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파커!” 무대 위로 옮겨 온 ‘라이프 오브 파이’가 특별한 이유

파이낸셜뉴스       2026.01.17 10:00   수정 : 2026.01.17 10:00기사원문
'라이브 온 스테이지'로 찾아온 한국 초연 '라이프 오브 파이'
소설→영화→무대로…박정민·박강현 두 명의 파이 열연
정교한 '퍼펫예술'이 주는 감동에 철학적 질문까지



무대 위에 바다가 펼쳐진다. 넘실거리는 파도, 쏟아지는 별빛, 그리고 그 한가운데 떠 있는 구명보트 한 척 위에는 한 명의 소년과 한 마리의 호랑이가 서로 마주 보고 대치한다. 당장이라도 뛰어올라 소년을 물어뜯을 것 같은 호랑이의 생생한 움직임에, 무대 아래 조용한 객석에서 무심코 감탄이 터져 나온다.


[파이낸셜뉴스] 얀 마텔의 부커상 수상작이자, 이안 감독의 영화로도 유명한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가 연극도, 뮤지컬도 아닌 라이브 온 스테이지(Live on Stage)라는 새로운 장르로 한국을 찾았다. 서울 역삼동 GS아트센터에서 상연 중인 ‘라이프 오브 파이’는 17세 소년 ‘파이’가 벵골 호랑이 ‘리차드 파커’와 함께 227일간 표류하며 겪는 생존기를 무대 위에 마법처럼 구현해냈다.

“진짜 호랑이가 아니라고?”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는 퍼펫의 미학


수많은 작품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 박정민이 8년 만에 무대에 복귀하는 작품으로 먼저 화제를 모았지만, 어쩌면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배우가 아니라 퍼펫(Puppet)과 퍼펫티어(Puppeteer·인형 조종사)들일지도 모른다.

무대 위 동물들이 얼마나 ‘리얼’하겠냐는 의문은 1막 시작 후, 파이의 회상과 함께 인도 폰디체리의 동물원이 관객들의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말끔히 씻겨나간다. ‘라이프 오브 파이’에 등장하는 퍼펫들이 특별한 건, 실제 각 동물의 골격과 근육, 움직임을 바탕으로 디자인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퍼펫티어들의 숙련된 움직임과 능숙한 연기가 퍼펫을 단순한 인형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실제 동물처럼 느끼게끔 숨을 불어넣는다.

퍼펫을 연기하는 퍼펫티어는 모습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염소, 얼룩말, 하이에나, 오랑우탄과 같은 동물들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모습에 퍼펫티어의 모습은 환영처럼 사라져, 어느새 동물들의 움직임 속으로 녹아든다. 그리고 정교한 움직임에 시선을 빼앗긴 관객들 앞에, 마침내 등장한 리차드 파커가 거친 숨을 내쉬며 객석을 응시하는 그 순간 의심은 경이로움으로 바뀐다.



믿고 싶은 것 혹은 믿어야 하는 것…눈 앞에 놓인 두 개의 이야기


화려한 볼거리에 감탄하다 보면, 어느새 ‘라이프 오브 파이’가 던지는 묵직한 질문과 맞닥뜨리게 된다. 가족을 잃고 홀로 살아남은 파이는 구조된 뒤 동물들과 함께한 표류기를 들려주지만, 배의 침몰 상황을 알기 위해 찾아온 조사관들은 그의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결국 파이는 동물 대신 인간이 등장하는 또 다른 버전의, 훨씬 더 잔혹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그리고 묻는다. "두 이야기 중 어떤 이야기를 선택하시겠냐"고.

연극은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이 존엄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믿고, 어떻게 기억을 재구성하는지를 파고든다. 그리고 객석의 우리는 무대 위에서 움직이는 호랑이 리차드 파커를 바라보며 그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리차드 파커는 정말 파이와 함께 표류한 진짜 호랑이였을까? 파이에게 공포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삶을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원동력이자 파이 자신의 야성이 투영된 어떤 존재였던 것일까?

2017년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8년 만에 공연 무대에 선 박정민은 이 질문에 "연습을 거듭해 얻은 결론은 어떤 쪽이 진실이든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결국 소년의 믿음과 모든 것을 잃었음에도 잘 살고 싶다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답한다.



또 "제가 눈물이 없는 편이라 '못 우는 배우'로 유명한데, '라이프 오브 파이'는 매 공연 감정이 주체가 안 될 만큼 눈물이 난다"며 "공연하면서 작품 속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뮤지컬계 스타 박강현이 박정민과 함께 ‘파이’에 더블 캐스팅됐고, 베테랑 배우 서현철·황만익·주아·송인성 등 총 27명의 배우들이 무대를 채운다.
라이브 온 스테이지 ‘라이프 오브 파이’는 서울 역삼동 GS아트센터에서 오는 3월 2일까지 공연한다.

"요즘 어떤 공연이 볼 만하지?" 공연 덕후 기자가 매주 주말, 공연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눕니다. 쏟아지는 작품의 홍수 속에서 어떤 작품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는 관객들을 위해, 기자가 직접 보고 엄선한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당신의 주말을 채워줄 즐거운 문화생활 꿀팁, [주말엔 공연 한 잔]과 함께 하세요.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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