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지금 붙으면 우리가 무조건 진다"… 한국보다 더 '한국스러운' 김상식호

파이낸셜뉴스       2026.01.14 10:30   수정 : 2026.01.14 10:30기사원문
한국은 '계산기' 두드릴 때 베트남은 '전승'… 실력으로 증명한 조 1위
박항서도 못 이룬 '메이저 3연속 제패'… 아시아 흔드는 '김상식 매직'
"한국보다 더 한국답다"… 끈끈한 수비·한방 역습에 사우디도 무릎





[파이낸셜뉴스] "상상도 못 한 결과"라는 김상식 감독의 말은 겸손이었다. 지금 베트남 축구가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기적이 아닌 실력이다. 반면, 한국 축구가 보여주는 현실은 악몽이 아닌 실화다.

'쌀딩크' 박항서의 유산은 김상식이라는 새로운 엔진을 달고 아시아 무대를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다.

김상식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은 12일(한국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린 2026 AFC U-23 아시안컵 조별리그 A조 최종전에서 홈팀 사우디를 1-0으로 제압했다.

이로써 베트남은 요르단(2-0), 키르기스스탄(2-1)에 이어 사우디까지 연파하며 3전 전승(승점 9), 조 1위로 8강에 진출했다. 베트남이 이 대회 조별리그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준우승 신화를 썼던 2018년, 그리고 2020년에도 조별리그 성적은 2위였다.



이번 대회를 지켜보는 축구 팬들은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같은 날, 이민성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우즈베키스탄에 졸전 끝에 패하며 타 팀의 경기 결과에 운명을 맡겨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이 계산기를 두드리며 식은땀을 흘릴 때, 베트남은 홈 텃세가 극심한 사우디 원정에서 보란 듯이 전승 우승을 확정 지었다. 한국인 지도자가 이끄는 팀은 맞지만, 그 팀이 한국이 아니라는 점이 아이러니할 뿐이다.

베트남의 상승세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김 감독은 지난 2024년 4월, 필립 트루시에 체제에서 표류하던 베트남 지휘봉을 잡았다. '독이 든 성배'라 불리던 자리였다. 하지만 그는 부임 6개월 만에 AFF 미쓰비시전기컵(현대컵) 우승을 차지했고, 이어 AFF U-23 챔피언십, 2025 동남아시안게임(SEA) 금메달까지 휩쓸었다.

동남아시아 축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메이저 대회 3연속 우승'이다. 베트남 축구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박항서 전 감독조차 이루지 못한 대업이다. 동남아 무대를 평정한 김상식호의 경쟁력은 이제 탈(脫) 동남아급이다.



이번 대회 기록은 경이롭다. 3경기에서 단 1실점. 김 감독 특유의 수비 조직력은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고, 승부처마다 터지는 용병술은 적재적소에 꽂혔다. 사우디전 승리는 단순한 1승이 아니다. 피지컬과 기술에서 앞선다는 중동의 강호를 상대로, 그것도 원정에서 거둔 승리이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

김 감독은 경기 후 "선수들이 한마음으로 헌신한 결과"라며 "8강에서도 기적을 만들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한국 축구계의 시선은 복잡하다.

불과 며칠 사이, 한국은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무기력했다. 점유율만 높고 실속 없는 축구, 색깔 없는 전술로 비판받는 한국과 달리, 베트남은 확실한 '선수비 후역습'과 끈끈한 조직력으로 아시아 무대에서 실리를 챙기고 있다. 우리가 잃어버린 투지와 조직력이 지금 베트남 대표팀에 고스란히 이식된 듯한 모습이다.



베트남이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한국이 이렇게까지 무너질 줄은 더더욱 몰랐다. 김상식 감독의 성공 스토리가 한국 축구 팬들에게 통쾌함을 줌과 동시에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이유다. 한국인 지도자의 역량은 베트남에서 꽃을 피우고 있는데, 정작 한국 축구의 토양은 메마르고 있다.


베트남은 이제 더 이상 '동남아의 복병' 수준이 아니다. 김상식 감독의 지휘 아래 그들은 아시아의 새로운 강자로 진화하고 있다.

어쩌면 조만간 그라운드에서 만날지도 모를 이 '붉은 유니폼'의 팀이, 한국 대표팀보다 더 한국다운 축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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