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달과 심한 변비에는 인진쑥과 돼지족발이 약이었다

파이낸셜뉴스       2025.12.20 06:00   수정 : 2025.12.20 06: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주>



옛날 윤씨 성을 가진 사내가 있었다. 그 사내는 어느 날 황달이 생겼다.

눈의 흰자위가 치자 우린 물처럼 노래졌고 얼굴빛은 마치 귤을 많이 먹은 사람 같았다. 사내는 황달기가 생기면서 소변도 시원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배변이 막힌 지 열흘이 넘도록 통하지 않았다.

윤씨는 마을에 있는 여러 곳의 약방을 찾았다. 의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먼저 변통(便通)을 시켜야 합니다.”라고 하면서 모두들 승기탕(承氣湯) 종류를 처방했다. 그러나 사내의 대변은 나을 기미가 없었고 오히려 배만 아팠다.

승기탕은 원래 장부에 실열(實熱)이 쌓여 기가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고 대변이 굳어 막히고 복부가 창만하고 열(熱)이 성할 때 쓰는 처방이다. 종류로는 대승기탕, 소승기탕, 조위승기탕 등이 있다.

윤씨는 마을 의원들의 처방이 효과가 없자, 수소문 끝에 명의로 알려진 허의원에게 진찰을 받았다. 허의원이 진맥을 해 보더니 사내의 맥은 침세(沈細, 가라앉고 가는 맥)했다. 만약 열증이었다면 부삭(浮數, 들뜨면서 빠른 맥)했을 것이다.

소변상태를 물으니 “소변색은 마치 마른 볏짚이 물에 잠겨 있는 듯하나 옅고 맑습니다. 양은 적고 자주 봅니다.”라고 했다. 허의원은 “그렇다면 이것은 허황(虛黃, 허증 황달)이요.”라고 했다.

옆에서 제자가 허의원에게 “스승님, 소변색으로 황달의 종류를 진단할 수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허의원은 “황달에 걸려 소변이 짙은 갈색을 띠면 이는 습열(濕熱)로 인한 황달이다. 그러나 소변이 담담한 황색을 띤다면 이것은 허황(虛黃)이다.”라고 했다.

황달은 담즙의 생성, 배출, 대사 과정에 문제가 생기거나, 담즙이 장으로 원활히 내려가지 못할 때 발생한다. 소변이 잘 나오지 않고 변비도 잘 생긴다. 보통 갈색 소변을 본다. 폐쇄성 황달, 담도정체성 황달에서는 담즙이 장으로 내려오지 않아, 장내 지방 분해가 안 되고 연동운동도 떨어진다. 이때는 회백색 대변이 나오거나 변비가 생긴다.

담즙은 지방 소화를 통해 장내 자극을 유도하고, 이 과정이 장 연동운동을 돕기 때문에 담즙이 줄어들면 변비가 쉽게 생긴다. 또한 구토, 발열, 식욕부진이 동반되거나 수분 섭취가 충분하지 못하면 체액이 감소해서 장내 수분이 줄어 변이 단단해진다.

허의원은 윤씨에게 “우선 황달에는 인진(茵陳)으로 간의 습열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고 하초의 기화(氣化)가 이루어져서 배출될 수 있게 해야 하오.”라고 하면서 옆에 있던 제자에게 “인진을 군약으로 해서 치자와 대황, 백출, 복령, 감초 등을 가미해서 20첩을 조제하도록 하거라.”라고 했다.

바로 황달을 치료하는 대표 처방인 인진호탕(茵蔯蒿湯)에 허증약을 가미해서 처방한 것이다.

인진호탕은 황달의 대표 처방이다. 그러나 허황(虛黃)에 인진호탕을 그대로 쓰면 황은 빠지지 않고 기력만 더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허황에서 인진호탕을 쓸 때는 반드시 ‘보(補)’를 염두에 둬야 한다.

인진호탕의 군약인 인진(茵陳, 인진쑥)은 간과 담에 고인 습열을 말려서 빼내고 담즙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어 황달을 치료하는 대표 한약재다. 인진의 주요 성분인 스코파론과 카필라리신 등은 담즙 분비를 촉진하고, 간세포를 보호하며, 항염증, 항산화 작용, B형 간염 바이러스 억제를 통해 황달을 개선한다는 약리학적 연구결과도 있다.

허의원이 제자에게 인진호탕 가미방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는데, 윤씨는 “무엇보다 열흘 동안이나 대변을 못 봐서 죽을 지경이요.”라고 불편감을 호소했다. 그러자 허의원은 “당신의 변비는 진액부족 때문이오.”라고 했다.

허의원은 “이 처방은 황달을 치료할 것이지만 심한 변비에는 저체탕(豬蹄湯, 돼지족발탕)이 좋겠소. 집에 가서 이 탕약을 복용하면서 돼지족발을 구해서 푹 고아 그 물도 마시고 삶아낸 족발도 다 먹으면 변비에 도움이 될 것이요.”라고 했다.

제자가 허의원에게 묻기를 “스승님, 돼지족발도 약이 되옵니까?”라고 했다. 허의원은 “돼지는 음물(陰物)이라서 진액을 보하는 효능이 있다. 특히 돼지 사족(四足)과 발굽은 그중에서도 가장 음기가 강하기 때문에 진액을 보충하는 효과가 있다. 이렇게 해서 변이 통하면 황달도 나을 것이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저체탕(豬蹄湯)은 말 그대로 돼지 족발을 이용해 끓인 탕으로 예로부터 기혈과 진액을 보하고 장을 윤택하게 하는 보양식으로 사용되어 왔다. 민간에서도 허약으로 인한 변비, 산후 회복, 출산 후 유즙분비 저하 등에 자주 활용되어 왔다.

허증에 의한 변비나 노인성 변비에는 돼지발굽뿐만 아니라 돼지의 다양한 부위가 약이었다. 특히 돼지지방을 삶아서 썰어서 먹기도 했고, 돼지간을 돼지고기 삶은 물로 먹기도 했다.

또한 대나무관을 항문에 끼워서 그곳에 돼지쓸개즙을 집어넣으면 바로 대변이 나왔다. 게다가 문헌에는 돼지지방은 다섯가지 종류의 황달인 오달(五疸)을 치료한다고 기록되기도 했다.

이렇게 나흘 정도 지나자 윤씨는 황달도 사라지고 대변도 통했다. 이처럼 옛날에는 황달도 한약으로 치료했다. 실제로 간질환에 도움이 되는 한약재들도 많다. 인진, 치자, 차전엽, 시호, 청피, 금전초, 울금, 대계(엉겅퀴) 등은 간기능을 개선하고, 인진호탕이나 인진오령탕 등은 황달을 치료하는 대표적인 처방들이다.

요즘 보면 한약이 간에 좋다 안 좋다 등등 말들이 많은데, 모두 기우(杞憂)에 불과하다. 모든 약들은 간대사를 거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한약이 간에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화학적으로 만들어진 양약이 간에 더 큰 부담을 준다. 무엇보다 간병(肝病)을 치료하는 한약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허씨의안>伊子書城黃疸秘結十數日不便, 時醫治以承氣湯, 余診脈沉細, 知系虛黃秘結, 擬以茵陳潤導滋養氣血, 使下焦氣化而能出矣. 飲以豬蹄湯, 十四日便通黃退, 遂愈. (윤자서가 황달로 배변이 막힌 지 열여흘이 넘도록 통하지 않았다. 당시의 의사들은 승기탕으로 치료하였다. 내가 맥을 짚어보니 맥이 침세하여 허증의 황달이 변을 막은 것임을 알았다. 인진으로 윤도하여 기혈을 자양하게 하여, 하초의 기화가 이루어져서 배출될 수 있게 하려고 처방하였다. 또 돼지 족발탕을 마시게 하였더니, 열나흘 만에 대변이 통하고 황달이 가라앉아 마침내 나았다.)

<동의보감>〇 茵蔯蒿. 性微寒一云涼, 味苦辛, 無毒一云小毒. 主熱結黃疸, 通身發黃, 小便不利. (더위지기. 성질이 약간 차고 서늘하다. 맛은 쓰고 매우며 독이 없다. 독이 조금 있다고도 한다. 열이 뭉쳐 생긴 황달로 온몸이 누렇고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데 주로 쓴다.)

〇 猪脂. 治五疸, 及胃中有乾屎, 發黃. 煎猪脂, 取三合, 日三服. 大便乾屎下乃愈. (돼지기름. 5가지 황달과 위(胃) 속에 마른 똥이 있어 황달이 생긴 경우를 치료한다. 돼지의 기름을 달인 것 3홉을 하루에 3번씩 먹는다. 마른 똥을 누면 낫는다.)

〇 四足. 性寒, 味甘. 補氣, 下乳汁. 煎湯洗瘡, 可免乾痛. (돼지의 발. 성질이 차고 맛은 달다. 기를 보하고 젖을 잘 나오게 한다. 삶은 물로 창을 씻어 주면 창이 말라서 아픈 증상이 없어진다.)

〇 懸蹄. 性平. 主五痔, 腸癰內蝕. (돼지의 발굽. 성질이 평하다. 오치와 장옹으로 속이 상한 데 주로 쓴다.
)

〇 猪膽汁導法, 猪膽一箇傾去汁少許, 入醋在內, 用竹管相接, 套入穀道中, 以手指撚之, 令膽汁直射入內, 少時卽通. (저담즙도법은 다음과 같다. 돼지쓸개 1개를 기울여 즙을 약간 빼내고 식초를 안에 넣은 후 대나무 관에 연결하고, 대나무 관을 항문에 끼운다. 돼지쓸개를 손으로 주물러 쓸개즙이 바로 항문 속으로 들어가면 잠시 뒤에 대변이 나온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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