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영 UCLA 교수 "K컬처, 美소비문화로..2025년이 전환점"
파이낸셜뉴스
2025.12.23 18:32
수정 : 2025.12.23 18:32기사원문
넷플릭스, 연말 맞아 '넷플릭스 인사이트' 개최
한류의 경제적 가치와 미래 조명
[파이낸셜뉴스] “K컬처의 확산에 있어 2025년은 분명한 전환점이 된 해입니다.”
그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흥행을 계기로 K뷰티·푸드·패션·관광 전반에서 한류 열풍이 한층 심화됐다”며 “미국 대중문화 소비의 무게중심 축 자체가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학생도, 교사도 사자보이즈”…일상이 된 K컬처
김 교수는 한류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100년 전통의 뉴욕 메이시스 백화점 추수감사절 퍼레이드에 ‘케데헌’ 인기 캐릭터 ‘더피’가 등장한 점을 언급했다. 또 “코스트코 연말 화장품 선물세트 중 K뷰티 제품만 완판되는 현상이 나타났다”며 K컬처가 실질적 소비 영역으로 확장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딸의 학교에서 열린 할로윈 코스프레 대회에서 학생팀과 교사팀 모두 ‘케데헌’ 속 사자보이즈로 분장한 팀이 우승했다”며 현장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또 “박사과정 대학원생이 ‘케데헌’을 계기로 K콘텐츠에 관심을 갖게 된 뒤, 캐릭터 ‘루미’의 목소리를 분석한 리포트를 제출했다”며 “유행이 아이콘이 되고, 아이콘이 다시 지식 체계로 전환되는 대중문화의 힘을 실감했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문화 지형을 바꾼 K콘텐츠
이날 ‘넷플릭스 인사이트’ 행사에서는 K콘텐츠가 촉발한 글로벌 문화 지형의 변화가 집중 논의됐다. 행사에는 김 교수와 함께 유현준 홍익대학교 교수 등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해, K콘텐츠가 국경을 넘어 전 세계 MZ세대의 소비 습관과 생활양식에 미친 영향력을 분석했다. 특히 미국 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K컬처가 더 이상 ‘유행’이 아닌 일상적인 문화 소비로 정착했다는 점이 강조됐다.
김 교수는 “시장조사기관 유고브(YouGov) 조사 결과, 미국 내 최다 스트리밍 한국 드라마 상위 20편이 모두 ‘오징어 게임’, ‘더 글로리’, ‘킹덤’ 등 한국 콘텐츠였다”며 “또 다른 조사기관 2CV 분석에서도 K콘텐츠 시청 이후 한국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답한 비율에서 미국이 8개국 중 3위를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미국 내 한류 확산의 배경으로 실질적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는 미국 MZ세대의 특성을 꼽았다.
퓨(Pew) 리서치 센터(2018)에 따르면, 미국 MZ세대는 타 국가에 대해 전반적으로 호의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으며, 연령이 낮을수록 그 경향이 더욱 강하다. 이들은 “미국보다 더 나은 국가가 존재할 수 있다”, “사회적·문화적 다양성의 확대는 사회에 이롭다”고 인식하는 세대다.
2000년대 이후 경제난, 코로나19, 글로벌 갈등 등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성장한 이들은 합리적인 소비를 중시하면서도 새로운 문화에는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며, 이러한 갈망을 온라인 공간을 통해 적극적으로 해소해 왔다.
이 같은 세대적 특성이 K컬처가 단발적 유행을 넘어 미국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었던 토대가 됐다는 분석이다.
지역·정치 성향을 초월한 케이팝
실제 K팝은 미국 사회의 지역·정치적 분열 구조를 넘어 확산되고 있다.
2025년 7월 빌보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2%가 일주일 내내 케이팝을 청취한다고 답했다. 응답자 1299명 가운데 13~24세가 중심이었고, 여성 비중은 약 80%에 달했다. 미국 내 K팝 팬 분포를 보면 특정 지역이나 정치 성향에 치우치지 않고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포돼 있다.
김 교수는 “온라인 기반으로 소비되는 케이팝은 지역성과 정치성을 초월해 커뮤니티 소속감과 공동체 의식을 제공하는 문화로 작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K드라마의 확산 역시 주목할 만하다. 유고브의 온라인 커뮤니티 분석에 따르면, K드라마는 45세 이상 중년 남성 팬층도 상당 부분 확보하고 있다. 이들은 팬 활동을 외부로 드러내지 않지만, 지속적이고 충성도 높은 시청자층으로 분류된다.
특히 히스패닉계 시청자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넷플릭스 케이드라마 시청자 중 30%가 히스패닉계인데, 이는 전체 넷플릭스 구독자 중 히스패닉계 비율(약 17%)과 미국 전체 인구 비중(약 20%)을 웃도는 수치다.
히스패닉계는 향후 미국 사회의 핵심 주류로 성장할 집단으로, 2060년 캘리포니아 인구의 과반수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 교수는 “이 집단에서 K드라마가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점은 K콘텐츠의 장기적 성장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K 프리미엄’을 만드는 힘
김 교수는 K컬처의 경쟁력으로 ‘익숙하면서도 이국적인 감각’과 관계·참여 중심의 콘텐츠를 꼽았다.
K콘텐츠가 미국 시청자들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해 공감을 이끌어내면서도, 패션·뷰티·음식·도시 풍경에서는 이국적인 매력을 제공한다고 봤다.
그는 “레드벨벳의 ‘덤덤(2015)’ 홍보 비주얼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유행하던 1950년대 미국 대중문화를 연상시키지만, 이를 한국적으로 재해석해 ‘익숙하지만 낯선’ 정체성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또 관계성을 중시하는 K콘텐츠가 젊은 세대의 마음을 위로하면서도 공감대 형성을 통해 소속감과 유대감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소비는 단순 관람보다 직접 참여하고 실천하는 경험을 선호한다”며 “콘서트 코스프레 문화나 ‘한국 편의점 털기’ 챌린지처럼, 한국의 일상적 공간이 글로벌 소비자에게 참여형 문화 경험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이러한 흐름이 K컬처를 일시적 유행이 아닌 지속 가능한 문화 자산으로 만들고 있다”며 “2025년은 그 변화가 가시적으로 확인된 해”라고 강조했다.
향후 한류 지속을 위해서는 K콘텐츠와 K라이프스타일의 일상 속 확장과 함께, 장르와 형식 전반에서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경쟁력 강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상 첫 500만 관람객 돌파
이날 패널 토론에는 콘텐츠 영역을 넘어, 문화 유통과 무역·통상 등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한류를 다루고 있는 관계자들이 참여해, 한류 확산을 보다 입체적인 시각에서 조망했다. 토론에는 이승은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유통전략팀 차장과 이상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한류 PM이 패널로 참여했다.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인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은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해 국립박물관들의 유물을 모티브로 굿즈를 개발하고 있다.
지난 2025년 10월 말 기준, 국립중앙박물관 누적 관람객은 사상 처음으로 501만 명을 돌파했다. 박물관 굿즈 '뮷즈(MU:DS)' 매출은 전년 대비 85% 급증하며 306억원을 돌파했으며 '오픈런'과 '새벽 대기열'이 이어지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증명했다.
재단은 이러한 현상의 큰 요인 중 하나로 K콘텐츠의 글로벌 흥행을 꼽았다. '케데헌' 공개 직후인 7월, '뮷즈' 매출이 전월(6월) 대비 두 배로 급증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승은 해외사업차장은 “한류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현장에선 크게 체감하지 못하다가 '케데헌' 공개 직후 눈으로 확인했다. 16년 근무 중에 개관 전부터 굿즈를 사기 위해 줄을 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남녀노소 다양했다. 올해 뮷즈 매출이 4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기대한다. 볼펜, 키링 등 중저가 상품을 팔아 이러한 성과를 거뒀다"고 설명했다.
‘코트라’의 한류 박람회 "한류 낙수 효과 연구"
이상윤 코트라 한류 PM은 지난 11월 미국 뉴욕에서 최초로 연 한류 박람회를 언급했다. 코트라에 따르면 ‘뉴욕 한류 박람회’는 약 2만여 명의 참관객이 몰리고, 현장에서만 총 1100만 달러 수출계약, 업무협약이 이뤄졌다.
그는 "100개 중소기업이 참석했다. 현장에서 체감한 한류는 한국산은 더 이상 저비용 신흥국의 브랜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미국 내 한류 인기로 인해 프리미엄 상품으로 인식됐다. 달라진 한류의 위상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한류박람회는 한류마케팅 대표 플랫폼으로, 올해로 25회째를 맞이했다. 그는 "특히 2024년 K뷰티가 미국 내 화장품 수입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르며, 화장품 원료 및 완제품 제조사 진출이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또 K푸드 최대 수출 시장으로 라면, 김 등을 필두로 최근 10년간 식품류 대미 수출이 연평균 10%씩 급증세다.
그는 “한류 낙수효과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며 “우수한 한류 콘텐츠가 소비재 수출로 잘 이어질 수 있도록 필요 지원을 하고, 선순환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중소기업의 단독 추진이 어려운 한류스타, 문화 접목 마케팅 기회를 넓히겠다는 방침이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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