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복귀? 안 갑니다" 편안한 왕좌 대신 '진흙탕' 택했다… 고우석의 미련한 낭만
파이낸셜뉴스
2026.01.10 17:00
수정 : 2026.01.10 17:00기사원문
LG 복귀 대신 '가시밭길' 택한 고우석의 도전
스프링캠프 초청장도 없는 철저한 을
바닥부터 다시 기어오르는 빅리그 생존기
WBC, 고우석 야구 인생 건 '운명의 승부수
[파이낸셜뉴스] 9일 인천국제공항.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2026 WBC 야구대표팀의 출국 현장에서 유독 눈에 띄는 이름이 있었다. 30명의 명단 중 유일한 해외파, 고우석(28·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이다.
화려한 금의환향은 아니다.
국내 복귀라는 따뜻한 '꽃길'을 스스로 걷어차고, 기약 없는 미국 땅에서의 '가시밭길'을 택한 고우석. 야구계는 그의 '이해할 수 없는' 도전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무모한 도전의 성패를 가를 첫 번째 관문이 바로 이번 WBC다.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고우석의 거취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친정팀 LG 트윈스는 통합 우승의 주역인 그가 돌아온다면 두 팔 벌려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돌아오기만 하면 고액 연봉과 확실한 마무리 보직, 그리고 팬들의 사랑이 보장된 미래였다.
하지만 고우석의 선택은 충격적이었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마이너리그 계약. 심지어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 초청조차 포함되지 않은, 철저한 '을'의 계약이었다.
이는 사실상 '백의종군' 선언이다. 40인 로스터 제외, 스프링캠프 미초청은 개막 로스터 진입 가능성이 '0'에 수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닥부터 다시 기어 올라와야 하는 처지다. 그럼에도 고우석은 "야구를 시작할 때부터 꾼 꿈"이라며 짐을 쌌다.
현장 관계자들은 혀를 내두른다. 한 에이전트 관계자는 "보통 이 정도 성적과 대우면 국내 유턴을 선택하는 게 99%다. 고우석처럼 자존심과 금전적 이득을 모두 포기하고 미국에 남는 건, 그만큼 MLB 마운드에 대한 갈증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맞이한 2026 WBC는 고우석에게 단순한 국제대회가 아니다. 어쩌면 그의 야구 인생을 건 거대한 '쇼케이스' 현장이 될 전망이다.
스프링캠프에 가지 못한 고우석에게 WBC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유일한 무대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집결하는 WBC에서 세계적인 타자들을 상대로 건재한 구위를 뽐낸다면, 디트로이트 구단의 시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마이너리그에서의 숫자보다, 단기전 큰 무대에서의 임팩트가 때로는 더 큰 설득력을 갖기 때문이다.
류지현 대표팀 감독 역시 고우석의 이런 '절실함'을 높이 샀다. 류 감독은 "KBO 전력강화위원회에서 구위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며 그를 발탁했다. 잃을 것이 없는 선수의 독기는 팀 전력에도 플러스 요인이다.
흥미로운 점은 고우석의 태도다. 주변에서는 "WBC를 발판 삼아라"고 조언하지만, 정작 본인은 철저히 선을 그었다. 그는 출국 인터뷰에서 "메이저리그 어필보다는 오직 국가대표 팀에 도움이 되는 것만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그의 의지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개인의 성공을 위한 쇼케이스가 아니라, 팀을 위한 헌신을 다짐함으로써 부담감을 지우고 경기에만 몰입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모두가 '미련하다'고 말할 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투수. 벼랑 끝에 선 고우석의 간절함이 WBC라는 기폭제를 만났다. 과연 그의 무모한 도전은 이번 대회를 통해 반전의 드라마를 쓸 수 있을까.
한국 야구팬들은 이제 'LG의 수호신'이 아닌 '도전자 고우석'의 투구를 숨죽여 기다리고 있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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