간을 늘리는 거다. 우리나라 계속운전 제도는 보완할 점이 많다. 미국은 20년 연장인데 우리는 10년씩 연장해 준다. 서류 작업 등에 시간을 뺏긴다. 10년이 심사 끝난 다음부터 10년이 아니라 지난번 운영 허가받은 다음부터 10년이다. 신청을 2년 늦게 하고 심사하는 데 3년 정도 까먹으면 5년밖에 더 못한다. 법이 잘못된 거다.
■ 포퓰리즘에 젖은 에너지정책 잘못
ㅡ태양열·풍력 발전 정책을 평가하면.
▶숲을 파괴하고 태양광을 깐 건 광기라고 본다. 숲은 더 중요한 가치다. 가치판단의 혼란의 시대에 있다. 일단 전기요금이 많이 올라갔고, 화재도 났다. 중국에 돈을 퍼줬는데 저질 태양광은 발전효율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있다. 우스꽝스러운 일도 많다. 제주도에 풍력발전이 많은데 7~8월 더울 때 전력수요가 늘어난다. 제주는 여름에 바람이 불지 않는다. 겨울이 되면 수요가 줄어드는데 바람이 많이 분다. 풍력발전은 멈출 수 없어 문제다. 그런데도 계속 짓는다고 한다. 똑같은 상황이 전남에서도 벌어진다. 어느 날은 햇볕이 좋아서 태양광 전기를 많이 생산하는데 다 소비하지 못한다. (태양광을 위해) 원자력 발전을 중지해야 한다.
ㅡ원가 면에서 재생에너지는 어떤가.
▶전력시장 운영규칙을 보면 '원가' 272원짜리 재생에너지 전기와 52원짜리 원자력 전기 중에 한전은 272원짜리를 먼저 사게 돼 있다. '연료비'가 싼 전기를 먼저 쓰게 돼 있는 것이다. 한전은 5배 비싼 전기를 사서 팔아야 한다. 한전이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동일 시간대에 생산되는 전기 중에서 연료비가 아니라 원가가 싼 전기를 선택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ㅡ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와의 특허분쟁은.
▶기술자립과 기술독립은 다르다. 자립은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는 것이고, 독립은 지팡이도 없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기술자립 상태지 독립 상태는 아니다. 미국에서 라이선스 사용 허가를 받은 것이다. 허용되는 국가에 수출하는 것까지는 라이선스를 받았고, 기술까지 전수할 수는 없다. 아랍에미리트(UAE)처럼 원자로만 원하는 데는 나갈 수 있다. 기술까지 원하는 나라에는 미국 허락을 받아야 한다. 체코 같은 경우다.
ㅡ원전 수출 전망은.
▶전 세계적으로 원전을 짓는 분위기이고, 우리나라가 할 일이 많다. 웨스팅하우스가 미국 내에서 짓는 발전소나 외국에 수출하는 발전소의 원자로 터빈 등은 우리 기업이 공급한다. 건설도 우리 기업이 한다. 우리 원전은 반도체, 자동차, 선박에 필적하는 수출산업이다. 그 산업을 죽이는 건 말이 안 된다.
■ 정범진 전 한국원자력학회장은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제36대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을 지냈고,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정책심의회 위원과 미래창조과학부 정책조정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자문해 왔다.
tonio66@f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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