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부재로 쇠락하는 지방경제
파이낸셜뉴스
2025.12.11 18:34
수정 : 2025.12.11 19:06기사원문
청년은 떠나고 공장은 멈추며 산업의 경쟁력은 빠르게 희미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전략과 비전은 보이지 않고, 중앙정부를 상대로 한 협상력과 정책 집행력은 점점 무력해지고 있다.
특히 보수의 심장인 대구·경북(TK)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지역 곳곳에서 '위기의 보수를 재건할 구심점이 사라졌다' 'TK를 대변할 큰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탄식이 쏟아진다.
내년도 대구·경북 신공항 예산 확보 실패는 결코 단순한 예산 문제나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지난 10년간 경북이 국가정책 테이블에서 얼마나 주변화되었는지 보여주는 뼈아픈 결과이다.
20조원 규모의 TK신공항을 '기부 대 양여'라는 비현실적 방식으로 추진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이미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 부산 가덕도공항이 국가재정사업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TK신공항만 유독 민간 의존 모델을 강요받는 것은 행정력과 정치적 교섭력 부족의 결과다.
한때 경북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중심이었다.
포항의 철강, 구미의 전자, 경산의 기계부품 산업은 국가성장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지금 산업단지의 불빛은 켜져 있어도 그 안의 기술력과 미래성은 꺼지고 있다. 구미 전자산업은 대기업 구조조정 이후 회복하지 못했고, 반도체는 소부장 중심에 머물러 핵심 제조 생태계를 갖추지 못했다. 포항 철강산업 또한 고부가가치 전환과 산업 다각화에서 속도를 잃고 있다.
이 위기는 곧 인구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매년 8000명 이상의 청년이 떠나는 지역, 정주여건은 열악하고 양질의 일자리는 희소하다.
의료인프라도 심각한 상황이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3명으로 전국 최하위 수준이다. 대학은 있으나 산업은 없고, 인재는 있으나 기회는 없다. 경북은 지금 '살기 위해 떠나는 지역'이 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지켜볼 시간이 없다. 경북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대전환 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미래형 자동차, 반도체, 방산, 인공지능(AI), 로봇, 데이터센터, 이차전지 등 전략산업의 앵커기업을 유치해야 한다.
대기업 한 곳의 유치는 단순한 투자유치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를 다시 세우는 출발점이다. 또 분산과 소규모 지원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산업별 전략거점을 중심으로 예산·인력·규제를 통합적으로 배치할 수 있는 구조전환이 필요하다.
산업별 클러스터를 재정비하고, 구미-경산-포항을 연결하는 성장축을 새로 짜야 한다. 효과 없는 사업을 줄이고, 미래 전략사업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이러한 앵커기업 유치와 선택적 집중 산업전략을 현실화하려면 강력한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중앙정부와 협상할 수 있는 경험, 국가전략과 지역전략을 연결할 수 있는 정책 역량 등이 수반되어야 한다.
경북은 지금 잃어버린 30년을 넘어 결정의 마지막 시기에 서 있다. 지금 행동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없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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