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엔 눈물, 저녁엔 포효… 韓 컬링, 각본 없는 ‘하루 2승’ 드라마
파이낸셜뉴스
2026.02.08 20:40
수정 : 2026.02.08 21:07기사원문
5연패 침묵 깬 ‘하루 2승’의 포효… 코르티나 빙판 녹인 ‘반전 드라마’
미국전 ‘눈물’이 에스토니아전 ‘환호’로… 되살아난 김선영의 ‘명품 샷’
“늦었지만 멈추지 않는다”… 벼랑 끝에서 증명한 ‘꺾이지 않는 마음’
[파이낸셜뉴스] 5번을 넘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길이 보였다. 칠흑 같던 어둠을 뚫고 나온 것은 ‘단 하루’의 기적이었다. 짓눌려있던 패배의 중압감을 벗어던지자, 한국 컬링의 스톤은 거짓말처럼 춤을 추기 시작했다.
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코르티나 컬링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예선 7차전. 김선영-정영석은 에스토니아(마리에 칼드베-하리 릴)를 상대로 9-3의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앞서 열린 6차전에서 강호 미국을 연장 접전 끝에 6-5로 꺾은 데 이어, 에스토니아마저 제압하며 파죽의 2연승을 질주했다. 5연패의 깊은 수렁에 빠져있던 그 팀이 맞나 싶을 정도의 완벽한 반전 드라마다.
미국전이 끈질긴 추격전 끝에 얻어낸 ‘진땀승’이었다면, 에스토니아전은 그야말로 ‘쇼타임’이었다. 5연패 기간 동안 억눌려왔던 울분을 토해내듯, 초반부터 상대를 거칠게 몰아붙였다. 1엔드부터 대거 3점을 뽑아내며 기선을 제압한 한국은, 선공을 잡은 2엔드에서도 정교한 샷 감각을 앞세워 2점을 스틸(선공 득점)하는 기염을 토했다. 순식간에 스코어는 5-0. 초반 기세 싸움에서 완벽히 승기를 잡는 순간이었다.
위기 관리 능력도 돋보였다. 3엔드에서 1점을 내줬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4엔드에서 상대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 2점을 더하며 7-1로 달아났다. 승부처였던 5엔드, 대량 실점 위기가 찾아왔지만 ‘베테랑’ 김선영의 손끝이 빛났다. 마지막 샷을 하우스 안으로 절묘하게 밀어 넣으며 실점을 단 1점으로 틀어막았다. 사실상 이날 경기의 마침표를 찍는 ‘슈퍼 세이브’였다. 기세가 오른 한국은 6엔드에서 2점을 추가하며 상대의 추격 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렸고, 9-3 대승을 완성했다.
불과 반나절 전만 해도 “국민들께 죄송하다”며 고개를 떨궜던 두 선수였다. 하지만 1승이 주는 자신감은 실로 대단했다. 서로를 믿지 못해 흔들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척하면 착 맞는 호흡으로 빙판을 지배했다.
이제 한국의 성적은 2승 5패. 냉정히 말해 상위 4개 팀에게 주어지는 준결승 티켓을 거머쥐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초반 5연패의 내상이 너무 컸다. 하지만 승패를 떠나 ‘꺾이지 않는 마음’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이번 2연승의 의미는 남다르다. 최하위의 반란은 이제 시작됐다.
늦게 발동이 걸렸지만, 그만큼 더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김선영과 정영석의 스톤은 이제 남은 경기를 향해 거침없이 질주한다. 성적을 떠나, 그들이 보여줄 ‘후회 없는 승부’에 팬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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