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즈이도 울고 중국도 울었다… 안세영, 다리 절뚝이며 만들어낸 11관왕 위업

파이낸셜뉴스       2025.12.21 20:29   수정 : 2025.12.21 20:29기사원문
중국 왕즈이 상대로 2-1 승리



중국 항저우의 올림픽스포츠센터가 거대한 도서관처럼 변해버렸다. "짜요"(파이팅)를 외치던 1만 중국 관중의 함성도, 세계 2위 왕즈이의 거친 숨소리도 ‘여제’의 대관식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대한민국 배드민턴의 간판 안세영(23·삼성생명)이 2025년의 끝자락에서 전무후무한 역사를 써내려갔다.

안세영은 21일(한국시간)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파이널스 2025 여자 단식 결승에서 중국의 왕즈이를 상대로 세트 스코어 2-1(21-13 18-21 21-10) 승리를 거뒀다. 무려 1시간 36분에 걸친 혈투였다.

이로써 안세영은 올 시즌 11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는 2019년 남자 단식의 전설 모모타 겐토(일본)가 세운 단일 시즌 최다 우승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기록이다. 더불어 안세영은 올 시즌 승률 94.8%(73승 4패)라는 비현실적인 수치를 남겼다. 배드민턴 역사상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신의 영역’이다.

승부의 분수령은 2세트였다. 7-8로 뒤진 상황에서 두 선수는 무려 74번이나 셔틀콕을 주고받는 ‘지옥의 랠리’를 펼쳤다. 안세영은 몸을 날려 수비해냈지만, 간발의 차로 실점한 뒤 코트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탈진에 가까운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3세트에서는 왼쪽 햄스트링 통증으로 다리를 절뚝이는 모습까지 보였다.

하지만 여제의 진가는 위기에서 빛났다. 3세트 8-6 상황에서 믿기지 않는 집중력으로 내리 7점을 쓸어 담으며 승기를 잡았다. 다리는 멈칫거렸지만, 라켓은 더 날카롭게 춤췄다. 안방에서 우승을 노리던 왕즈이는 안세영의 투혼에 질려버린 듯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안세영은 이번 우승으로 왕즈이와의 상대 전적을 16승 4패로 벌렸고, 올 시즌 맞대결 8전 전승이라는 ‘천적 관계’를 완벽하게 구축했다.

‘머니 게임’에서도 새로운 역사가 탄생했다.
우승 상금 24만달러를 추가한 안세영은 남녀 통틀어 사상 최초로 단일 시즌 상금 100만달러(약 14억원)를 돌파한 선수가 됐다.

우승이 확정된 순간, 안세영은 관중석을 향해 양손 검지를 펴 보이며 ‘11승’을 자축했다. 항저우의 밤하늘 아래, 대한민국 배드민턴의 국보가 세계 최정상의 자리에 우뚝 서 있음을 전 세계에 선포하는 순간이었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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