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총재 “대미투자, 기계적 200억달러 아냐···외환안정이 원칙”

파이낸셜뉴스       2026.01.02 09:30   수정 : 2026.01.02 12:17기사원문
한국은행 총재 2026년 신년사

[파이낸셜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매년 200억달러 한도 대미투자 금액이 외환시장 안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다시금 못 박았다. 현재 원·달러 환율 상승 원인으로는 국민연금의 투명한 환헤지 전략, 국내투자자의 해외투자 확대 등을 지목했다.

“200억달러는 상단일 뿐”

이 총재는 2일 2026년 신년사를 통해 “연간 200억달러 규모 대미투자 자금이 원화 약세를 초래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며 “하지만 이는 최대치를 의미하며 한국과 미국 간 업무협약(MOU)에 명시된 바와 같이 실제 투자 규모는 외환시장 안정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어 “매년 기계적으로 200억달러가 대미투자 자금으로 유출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 과정에서 한은은 정부와 함께 외환시장 안정을 훼손하는 어떤 결정에도 동의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앞서 지난해 12월 17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설명회에서도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없는 정도로만 대미 투자를 하게 돼있다”고 시장에서 제기되는 우려에 선을 그은 바 있다.

이 총재는 지난해 말 환율이 1480원대까지 오른 상황을 두고 “우리나라는 순대외채권국으로 대외건전성이 양호한 만큼 최근 환율 수준만으로 과거 금융위기 상황과 유사하다고 보는 시각을 적절하지 않다”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환율 상승이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이고 내수기업 등에 상대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해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엔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환율이 상향 조정된 배경에 대해선 “한·미 간 성장률 및 금리 격차,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 등이 주요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어 이를 개선하려면 중장기적으로 국내 산업 경쟁력 강화와 장본시장 제도 개선을 통한 투자유인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난해 10월 이후 달러화 움직임보다 원화 절차 폭이 상대적으로 커진 것은 지속 늘어난 거주자의 해외증권투자가 외환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초래해 단기적으로 큰 상승 압력을 가했기 때문”이라며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규모와 시기, 그리고 환헤지 운용전략 등이 국내외 시장에 투명하게 드러나면서 환율 절하 기대가 한 방향으로 쏠렸다”고 분석했다.

깔려있는 불확실성

이 총재는 이외 통화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도 짚었다. 그는 “5월로 예정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임기 종료 이후 연준의 정책 방향과 그에 따른 시장 영향은 중요한 변수”라며 “일본, 유로지역, 호주 등에선 금리 인상이 시작됐거나 기조 전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 국가 간 차별화된 통화정책이 시장 변동성을 확대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악화 중인 주요국 국채시장 여건도 언급했다. 이 총재는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은 고령화로 인한 재정지출 증가와 코로나19 이후 누적된 정부 부채의 이자 부담 확대로 재정 여건이 크게 나빠졌다”며 “글로벌 장기 국채 금리가 크게 뛰었고 최근엔 국채 환매조건부채권(RP) 시장에서 비은행금융기관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충격 발생 시 위험이 증폭될 수 있단 경계감도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글로벌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한 기대 조정 가능성도 금융시장 주요 위험 요인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최근 AI 관련 기업들 주가가 빠르게 상승한 가운데 미국에선 AI 기업 간 연계된 부채 구조로 인해 가격조정 위험이 확산될 수 있단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국내 투자자들의 글로벌 AI 기업에 대한 위험노출액(익스포져)이 확대된 만큼 급격한 조정 가능성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빼면 올해 성장률 1.4%

한은은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1.8%로 예측하고 있다. 이 총재도 “지난해(1%)에 비해 상당히 높아져 잠재 수준에 근접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이 같은 전망은 글로벌 통상환경과 반도체 경기, 내수 회복 속도 등에 따라 상방과 하방 모두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며 “반도체 경기에 힘입어 올해 성장을 주도할 것으로 보이는 정보기술(IT) 부문을 제외하면 성장률은 1.4%에 그치고 부문 간 회복 격차가 커 체감 경기와는 괴리가 클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도 지난해 11월 27일 AI 확산에 따른 반도체 수출이 국내 성장을 지탱하고 있다고 이미 판단을 내렸다. 낙관·비관 시나리오의 기준도 모두 반도체 수요였다.


AI 확산으로 견조한 반도체 수요가 이어지고, 미국 반도체 품목관세가 보류되면서 수출이 10%대 중반을 가리키는 증가세가 유지된다면 내년 성장률은 기존 전망치에서 0.2%p 추가될 것으로 분석했다. 반대로 반도체 수출 증가세가 하반기 중 둔화될 시 해당 수치는 0.1%p 빠질 것으로 봤다.

이 총재는 또 “K자형 회복(계층·산업·지역별로 양극화가 빚어지는 형태의 경제 회복 형태)은 결코 지속 가능하고 완전한 회복으로 보기 어렵다”며 “신산업 육성을 통해 성장 기반을 다변화하는 등 구조전환 노력을 지속함으로써 특정 부문에 편중된 성장·회복 패턴이 반복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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