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환율 종가와 서학개미
파이낸셜뉴스
2025.12.30 19:16
수정 : 2025.12.31 08:50기사원문
한 해 끝자락에서 환율이 한국 경제를 격랑으로 몰고 갔다. 외환시장 폐장일(12월 30일)을 불과 4거래일 앞둔 지난 23일 원·달러 환율이 연중 저점 대비 최고 10% 이상 치솟았다. 물가상승 등 실물경제 타격을 차치하고 폐장일 환율 종가는 그해 기업의 부채비율과 은행의 건전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확정짓는 민감한 수치다.
고환율로 마감하면 2025년 결산 기준으로 기업 달러부채의 원화 부채비율이 높아져 자금조달 비용과 직결되는 신용등급이 흔들릴 수 있다. 특히 은행의 경우 외화대출의 원화 환산액이 커지는 만큼 위험자산이 늘어나 BIS비율을 떨어뜨린다. 건전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기존 대출을 회수하거나 금리를 올리면 서민경제가 직격탄을 맞는다. 더구나 국가 대외부채도 증가하게 돼 경제 전반에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때문에 환율이 불안하면 기업, 금융권, 정부 등이 극도로 예민해지는 시기가 연말이다.
환율 상승은 복합적이다. 무엇보다 가계, 기업, 정부 등 '경제 3주체'의 해외투자가 활성화됐다. 개인은 서학개미 형태로, 기업은 미국 관세인상 등으로 대외 설비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실제 기획재정부가 집계한 올해 3·4분기 해외직접투자액은 총투자액 기준 160억6000만달러로 전년 동기(146억9000만달러) 대비 9.3% 증가했다. 정부도 트럼프의 투자압박에 2000억달러를 10년간 나눠 대미투자를 해야 한다. 이 외에 국민연금이 투자영토를 해외로 확장한 지는 오래됐다. 또한 달러약세에도 불구하고 한미 금리격차와 정부 확장적 재정정책 등으로 유동성이 늘어나 원화가치를 짓누른 것도 한몫했다.
이달의 경우 서학개미 행보와 환율 고공행진을 들여다보면 상관관계는 높지 않아 보인다.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 집계 기준으로 연중 최고 수준인 1480원을 뚫은 지난 23일까지 외국인은 이달 들어 국내증시에서 약 1조5000억원, 채권시장에서 11조6500억원가량 각각 순매수했다. 총 13조1500억원 규모다. 같은 기간 개인투자자들의 해외 주식·채권 순매수는 3조4400억원(23억8400만달러)선이다. 국내로 유입된 외국인 투자자금에 비하면 서학개미 실탄은 비교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또한 해외투자 상품도 엄연히 한국의 자산이다. 국민연금은 되고 개미는 안되는 이유가 있을까. 현재 개인투자자들의 해외 보유자산은 2282억달러(약 327조원)로 지난해 말 기준 외환보유액 4300억달러의 53%에 달한다. 시기와 규모의 문제이지 언젠가 국내로 환류할 자금이다. 기축통화 기반의 해외자산이기 때문에 유사시 환율시장의 안전판 역할도 가능하다. 아울러 우리나라가 금융선진국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환리스크를 개인 탓으로 돌리는 선진국은 지금껏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차라리 국민연금이 보유한 해외자산(9월 말 기준 798조원) 중 일부를 차익실현하는 게 더 신속한 해법일 수 있다. 지금도 글로벌시장에서 자산을 불려 나가는 스마트 개미들에게 잘못은 없다.
winwin@fnnews.com 오승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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