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억에 '중국계 자본' 손잡았다…'큰손' 국민연금 벌집 쑤신 이지스운용
뉴스1
2025.12.12 06:15
수정 : 2025.12.12 06:15기사원문
(서울=뉴스1) 박재찬 보험전문기자 = 이지스자산운용이 인수가격 경쟁까지 부추겨 500억 원 차이로 우위를 점한 중국계 자본에 경영권을 넘기려다 '큰손' 국민연금과의 갈등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국민연금이 위탁 자산 관련 민감 정보 유출 문제에 발끈하며 투자금 회수라는 강경책을 꺼내든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비싸게 팔기 위해 이지스측은 가격 경쟁을 붙이는 경매 방식의 '프로그레시브 딜'까지 동원하며 인수가격을 끌어올렸지만 국민연금이 투자금을 회수하면 기업가치에 치명타가 불가피해 자칫 매각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는 10일 투자위원회를 열고 이지스운용에 위탁한 투자금을 회수하는 방안이 논의했다.
이지스운용이 경영권 매각을 위한 실사 과정에서 국민연금 출자 내역을 원매자들에게 유출한 정황이 포착된 데 따른 조치다. 해당 펀드 보고서는 국민연금의 사전 승인이 없으면 정보가 유출될 수 없도록 약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지스운용은 "펀드 실사 과정에서 일부 기본 정보가 투자자가 특정되지 않은채 회계법인에 제출된 것은 맞고, 대표이사가 9일 국민연금을 방문해 설명했다"며 "아직 연금 자금 회수 검토에 대해선 공식적으로 통보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이지스운용 매각 주관사인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는 지난 8일 중국계 사모펀드(PEF)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당초 이지스운용 인수전은 흥국생명과 한화생명의 2파전이 유력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중국계 사모펀드 힐하우스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힐하우스는 '프로그레시브 딜'(경매호가식 입찰)을 통해 이지스자산운용 인수 희망 가격을 1조 1000억 원을 제시하며 최고가를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그레시브 딜은 기업의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일정 금액 이상을 제시해 본입찰을 통과한 인수 후보들을 대상으로 다시 가격 경쟁을 붙여 매각 가격을 높이는 방식을 말한다. 최종 낙찰자가 나올 때까지 입찰 기한을 두지 않고 가격 경쟁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경매와 비슷한 특성을 띠고 있어 경매 호가 입찰이라고 불린다.
당초 본입찰 단계에서 힐하우스는 9000억 원대 중반의 가격을 제시해 최고가가 아니었지만, 본입찰 이후 주관사측의 프로그레시브 딜 제안에 인수가를 2000억 원 정도 올렸다. 경쟁자인 흥국생명은 1조 500억 원, 한화생명이 9000억 원대 후반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흥국생명과 힐하우스의 인수 희망 가격은 500억 원 차이다.
국민연금 발판으로 성장한 이스 이지스…500억원 차이에 중국 자본과 손잡아
금융권에서는 국민들의 노후 자금인 국민연금 등 공적 자금을 발판으로 성장한 이지스운용이 중국계 자본에 넘어간다는 데 대해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지스운용은 국토교통부 차관을 역임한 고(故) 김대영 창업주가 2010년 설립한 부동산 전문 투자사로, 누적 운용자산은 65조 8000억 원으로 2위인 마스턴투자운용(36조6000억원)과 격차가 큰 국내 1위, 아시아 3위권 운용사다.
이지스운용의 부동산펀드 설정액은 약 26조 2000억 원이며, 이 중 14조 3000억 원이 국내 자산이다. 국민연금이 출자한 금액은 2조 원 수준이고, 현재 시장 가치는 7조~8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중국계 사모펀드가 이지스운용의 경영권을 쥘 경우 국내 금융·부동산 정책과의 정합성 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공공 부동산 관련 민감 정보가 중국 자본에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단순한 기업 투자 차원을 넘어 국가 자본·자산 주권 측면에서의 리스크로 확장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국민연금이 투자금 회수를 검토하는 이유도 이지스운용이 경영권 매각 과정에서 위탁자산 관련 정보를 원매자에게 무단 제공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서울 역삼동 센터필드빌딩과 마곡 원그로브 개발사업 등 핵심 자산을 담은 6개 펀드는 국민연금의 사전 승인을 거치지 않고 정보를 유출할 수 없도록 약정돼 있다. 유출된 보고서에는 설정액, 평가액, 자산 이슈 등 민감한 정보가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일부 매수자에게는 이지스운용이 국민연금에서 받을 성과보수 전망까지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 출자자(LP)의 수익 정보를 외부에 전달한 것은 업계 관행을 넘어선 심각한 위반에 해당한다.
이지스운용 경영권 매각 무산 위기…대주주적격성 심사 난항 예상
이지스운용 경영권 매각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금융권에서는 국민연금 자금이 이지스운용 성장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 만큼 최악의 경우 힐하우스의 이지스운용 인수가 무산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만약 국민연금 자산 7조~8조원이 빠져나가면 이지스운용 기업가치에 큰 변동이 생긴다. 운용자산(AUM) 축소는 기업가치 재산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우선협상대상자인 힐하우스도 인수가격을 다시 제시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거래 자체의 재협상이나 무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융위원회의 대주주적격성 심사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심사 과정에서 재무 건전성, 사회적 신용, 자금 조달 방식의 투명성 등을 검토하는데 외국계 사모펀드라는 점에서 보다 까다로운 심의가 예상된다. 단기 투자자금 회수를 목표로 하는 사모펀드 특성상 기업의 재무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불신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간 갈등, 해외 매각에 대한 국민 정서상 반발 등에 대해 부분들도 따져볼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매각 주관사가 '프로그레시브 딜'을 통해 인수희망가를 올렸지만, 힐하우스와 흥국생명의 가격 차이는 불과 500억 원이었다"며 "이지스운용은 이 500억 원 때문에 국민연금 자산 7조~8조 원이 빠져나갈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한편, 흥국생명은 최대주주 손화자 씨와 주주대표 김애미 씨, 공동 매각주간사인 모건스탠리 한국 IB부문 김세원 대표 등 5명을 공정 입찰 방해 및 사기적 부정거래(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전날 경찰에 고소했다.
흥국생명은 "최대주주 손모 씨와 김모 대표 등 피고소인들은 소위 '프로그레시브 딜' 방식으로 입찰 가격을 최대한 높이기로 공모했으면서도 표면적으로는 ‘프로그레시브 딜’ 방식으로 진행하지 않는 것처럼 가장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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