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굴욕적이면 어때?" 자존심 황재균 vs 생존 하주석... 손아섭의 정답지는 단연 후자다
파이낸셜뉴스
2026.01.29 10:00
수정 : 2026.01.29 10:00기사원문
차가운 시장 평가, '7.5억 보상금' 족쇄에 묶인 최다안타 1위
'명예로운 은퇴' 황재균 vs '처절한 생존' 하주석… 엇갈린 두 운명
3000안타 대업 포기할 텐가… 지금은 '굴욕' 감수하고 도장 찍을 때
[파이낸셜뉴스] 1월의 끝자락, 프로야구 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10개 구단 선수단이 스프링캠프지로 속속 출국하며 2026시즌을 향한 대장정에 돌입했다. 그러나 모두가 설렘을 안고 떠난 공항에 단 한 사람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KBO리그 통산 최다 안타(2618개) 보유자, ‘리빙 레전드’ 손아섭(38·한화)이다.
손아섭이 시장에서 고전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가장 큰 요인은 뚜렷한 기량 저하다. 손아섭은 지난 두 시즌 연속 타율 3할 달성에 실패했고, 장타율은 0.400을 밑돌았다. 지난해 홈런은 단 1개에 그쳤다. ‘정교함’이 무기였던 타자가 컨택 능력이 떨어지고, 노쇠화로 인해 수비와 주루 생산성마저 급감했다. 전문 지명타자로 활용해야 하는데, 장타력이 부족하다는 점은 구단들에 치명적인 감점 요인이다.
여기에 FA 등급제도 발목을 잡는다. C등급이라 보상선수는 없지만, 보상금 7억 5000만 원은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젊고 유망한 자원이라면 투자가 가능하겠지만, 에이징 커브가 뚜렷한 30대 후반 베테랑에게 이 정도 출혈을 감수할 구단은 냉정하게 없다. 보상금을 내려준다는 통 큰 체스쳐까지 있었음에도 여전히 협상은 난항이다. 원소속팀 한화 역시 강백호 영입과 외국인 타자 구성으로 손아섭의 효용 가치가 예전 같지 않다는 판단을 내린 상태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교되는 사례가 바로 황재균이다. 황재균은 지난겨울 원소속팀 KT로부터 재계약 제안을 받았다. 황재균은 "금액 조건이 나쁘지 않았다"라고 말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은퇴를 선언했다. 자신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느니, 박수 칠 때 떠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는 ‘슈퍼스타’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는 가장 깔끔한 방식이었다.
손아섭 역시 그간 쌓아온 커리어와 명성을 고려하면 황재균의 선택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헐값 계약으로 연명하는 모습은 자칫 ‘레전드’의 말년을 초라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아섭에게는 황재균과는 다른, 포기하기 힘든 명분이 있다. 바로 전인미답의 ‘3000안타’ 고지다. 현재 페이스라면 3년은 더 뛰어야 달성 가능한 대기록이다. 은퇴는 곧 기록의 중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현실적인 생존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모델이 바로 팀 동료였던 하주석의 사례다. 하주석은 2024시즌 후 첫 FA 자격을 얻었으나 시장의 외면 속에 1년 총액 1억 1000만 원(보장 9000만 원)이라는 충격적인 조건에 한화에 잔류했다.
자존심이 상할 법한 대우였지만, 하주석은 현실을 받아들였다. 어쩔 수 없었다. 심우준의 영입으로 설자리를 잃었고, 음주운전으로 도덕성까지 치명타를 입었다. 당장 은퇴한다고 해도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절치부심했다. 퓨처스리그에서 묵묵히 기량을 재정비한 그는 1군에 복귀해 타율 0.297을 기록하며 팀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기여했다. 그 결과, 올 시즌 연봉은 2억 원으로 122% 인상됐다. ‘백기 투항’이 단순한 굴욕으로 끝나지 않고, 재기의 발판이 되었음을 증명한 것이다.
손아섭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하주석식 유연함’이다. 현재 시장 상황상 손아섭이 주도권을 쥐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구단이 내미는 조건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일단 유니폼을 입는 것이 우선이다.
계약 규모가 줄어드는 것은 뼈아프지만, 선수 생명을 연장해야만 3000안타라는 대업에 도전할 기회도 주어진다. 하주석처럼 1년 단기 계약이나 낮은 금액을 수용하고, 성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다시 증명하는 것이 현실적인 최선책이다.
반등에 성공한다면 내년 시즌 연봉 협상이나 트레이드 등 새로운 길을 모색할 명분도 생긴다.
스프링캠프는 시작됐고, 시간은 손아섭의 편이 아니다. 자존심을 내세워 은퇴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자존심을 굽히고 실리와 기록을 챙길 것인가.
시간을 끌어봤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손아섭의 선택은 결국 ‘생존’을 위한 결단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야구계의 중론이다. 일단 지금은 자존심을 굽히고 어떻게든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이 가장 급선무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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