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를 기회로… 시니어, 경제의 축으로 봐야"
파이낸셜뉴스
2026.01.22 18:21
수정 : 2026.01.22 18:21기사원문
신미화 日 이바라키 그리스도교大 교수
일본 사례 통해 본 韓 초고령사회 진단
日 3명중 1명 65세 이상 ‘고령화 일상’
시니어들 경제활동 주축으로 활동 여전
‘보호 대상 아닌 국가 핵심 인적자산’ 인식
세금내고 소비하는 경제 주체로 끌어올려
60세 이상만 채용… 90대도 평생교육
‘작고 오래가는 일’에 눈높이 맞춰 취업
‘고령자 대학’ 다니며 함께 연결되는 노후
시니어가 사회 주인공 되는 분위기 조성
韓 초고령사회에 더 불안해하는 이유
경제 성장 속도에 사회적 안전망 못따라가
연금도 ‘정교한 차등 지원’으로 변화 필요
주체적 경제 행위자로 빛나는 인생 2막을
대한민국이 65세 이상 인구 비율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공식 진입했다.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불안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우리보다 앞서 이 길을 걸어온 일본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40년간 일본에 거주하며 현장을 누벼온 일본 이바라키 그리스도교대학교 경영학부 신미화 교수는 "초고령사회에 대응하는 가장 중요한 해법은 제도보다 인식의 변화다.
시니어를 보호 대상이나 부담으로만 보지 말고 사회의 주체이자 경제의 한 축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또 "일본에서는 고령자를 핵심 인적 자산으로 활용하고, 작은 규모로 오래가는 '라이프스타일 창업'이 확산되고 있다"면서 "초고령사회는 두려움이 아니라 준비된 사람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2007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현재 일본 거리에서 체감하는 '고령화의 일상'은 어떤 모습인가.
▲일본 현장을 다녀보며 가장 크게 체감한 점은 '고령화가 더 이상 특별한 뉴스가 아닌 일상'이라는 점이다. 현재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9.4%에 달한다. 이는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 3명 중 1명이 시니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이를 국가적 재앙으로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시니어들이 경제활동의 주축으로 활동하고, 그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와 서비스가 산업 전반에 촘촘하게 박혀 있는 하나의 '완성된 생태계'를 보는 느낌이다.
―한국과 일본 모두 초고령사회라는 같은 지점에 도달했지만, 출발점과 진행 과정이 다르다고 했는데. 한국 사회가 유독 더 큰 불안을 느끼는 근본 원인은.
▲핵심은 바로 '속도'다. 한국 경제는 '압축성장'의 신화를 썼지만, 인구구조 변화 역시 '압축적'으로 찾아왔다. 일본은 저출산·고령화가 비교적 완만하게 진행되면서 연금, 돌봄, 복지 제도를 정비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반면 한국은 경제성장이 제도를 앞지르며 달려오다 보니 고령화라는 거대한 파고를 뒷받침할 사회적 안전망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한 급격한 변화가 대중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특히 연금제도 정착 시기가 양국 노인의 삶의 질을 갈랐다고 분석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오늘날의 노인 빈곤 문제를 만들었다고 봐야 하나.
▲일본은 1961년에 이미 전 국민 연금체계를 갖췄다. 하지만 한국은 1999년에야 전 국민 연금으로 확대됐다. 이 38년이라는 간극이 결정적이다. 현재 한국의 70~80대 어르신들은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초석을 다진 주역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들이 일할 때는 연금제도가 없었거나 제도권 밖에 있었다. 이분들이 은퇴 후 빈곤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 것은 개인의 책임이라기보다 제도의 공백이 낳은 안타까운 결과다.
―정부의 기초연금이나 지원책이 확대되고 있지만 교수님께서는 '재정 부담과 지속 가능성'을 우려했다. 지금의 지원방식을 어떻게 재설계해야 할까.
▲정부의 공백 메우기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 시장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 현재의 일률적인 지원방식은 국가재정에 엄청난 부담이 된다. 이제는 '정교한 차등 지원'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소득 수준에 따라 지원을 세분화하고, 대중교통 혜택 같은 보편적 복지모델도 지속가능성을 고려해 연령기준을 재정비해야 한다. '지금 당장'의 복지도 중요하지만 '미래 세대까지 계속 갈 수 있느냐'를 함께 고민하는 사회적 합의가 시급하다.
―일본 사회의 큰 문제 중 하나인 '노노케어(老老Care)'를 경고했다.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이 단어가 왜 우리 사회에 위협적인가.
▲'노노케어'는 말 그대로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구조다. 70대 자녀가 100세 부모를 돌보는 것이 현실화됐다. 일본에서는 부모 돌봄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간병 이직'이 연간 10만명을 넘는다. 이 과정에서 간병 피로로 인한 비극적인 사건들도 발생한다. 고령화는 단순히 노인인구 증가로 끝나지 않는다. 돌봄이 가족에게만 집중될 때 노동시장이 마비되고 가계가 파산하는 연쇄작용이 일어난다. 한국도 이 문제를 가족의 헌신으로만 해결하려 한다면 일본보다 훨씬 가혹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고령화를 '부담'이 아닌 '기회'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일본에서 발견한 새로운 경제모델의 핵심 메시지는.
▲현장에서 본 일본의 핵심 메시지는 '시니어는 보호 대상이 아니라 국가의 핵심 인적 자산'이라는 점이다. 시니어들이 가진 숙련된 경험과 책임감을 시장 속에서 활용하려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단순히 복지비용을 지출하는 것이 아니라 시니어를 다시 경제활동의 주체로 끌어올려 세금을 내고 소비를 하는 '주체적 경제 행위자'로 재정의하는 작업이 초고령사회의 유일한 탈출구다.
―한국만이 가진 강력한 강점으로 '경로당 인프라'를 꼽았다. 이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한국은 전국 방방곡곡에 경로당이 촘촘하게 설치돼 있다. 이는 일본인들이 굉장히 부러워하는 인프라다. 경로당이 단순히 화투 치고 식사만 하는 곳이 아니라 '학습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디지털 교육을 하고, 서로 배우고 배려하는 유익한 프로그램을 도입한다면 고독 문제를 해결하고 역동적인 시니어 커뮤니티로 발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물류거점으로 이용해 시니어들이 새벽배송 업무를 맡는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서점가에 '시니어 에세이 코너'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운데.
▲서점에 가면 '나는 102세인데 아직 일하고 있다'거나 '90세인데 혼자 밥 잘 해 먹고 산다'는 일반인 시니어들의 에세이가 엄청나게 쏟아진다. 40년 전에 산 옷을 멋지게 코디한 사진을 담은 책들이 시니어들에게 읽히며 '나도 멋지게 한번 살아볼까' 하는 자신감을 준다. 시니어가 사회의 주인공이 되도록 만들어 가는 분위기가 굉장히 강하다.
―오사카의 고령자 대학교처럼 '배움이 끝나지 않는 환경'은 고령화 문제 해결에 어떤 도움을 주나.
▲오사카 고령자 대학교는 90대도 다니는 평생학습 기관이다. 치매가 있는 분이 교실을 못 찾고 헤매면 다른 시니어들이 같이 케어하며 공부한다. 누구나 나이에 상관없이 배울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이 어마어마하게 잘되어 있다. 여기서 만난 사람들이 인연이 되어 함께 창업하거나 지역에 또 다른 학습거점을 만들기도 한다. 혼자 버티는 노후가 아니라 '함께 연결되는 노후'를 만드는 핵심이다.
―일본의 '주식회사 고령사' 사례가 매우 인상적이다. 이 모델이 한국의 은퇴자들에게 줄 수 있는 구체적인 힌트는.
▲'고령사'는 이름 그대로 60세 이상만 채용하는 인재 파견업체다. 평균연령 72세인 이들은 아파트 관리, 호텔 청소, 가스 점검 등 본인의 경력과 성실함을 살릴 수 있는 곳에서 일한다. 중요한 것은 '맞춤형 근무'다. 건강 상태에 따라 주 5일 혹은 주 3일 일하는 식으로 유연성을 둔다. 이는 은퇴 후 '무조건 쉬겠다'가 아니라 '내 몸에 맞게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마인드가 새로운 시장을 만든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의 은퇴자들도 과거의 직책을 내려놓고 '작고 오래가는 일'에 대한 눈높이를 맞출 필요가 있다.
―지역 사회와 연결된 '할머니 신문'이나 '우키하의 보물' 사례도 흥미롭다. 시니어가 지역 경제를 살리는 주역이 된 비결은 무엇인가.
▲규슈의 '우키하의 보물' 같은 모델은 시니어가 잘할 수 있는 일(식당, 카페 운영)과 시니어들의 욕구(신문 발행, 상담)를 비즈니스로 연결했다. 특히 '할머니 신문'은 유료임에도 매달 3000부가 팔리는데, 이는 시니어들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소통하려는 욕구가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이런 구조는 일자리를 넘어 '돌봄과 커뮤니티'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시니어를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주체로 다시 끌어들일 때, 고령화는 지역 소멸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인생 2막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해법은 무엇인가.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식의 변화'다. 일본 시니어들은 자신을 보호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주체적 경제 행위자'로 정의하기 시작했다. 최근 일본에서 유행하는 '라이프 스타일 창업'처럼, 퇴직금을 쏟아붓는 큰 창업이 아니라 본인이 가진 노하우로 아주 작고 오래가는 일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의 화려했던 직책은 잊고 주체적인 경제 행위자로 거듭날 때, 아주 빛나는 인생 2막이 될 수 있다.
■ 신미화 교수 약력 △일본 문부과학성 장학생 △게이오대학교 상학 박사 △글로벌 기업의 경영혁신, 일본 시니어 비즈니스 라이프스타일 연구, 지방 활성화 및 고령사회 대응 프로젝트 다수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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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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