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시체의 살점을 베어 먹었다

파이낸셜뉴스       2026.01.31 08:30   수정 : 2026.01.31 08:41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주>



옛날 숙종 때, 평안도 곽산 고을에 김사현이라는 사내가 살고 있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몸이 이상해졌다.

이해하지 못할 증상들이 하루가 다르게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고을의 의원을 찾아가 봤지만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의원은 “당신의 병은 더 이상 약이나 침뜸으로 다스리기 어렵겠소.”라는 말을 듣고 낙담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사현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깊은 산속, 병든 호랑이 한 마리가 비틀거리며 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털은 빠지고 눈빛은 흐렸으며, 숨조차 가쁜 모습이었다. 그때 산길을 지나던 나그네 하나가 호랑이와 마주쳤다. 호랑이는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그 사람을 덮쳤고, 피와 살을 뜯어 먹었다. 그리고 꿈속에서, 호랑이는 다시 일어섰다. 눈이 살아났고, 발걸음이 힘찼다.

그 순간 꿈에 깬 김사현은 식은땀이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그날 이후, 그 꿈은 여러 번 반복되었다. 김사현의 마음속에 ‘나도 사람고기를 먹으면 내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사람의 고기를 얻는다는 것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느 날, 마을에 곡소리가 들렸다. 감나무집 사내가 갑자기 비명횡사한 것이다. 며칠 동안 장례를 마치고서는 상여가 마을 어귀를 지나 뒷산으로 올라갔다. 김사현이 집 마당에서 보니 앞산 중턱에 묘지를 삼는 것이 보였다.

김사현은 ‘죽은 사람의 고기도 사람고기렸다.’하고 생각했다. 그는 그날 밤 삽을 들고 묘지로 향했다. 그는 삽으로 묘지를 파낸 후 관을 열고 떨리는 손으로 칼을 이용해 시신의 살점을 떼어 냈다. 그리고 그것을 집에 와서 물에 넣고 끓여서 먹었다.

그러나 병은 나아지지 않았다. 대신 그날부터 밤마다 악몽이 시작되었다. 그는 더 이상 잠을 이루지 못했고, 악몽을 꾸다가 잠에서 깨면 온몸이 식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그러던 중 묘소가 파헤쳐진 것을 알게 된 감나무집 사람들은 수소문 끝에 며칠 전 김사현이 묘소에 다녀왔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서 김사현을 관아에 신고했다.

관아로 끌려온 김사현은 결국 현령 앞에 엎드려 모든 일을 이실직고했다. “제가 병이 들었는데, 병을 고치자고 묘지의 관을 열고 시체를 훼손하여 그 살점을 먹었습니다.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라고 했다.

관아는 발칵 뒤집혔다. “병을 고치겠다고 시체를 파헤쳐 살을 먹었다고?” 지금까지 그런 죄는 들어본 적도, 다스린 적도 없었다. 그래서 관련된 법령도 없었다. 곽산 현령은 사안을 그대로 상소로 올렸다.

조정은 술렁였다. 유교를 근본으로 삼은 나라에서, 사람의 시체를 훼손해 약으로 삼았다는 것은 단순한 범죄를 넘어 나라의 질서가 붕괴될 수 있는 천인공노할 사건이었다.

형조판서 김구는 율문을 펼쳐 놓고도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김구는 숙종에게 “이와 관련된 죄를 물을 수 있는 법문이 없습니다. 어떻게 처분할지, 주상의 판단을 여쭙습니다.”라고 물었다.

숙종은 대신들에게 “대신들이 어떤 죄가 되고 그에 합당한 어떤 벌을 내릴지 의논하도록 하라.”

어떤 이는 말했다. “강도율(强盜律)을 써야 합니다.” 사람의 살을 취한 것은 강탈에 준한다는 것이었다.

또 어떤 이는 말했다. “개관견시율(開棺見尸律)을 적용해야 합니다.” 관을 열고 시체를 훼손했으니 교형이 마땅하다는 주장이었다.

숙종은 의관들도 입시하도록 했다. 한 의관에게 “의서에는 사람의 고기로 병을 고친다는 말이 있느냐?”하고 물었다. 그러자 의관은 “어느 의서에도 사람고기로 병을 고친다는 말은 없습니다. 의서를 보면 사람의 부속물인 머리카락, 치아, 손발톱, 태반(胎盤), 모유, 월경수(月經水) 등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잘한 기록까지 합치면 총 23종이나 있습니다. 그러나 인육(人肉)은 언급 자체가 없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그러고서는 의관은 잠시 머뭇거렸다. 의관의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더니 숙종이 다시 물었다. “별다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하고 물었다.

의관은 “옛날 백제 시대에 상덕(向德)이란 자가 있었는데, 당시 흉년으로 온 백성이 굶주리고 역병이 돌았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종기도 나서 먹을 것이 없어서 거의 죽게 되었는데, 상덕이 어머니 종기를 입으로 빨아내고 게다가 자신의 넓적다리의 살을 베어서 먹여서 건강을 되찾게 하였다고 합니다. 고을에서 이 사실을 임금에게 아뢰니, 임금이 상을 내린 바가 있습니다.”라고 했다.

의관은 이어서 “또한 중국 송나라 때 위초(尉貂)는 그 아비가 악독한 병을 앓았는데, 의원이 이르기를, '아들의 고기를 쓰면 고칠 수 있다.' 하니, 위초가 곧 자기 다리의 살을 베어 만두 속에 넣어 먹였다고 합니다. 임금이 이 사실을 듣고 재상 등에게 명하여 그 효행에 포상을 의논케 한 바가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숙종은 놀라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의관은 ”그렇다고 해서 사람고기가 별도의 약효가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때 우의정 이세백이 나섰다. “전하, 부모를 부양하기 위해 자식이 허벅지 살을 떼어 먹인 것은 효행이라 할 수 있으나, 병을 고친다고 해서 시체를 훼손함은 근본이 다르옵니다. 이 나라의 법령을 보면 관을 열어 시체를 본 것도 죄이고, 시체를 땅에 묻기 전에 장례 중인 사람의 옷을 벗기기만 해도 곧바로 참형에 처합니다. 하물며 시체의 살을 베어 먹었으니, 어찌 더 무겁게 벌을 내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때를 기다리지 말고 즉시 참형에 처해야 합니다.”

숙종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서는 “그 말대로 시행하라. 그리고 전국에 방을 붙여서 사람고기를 약으로 사용함에 있어 이를 엄벌에 처함을 포고하라.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라고 명했다.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시체의 살점을 베어 먹은 김사현은 그렇게 법으로는 단죄되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숙종실록>숙종 25년 윤7월 29일. ○乙丑/引見大臣、備局諸臣. 先是, 平安道 郭山人金士見爲名者, 爲治病, 掘發葬屍, 割食其肉, 事覺承款, 監司具由以聞. 至是, 刑曹判書金構, 以律無定文, 稟請裁處, 上命大臣議. 或言當用强盜律, 或言當用開棺見尸律. 右議政李世白議以爲: "開棺旣是絞罪, 而此則太輕. 剝割架葬人衣服, 猶且不待時處斬, 則割食死肉, 豈不較重乎? 宜施以不待時之律." 上命依此施行. 대과 비국의 여러 신하들을 불러 뵈었다. 이보다 앞서 평안도 곽산 사람 김사현이라 이름하는 자가,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장사지낸 시체를 파내어 그 살을 베어 먹었는데, 일이 드러나 자복하였고, 감사가 그 경위를 갖추어 아뢰었다. 이에 이르러 형조판서 김구가 법률에 정해진 조문이 없다 하여, 처분을 재단해 주시기를 품청하니, 임금이 대신들에게 의논하게 하였다. 어떤 이는 강도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하였고, 어떤 이는 개관견시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우의정 이세백이 의논하여 말하기를, “관을 열고 시체를 본 죄가 이미 교형인데, 이것은 너무 가볍습니다. 가장한 사람의 의복을 벗겨 빼앗은 경우도 오히려 때를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참형에 처하는데, 하물며 죽은 사람의 살을 베어 먹은 것이 어찌 그보다 가볍겠습니까? 마땅히 때를 기다리지 않는 율을 시행해야 합니다.”하니, 임금이 이에 따르도록 명하였다.)

<삼강행실도>○ 向德. 熊川州人. 以孝稱. 天寶十四年. 歲荒民飢. 加以疫. 父母飢且病. 母又發癰. 皆瀕於死. 向德日夜不解衣. 盡誠安慰. 而無以爲養. 乃 肉以食之. 又母癰. 皆致之平安. 州報於王. 王賜租三百斛. 宅一區. 口分田若干. 命攸司立石紀事. 人號其地云孝家. (상덕은 웅천주사람인데, 효행이 있다고 일컬었다. 천보 14년(755)에 흉년이 들어 백성이 굶주리는 데다가 염병이 번졌다. 부모가 굶주리고 또 병들었으며, 어머니는 종기도 나서 모두 거의 죽게 되었는데, 상덕이 밤낮으로 자지 않으며 옷도 벗지 않고 정성을 다하여 위안하였다. 그러나 봉양할 길이 없으므로, 넓적다리의 살을 베어서 먹이고, 또 어머니 종기를 입으로 빨아서 모두 건강을 되찾게 하였다. 고을에서 이 사실을 임금에게 아뢰니, 임금이 벼 3백 곡과 집 한 채와 구분전 약간을 하사하고, 당해 관서에 명하여 비를 세워 그 사적을 기록하게 하였다. 사람들이 그곳을 효가라고 불렀다.)

○ 散員同正尉貂. 父永成患惡疾. 醫云用子肉可治. 貂卽割股肉. 雜置中食之. 王聞之. 命宰相文俊等. 議其褒賞. 文俊等. 啓曰. 唐安縣民李興. 父被惡疾. 興自割股肉. 假他物饋之. 刺史上其事. 旌表里閭. 今貂本契丹醜種. 不曉文字. 乃能不愛其身. 能盡其孝. 宜如舊典旌表門閭. 敎可. (산원동정 위초는 그 아버지 위영성이 악한 병을 앓았는데, 의원이 이르기를, “아들의 고기를 쓰면 고칠 수 있다.” 하니, 위초가 곧 자기 다리의 살을 베어 만두 속에 넣어 먹였다.
임금이 이 사실을 듣고 재상 문준 등에게 명하여 그 포상을 의논케 하니, 문준 등이 아뢰기를, “당나라 안풍현의 백성 이흥은 그 애비가 악한 병에 걸렸을 때에 이 흥이 스스로 다리의 살을 베어 다른 것으로 속여서 먹였는데, 자사가 이 일을 아뢰어 그 마을 어귀의 문에 정표하였습니다. 이제 위초는 본디 거란의 추한 종족이고 글도 모르는데, 능히 그 몸을 아끼지 않고 효성을 다하였으니, 옛 법대로 마을 어귀의 문에 정표해야 마땅합니다.” 하니, 그리하라고 분부하였다.)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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