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2035년 내연기관 ‘제로’서 후퇴…‘조건부 허용’

파이낸셜뉴스       2025.12.16 00:51   수정 : 2025.12.16 00:5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유럽연합(EU)이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전면 금지하기로 한 기존 방침을 사실상 완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전기차(EV) 보급 속도 둔화와 충전 인프라 부족, 자동차 업계의 수익성 악화가 맞물리면서 '제로(0)' 목표 대신 제한적 허용이라는 현실론이 힘을 얻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2035년 이후에도 일정 조건을 충족할 경우 내연기관 차량 생산을 허용하는 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자동차 제조사들은 2021년 배출량의 10% 수준까지 휘발유·디젤 차량 생산을 이어갈 수 있다. 친환경 철강 사용이나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V+소형 연료엔진) 생산 등이 조건으로 거론된다.

2035년 내연기관차 금지는 EU 그린딜의 핵심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당초 모든 자동차 제조사에 내연기관 차량 생산 '제로'를 강제하는 강력한 규제였다. 그러나 전기차 수요 확대가 예상보다 더디고, 충전 인프라 확산도 국가별로 편차가 크다는 점에서 자동차 업계의 반발이 거셌다.

독일과 이탈리아 정부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최근 "2035년은 물론 2040년, 2050년에도 전 세계에는 수백만 대의 내연기관차가 존재할 것"이라며 규제 완화를 지지했다. 집행위는 원래 내년으로 예정됐던 규정 재검토 시점을 업계 압박에 따라 앞당겼다.

반면 프랑스와 스페인은 내연기관 퇴출 목표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두 나라는 공동 문건을 통해 "금지는 의문시돼서는 안 되며, 유럽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전기차"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들 국가 역시 업계 부담 완화를 위한 일부 유연성에는 동의하고 있다. 유럽산 부품을 사용한 차량에 추가 인센티브(슈퍼 크레딧)를 부여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이는 저가 중국산 전기차 유입과 EU 내 생산기지의 높은 에너지 비용이라는 이중 압박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다.

EU 내 전기차 시장은 여전히 성장세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에 따르면 올해 1~10월 EU 전기차 판매는 전년 대비 26% 증가, 신차 시장의 16%를 차지했다. 유럽과 중국 업체들이 비교적 저렴한 전기차 모델을 대거 내놓은 것이 성장 배경으로 꼽힌다.


폭스바겐 브랜드의 토마스 셰퍼 최고경영자(CEO)는 "미래는 전기차"라면서도 "그 과정에서 소비자가 실제로 원하는 제품을 제공하려면 일정 수준의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U의 방침 변경 가능성은 영국에도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영국 정부는 선을 그었다. 영국은 2035년부터 모든 신차 판매를 전기차로 전환하겠다는 기존 계획을 완화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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