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배가 고프면 화가 날까? 복부 두뇌 이야기

파이낸셜뉴스       2026.02.07 08:00   수정 : 2026.02.07 08: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세로토닌이 뇌 전체를 지휘하지만 사실 뇌에서 분비되는 세로토닌은 인체가 분비하는 전체 세로토닌의 1~2%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세로토닌은 피부의 메르켈세포(피부에 닿는 질감, 압력 등의 감각을 인지하여 뇌로 전달하는 상피세포)에서도 분비되고 폐의 신경내분비세포와 혀에 있는 미각 수용체세포에서도 분비된다. 약 8%는 혈소판에 저장되어 혈관을 수축시키는 데 쓰인다. 전체 세로토닌의 80~90%를 분비하는 곳은 위장관이다.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이 왜 위장관에서 분비되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율신경계의 한 갈래이면서 독립적 신경계로 기능하는 장신경계를 알아야 한다. 장신경계란 식도부터 항문까지 이어지는 위장관에 존재하는 신경계를 뜻한다.

위장관에는 1억~5억개에 달하는 신경세포가 분포하여 여러 화학물질을 분비한다. 과거에는 이것을 단순히 소화액이나 소화효소가 분비되는 자율신경계의 일부로만 간주했으나 점점 그 이상의 독립적 기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치 자체적인 데이터 처리장치가 있는 것처럼 위장관이 스스로 음식의 종류를 판단하고 음식에 따라 다른 화학물질을 분비하고 소화속도와 소화액 분비 속도를 조절한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우리 몸을 지휘하는 것은 뇌다. 뇌가 중추신경계의 총사령관으로서 자율신경계를 관리한다. 숨쉬기, 심장박동, 순환 등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작동하는 모든 신경계가 자율신경계다. 소화 역시 자율신경계로 우리가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작동하며 중추신경계의 지배를 받는다.

그런데 소화를 뇌의 지배에만 맡겨 두면 평상시에는 괜찮지만 생존이 위험한 상황에서는 치명적일 수 있다. 뇌가 소화와 관련된 모든 활동을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배고픔을 무시하도록 식욕을 없애고 소화운동을 정지시키는 등, 뇌 위주의 초비상체제로 돌입할 수 있다.

동물에게 먹는 것은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뇌에게 이것을 온전히 맡겨 두는 건 위험하다. 그래서 동물은 중추신경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장신경계를 별도로 진화시켰다는 이론이 성립한다.

사실 정확히 따지면 중추신경계보다 장신경계가 먼저다. 해파리, 해삼과 같은 하등동물에게는 뇌가 없다. 뇌는 없지만 소화관이 있고 평생 먹이 활동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뇌는 이후 더 진화된 동물에게 생겨난 새로운 기관이다. 위험을 감지하면 숨어야 하고 적을 만나면 공격을 해야 하고 번식을 위해 짝짓기를 해야 하는 동물에겐 외부 정보를 모으고 현명한 판단을 내릴 고도의 사고체계가 필요하다.

그래서 별도로 진화된 것이 뇌와 중추신경계다. 장신경계를 기본으로 만들고 중추신경계는 이후에 만들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과학자들은 장신경계를 ‘제2의 뇌’ 혹은 ‘복부뇌’ 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평소에는 중추신경의 통제 하에 있지만 뇌와 복부의 연결 채널인 미주신경을 절단해도 스스로 알아서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장신경계에는 원심성(뇌의 신호를 말초신경을 통해 근육으로 전달하는 기능) 신경세포와 구심성(말초의 조직과 기관에서 얻은 신호를 뇌로 전달하는 기능) 신경세포가 있는데 이 두 가지 세포를 다 제거해서 중추신경으로부터의 신호입력을 완전히 끊어도 장신경계 스스로 멀쩡하게 소화활동을 하고 심지어 신경계 전체를 통합하는 역할까지 해낸다.

장의 연동운동, 소화 효소 분비, 40여 종의 신경전달물질의 분비 등을 뇌의 명령 없이도 완벽하게 해낸다. 과연 '복부 두뇌'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뇌와 복부 두뇌는 공통점이 많다. 우선 복부 두뇌에서 분비하는 신경전달물질은 뇌에서 분비하는 신경전달물질과 완전히 동일하다.
세로토닌, 도파민, 옥시토신, 가바, 아세틸콜린, 노르에피네프린 등이 모두 뇌에서도 위와 장에서도 분비된다.

특히 도파민은 위와 장에서 인체가 분비하는 양의 50%를, 세로토닌은 80~90%를 분비한다. 뇌에 신경아교세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장관에도 비슷한 지지세포들이 있다는 점, 뇌의 ‘혈액-뇌 장벽’처럼 위장관에도 모세혈관을 둘러싼 보호장벽이 있다는 점은 뇌와 위와 장이 진화의 과정 중 같은 세포에서 분화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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