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기업들 '고환율, 고금리'에 자금조달 비상...사모시장 영구채로 '우회'
파이낸셜뉴스
2025.12.30 15:33
수정 : 2025.12.30 15:32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유동성이 풍부한 1월 회사채 발행 시장을 노려왔던 기업들의 분위기는 예년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석유화학, 건설 등 업황 악화를 겪고 있는 계열사로 대기업 살림 역시 녹록지 않다.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항공 및 호텔업을 영위하는 기업들도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30일 코스콤CHECK에 따르면 올해 12월 무보증 회사채 순발행 규모는 1조5531억원으로 작년 동월(4조3705억원) 대비 3분의 1수준으로 줄었다. 회사채 시장에서 기업들의 눈치 보기가 심화된 모습이다.
■ 3% 넘나드는 3년물 국고채, 기업들 '이자비용 부담'...영구채 활용 증가
국고채 금리는 올해 1월 초 연 2.507%였으나 이달 19일 연 2.939%수준을 가리키고 있다. 3%를 경계로 국고채 금리가 넘나드는 상황인 셈이다. 고금리 수준이 계속되면서 기업들은 이자비용에 대한 부담이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특히 수요예측을 거쳐야 하는 공모 회사채 발행 시장은 크게 위축됐다.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사모채 시장에서 잇달아 영구채 발행을 택했다. 영구채 발행이 가능한 기업들은 상황이 나은 편이다. 유동화 구조를 짜는 과정에서 계열사 지원, 증권사 및 은행 등 금융사가 나서서 신용보강을 했기에 영구채 조달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영구채는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돼 기업들이 단기간에 자본을 확충하고 재무지표를 관리하는 데 유용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고환율 고착화 국면에서 항공·호텔·면세 등 환율 민감 업종은 물론, 석유화학·건설처럼 업황 둔화가 구조화된 업종들은 사모시장을 중심으로 영구채 활용을 늘리고 있다.
다만 콜옵션이 극단적으로 단기화되면서 ‘무늬만 영구채’라는 지적과 함께, 유동화 과정에서 계열사 및 금융사의 신용보강 부담이 누적되고 있다는 리스크도 부각되는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롯데건설, 롯데지주, 아시아나항공, 호텔롯데, SK어드밴스드, GS건설, 한화토탈에너지스 등은 이달 사모시장에서 신종자본증권(영구채)을 잇따라 발행했다.
롯데건설은 지난 29일 350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오는 1월 29일 신종자본증권 3500억원어치를 추가로 발행할 예정이다. 해당 영구채는 특수목적법인(SPC) 엘씨파트너스제일차~엘씨파트너스사차가 모두 인수한다.
SPC가 해당 영구채를 기초자산으로 삼아 발행한 유동화증권에 호텔롯데와 롯데물산이 지급보증을 제공해 신용을 보강키로 했다. 롯데지주는 같은 날 총 2750억원 규모 영구채를 발행했다. 해당 영구채는 SPC 프로젝트엘에이치씨와 교보증권 등이 인수했다. GS건설은 지난 18일 영구채 2000억원을 발행했다. 이 과정에서도 금융사들의 신용도 지원으로 일부 영구채는 유동화됐다.
석유화학업종인 SK어드밴스드 역시 지난 24일 1000억원 규모 영구채를 연 7.580%에 발행했다. 한화토탈에너지스는 지난 4일 연 6.2%에 5000억원 규모 영구채를 찍었다. 악화되는 석유화학 업황이 고금리로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다.
이 외에도 아시아나항공과 호텔롯데는 지난 26일 각각 2000억원, 1800억원 규모의 30년물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항공·호텔업은 원·달러 환율 변동에 민감한 업종으로, 고환율 기조가 장기화되자 선제적인 자본 확충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 회사채 '각종 옵션'이 리스크 될까
문제는 최근 발행되는 영구채 상당수가 콜옵션 개시까지의 기간이 짧아 사실상 단기물과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에는 영구채 발행 후 5년이 지나서야 콜옵션 행사가 가능하도록 설계됐지만, 코로나19 이후 투자자들의 리스크 회피 성향이 강화되면서 콜옵션 개시 시점이 급격히 앞당겨졌다.
SK어드밴스드의 이번 영구채는 콜옵션 개시 시점이 발행 후 8개월로, 사실상 초단기 구조다. 아시아나항공은 1년, 호텔롯데는 1년 6개월, GS건설은 3년 후부터 영구채 콜옵션 행사가 가능하다.
시장에서는 콜옵션 개시일을 사실상 ‘기업의 현금 상환 시점’으로 인식한다. 콜옵션이 도래하면 이자율이 상승하고, 제때 상환하지 못할 경우 신용도에 부정적인 신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콜옵션 미행사는 기업의 재무 부담 확대 또는 유동성 이상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회사채의 강제상환옵션도 채권시장에서 예의주시하는 부분이다.
3대 신평사는 이달 포스코이앤씨의 신용등급을 A+로 유지하면서도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현재 포스코이앤씨가 발행한 회사채 잔액 5959억원 중 사모채 2000억원에 강제상환옵션이 걸려 있다.
해당 옵션은 신용등급이 두 단계 아래인 A- 수준으로 떨어질 경우 회사채를 일시에 상환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트리거에 이르기까지 신용등급(A+) 대비 2 단계 차이에 불과하다.
khj91@fnnews.com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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